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아름다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백성이 된다. 잠시 사탄이 이 땅에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에는 사탄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진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부활의 영광으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불안을 평강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때로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힘겨운 삶의 문제로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고통은 잠시 순간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가 더 크기에 기쁨으로 견딜 수 있고 넘어갈 수 있다. 고통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 이것이 성경이 주는 희망의 복음이며 큰 주제이다.

바울사도는 고백하기를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현재의 고난보다 미래의 영광이 더 크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의 본질이며 은혜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미래가 보장된 하나님이 백성들이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희망을 외칠 수 있고, 희망이란 단어를 품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견디며 이겨나가고 있다.

희망이란 복음을 붙들어야 한다. 그리고 의로운 백성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의로운 백성이란 말은 죄인의 반대말인 의인이라는 말로 줄여서 사용할 수 있다. 이 시대는 의인이 필요하다. 의인이 곧 이땅의 소망이다.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곧 희망이란 말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결국 이땅의 회복은 의인에게 달려 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막지 못하고 불바다가 되었다. 결국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의인이다. 사회공동체도 의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의인이 부족하면 세상은 점점 어두워진다. 그러나 의인이 많아지면 그 만큼 공동체는 밝아진다.

백성들이 기대고 싶은 언덕이 있다면 민족을 가슴에 앉고 고뇌의 밤을 지새우며 결정하는 의인들이다. 의인들이 모여서 법안을 만들고 개정하고 집행하다보면 의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참으로 어수선하다. 사회 곳곳에서 외치는 광야의 소리들이 많다. 또한 권력을 움켜주고 나라를 이끌어가는 분들의 외침의 정책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느것이 맞는지 참으로 혼란스럽다. 모두다 의인이라고 외친다. 의인은 많은데 시끄럽다. 

오늘날 의인과 악인이 구분이 잘 안되는 세상이다. 진리와 비진리, 가짜와 진짜, 알곡과 쭉정이들이 한 우물안에 서로 뒤엉켜있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교회도 구분이 잘 안된다. 나라도 마찬가지 같다. 진짜 민족을 위한 헌신의 삶을 드리고 있는 양인지, 이리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구원의 성은 비진리로, 가짜 신앙으로, 쭉정이 신앙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누가 그것을 잘 아는가? 자신은 안다. 내가 진짜 진리가운데 살려고 몸부림치는지, 내가 쭉정이인지, 내가 가짜 뉴스를 만들고 있는지 자신은 알고 있다. 주님이 지키는 구원의 성은 믿음을 지키고 진리를 지키고 살던 사람들에게 활짝 문이 열려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온 국민이, 세계인들이 지켜보고 있다. 어둠은 곧 들어날 것이다. 누가 어둠을 가져왔는지, 시간이 지나면 등경위에 있는 등불로 인해 곧 들어나게 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신문 발행인,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저서: 제자세우기 40일 영적순례(1,2권). 등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법안중에 성경의 말씀에서 벗어난 죄악의 법안들이 있다. 그것이 인권이라는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는 관점은 아주 간단하다. 성경이다. 성경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어떤 나라가 의로운 나라인가? 어떤 나라가 깨끗한 나라인가? 어떤 나라가 가족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나라인가?

성적인 문란함을 유도하는 나라가 의로운 나라가 될 수 없다. 문란한 사회나 도시는 신선해보이지 않는다. 추악해 보인다. 신성한 결혼 제도가 타락한 모습으로 변질해가는 것이 의로운 나라인가? 우리는 미디어에서는 흔히 졸혼이 일상화된 것처럼 파경을 막는 아름다운 결혼제도 결과물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다. 단지 말하지 않을 뿐이다.

롯이 거주하던 소돔과 고모라성이 왜 불 심판을 받았는가? 동성애가 사회를 병들게 했다. 마찬가지이다. 로마시대에 성적타락이 극에 달했다. 내적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병들었다. 남자가 남자끼리 결혼하고, 여자가 여자끼리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일까? 이것을 법적으로 인정해주고, 동성애를 인정해주는 것이 인권인가? 성적취향을 인정하는 것이 곧 죄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종교적인 성향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이것은 이상도 아니고 삐뚤어진 성욕의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좋은 단어인 가치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도 아깝다. 이런 사회가, 이런 국가가, 이런 가정이 미래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의 관심은 죄인이 의인되는 것이다.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는 의로운 백성들이 들어가는 나라이다. 누가 최후에 승리하는가? 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가정, 교회, 일터, 사회, 국가는 건강하게 생존하게 된다. 이것이 민족의 기초이다.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결혼해서 이혼하는 비율이 너무 높다. 우리 그리스도인 가정만큼이라도 이혼이라는 불순물이 가정에서 싹이 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끝이 없다. 이기심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이기심을 줄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가 작동되는 건강한 의로운 사회로 성숙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좋겠다. 오염된 성적 타락으로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좋을 듯싶다. 의로운 사람이 이땅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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