윤석규, 사당동 성진교회 장로, 2017년 기독교문예 등단

 곰국

             윤석규


어머님이 집에 오신 후
매일 매까
곰국을 끓여
따로 삶아낸 사태를
겯들여 드리면
참 맛 있게 드신다
오늘 점심 때
여늬 때처럼
따로 담아 양녕을 한
곰국을 퍼 드리니
"먹기가 싫네"
"아들이 먹어"
내 앞으로 밀어 놓으신다
무슨 일일까
걱정스럽기도 하였지만
집히는데가 있어
곰국이 담긴 큰 솥을
보여 드리니
"그렇게 많이 있어"
"나는 없는 줄 알았네"
"아들도 먹으라고 그랬지"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님의 속마음을
드러 내신다.

 

세월을 잊었습니다

                         

                                 윤석규

붙잡는다
멈춰있지 않을 세월
재촉한다
빨리 가지 않을 세월

찌는듯한 
찜통더위와 싸우느라
세월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서늘한 바람 불어와
언뜻 보니
세월은 저만치
입추를 지나 8월도 중순
9월을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세월을 잊게 해준
무던히도 고롭히던
무더위가 감사합니다

 

능력 차이

                            【윤석규】

 

어둠이 짙게 깔린 밤
가로등을 켜고
전기불로
방안을 환하게 밝혔다
날이 밝아 해가 뜨니
가로등도 전기불도
빛을 내 던져 버린다

극심한 가뭄
땅은 타들어 가고
채마들은 시들시들
농부가 물을 주고 또 주고
목이 타는 건 마찬가지다
서쪽 하늘에 검은 비구름
쏟아지는 빗줄기
산천이 함성을 지르고 춤을 춘다

햇볕이 쨍쨍 
몰려오는 찜통 더위
방안에도 가게에도 자동차에도
출입문 창문 꼭 닫고
위위잉 에어컨 소리
문밖을 나서면  덥기가 더한다
계절이 바뀌고 선선한 바람
문들을 활짝 열어 젖힌다

오래만에 다 썼다

                              윤석규

오늘
아내가 쓴 성경쓰기 노트를
합본할 생각으로 뒤적이다가
요한계시록까지 다 쓰고 나서
"오래만에 다 썼다"라고
말미에 써 있는 문구를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내가 투석하기 오래 전
이천십년 일월 부터인가
성경쓰기를 시작했지만
응급실에 실려가고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결국 투석을 하게 됨에
성경쓰기를 중단했었는데

아내 자신은 
성경쓰기를 다 마치지도 못하고 
죽는 줄 알았다가 
투석을 하면서도 
틈틈이 계속 써 내려가
성경쓰기 노트 다섯 권에
성경쓰기를 마침에
매우 대견스럽고 감사해서
"오래만에 다 썼다" 고
써 놨을 것이라 

아내의 이런 감정이
그대로 전해 와
내 감정에 치밀어 오르니
왈칵 눈물이 나는구나

# 제목을 오랫만에 다 썼다라고 하기 보다는 아내가 쓴대로 "오래만에 다 썼다"를 그대로 붙였다

윤석규 장로와 100세 어머니

백세 어머니
                                           윤석규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싶었는데
작년 말
백세를 며칠 앞둔
어머님을 시골에서 모셔 왔습니다

어머님은
세월을 오르락 내리락

그제는 삼 사십대 어머니 되어
내 먹을거리 입을거리 챙기시고
이야기 보따리 풀어 놓으십니다

어제는 너댓살 어린아이
보이는 것이 궁금하여
이것 저것 만지고 열어 보고
그러다 고장내고

오늘은 갓난 애기
말도 알아 듣지 못하시고
화장실 사용법도
잊어 버리십니다

어느 때는
총기 왕성하여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알아"
"나 바보 아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십니다

나 자랄 때
어머님은
내 하는 짓이 밉기도 하였겠지만
귀엽고 대견하고
그저 사랑스러운 자식인지라
다둑이며 키우셨겠죠

이제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생을 마치실 때 까지
어른스러우시면 아이 되고
아이스러우시면 어른 되어
어머니 세월 맞춰 모시렵니다.

윤석규, 사당동 성진교회 장로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