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타 블랙

 

                 김종욱

 

그림을 그리지 않는 장님 화가의 그리움

글을 모르는 시인 까비르가 써 내려간

단 한편의 시

낯설어도 영혼이고 싶어

나는 믿어지지 않는 것들을 믿어 왔으니까

아니쉬 카푸어가 독점하려 해도

불타는 것만 같던 잎사귀들은

왜 밤마다 얼음 같은 소리로 울다가

검은 재로 사라지는가

어둠마저 심연 속으로 사라지네

숨은 보석들이 빛나는 광산

죽음도 아름다운 검은 사막

빛은 날개를 잃고 추락하고

빛을 잃어가며 익어가는 달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그리고 신의 아들은 핍박받는 자

시작이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아

아니무스, 풀과 꽃들이 베이고 난 후의 짙은 향기

내 몸에 베다, 삶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알비노 같은 인간의 꿈은 병이 들고

점쟁이는 눈이 멀어도

사막이 감싸고 있는 우물을 보게 되지

검은 사막의 바빌론에서

사물의 모든 구조는 음악으로 되어 있고

누가 그 음악을 완벽히 이해하려 하는가

그는 죽음에 맞서는 자유도 이해할 수 있는가

진한 에스프레소를 삼키는

천 개의 검은 디오니소스의 목구멍

실재를 마주하는 무한의 심연,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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