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 존 칼빈의 설교단에서의 예배로서의 설교 -

■ 글 : 휴즈 올리펀트 올드(Hughes Oliphant Old)

▶전 프린스톤 신학연구소 교수 ▶현 Professor of Reformed Theology and Worship, Erskine Theological Seminary, Due West, South Carolina ▶대표 저서: Reading and Preaching of the Scriptures in the Worship of the Christian Church(1999), Worship: Reformed According to Scripture(2002) 외.

 

■ 번역 : 송광택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www.bookleader.org) 대표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 ▶바울의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목사 ▶대표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역서: 교회사 핸드북(생명의 말씀사), 흐트러짐(지평서원) 외 다수.

 

칼빈에게는 설교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것은 칼빈의 설교 이해에 있어서 주요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다. 칼빈은 설교를 예배로 본다. 성례전을 집례하는 일 만큼이나 그리고 기도 순서만큼이나 세세한 점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회중 가운데서 성경 봉독과 설교하는 일을 예배로 보았으며,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장 심오한 형태의 예배로 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예배운동은 설교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오히려 근시안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쉽게도 예배갱신은 설교 이외의 것에 더 강조를 두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칼빈의 통찰력이 오늘날까지도 가장 예언적인 것으로 남아있는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칼빈에게 있어서 예배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지는 성경봉독과 설교는 어떠한 것을 말하는가? 여러 가지 다른 견지에서 이에 대한 진술을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단지 두 가지 면에서 질문해보고자 한다. 하나는 예배에 대한 지혜신학(wisdom theology)의 관점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예배에 대한 언약신학(covenantal theology)의 관점에서이다.

 

1. 설교와 지혜

먼저 성경적 지혜신학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성경적 지혜신학은 내가 여러 글에서 자주 언급했던 바 독특한 예배신학을 의미한다. 예배에 대한 지혜신학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들려졌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시편 19편에 대한 칼빈의 주석에서 우리는 특별한 아름다움과 함께 이런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칼빈은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을 기뻐하였다. 낮이 그의 말씀을 전하고 밤이 그의 지식을 알려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말씀이 영혼을 소생시키고 우둔한 자를 현명하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며 눈을 밝게 하였을 때 영광을 받으신다(시 19:1-8). 설교 말씀은 보배로운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며, 이로써 우리는 그 안에서 즐거워하게 된다.

이 시편 주석을 통해서 칼빈은 하나님의 지혜가 별이 반짝이는 하늘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의 법, 즉 성경 속에서도 발견되었으므로 그 하나님의 지혜에 놀랐다고 적고 있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시편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은 다윗이 하나님의 영광을 그의 작품 중에서 축하하는 부분이요,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지식을 그의 말씀 가운데 보다 완벽하게 드러냈음을 선포하는 부분이다.”

칼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했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다윗은 여기서 비유적으로 빛나는 하늘의 천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상세히 보여주는 설교자로 묘사해주고 있다. 물론 그 비유는 두 가지 방향에서 나타나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과 떠오르는 태양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것처럼 성경도 하나님의 지혜를 선포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칼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방법과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방법이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칼빈에 의하면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이 아주 분명하다는 것이다.

시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다”라고 계속되고 있다. 칼빈은 이에 대해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의 지혜를 보여주기 때문에 완전하다고 주석하고 있다.

“율법이 제일 먼저 받을 칭찬은 그것이 완벽(perfect)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다윗은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적절하게 가르침을 받으면 그는 완벽한 지혜를 위해 필요한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찬양을 보낼 것을 주장하였고, 그 속에 완벽하고 절대적인 지혜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칼빈은 ‘지혜 학교’(wisdom school)의 관심사들에 민감하다. 하늘의 경이로움에 대해 그리고 성경 말씀에 대해 묵상할 때, 후자처럼 전자는 예배로서 하나님께 드려진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9:14).

이러한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된다. 그것은 예배의 본질이다. “우리가 하늘을 주목하여 바라볼 때 우리는 그것을 곰곰이 생각함으로써 그것들의 창조주이신 분께로 들려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분명히 칼빈은 성경의 동일한 측면을 이해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놀라운 무언가가 있다. 단순히 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완벽함을 찬양하는 것이다.

예배에서의 말씀의 위치에 대한 칼빈의 이해는 신구약 모두의 지혜신학에 깊이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간다. 어거스틴의 신학처럼 칼빈의 지혜신학은 철저히 요한복음적이다. 이 사실은 요한복음의 서론에 대한 칼빈의 주석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거기서 칼빈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이기 때문에 요한이 그를 “말씀”으로 부른다고 말한다.

이러한 진술은 칼빈이 요한복음의 지혜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에게 귀띔해 준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죄로부터 구원을 받으며 새롭고 영원한 생명에로 태어난다. 또한 위로부터 태어나고 성령에 의해 새로워지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신령과 진정으로(in spirit and truth) 하나님을 예배한다(요 1:12,13; 4:23). 기독교적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칼빈의 예배 이해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이다. 참된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선포(설교)하는 일의 중심적 역할은 자명해진다.

만일 그 예배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생겨나는” 진정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만 예배 받으신다. 하나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고, 과연 그 말씀은 그것이 말하는 바를 성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말씀은 결실을 가져오며 이 결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한다. 요한복음 1:4 주석에서 칼빈은 말하기를 “따라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한 말씀에 의해 그렇게 하신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거룩하게 살아가고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은 크게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는 미가 4:1-4에 대한 칼빈의 설교에서 유사한 내용을 보게 된다. 그 구절은 변화된 예루살렘의 예배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 날에 땅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배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칼빈의 이해에 따르면, 이것은 성경을 읽고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예배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예배의 일차적 책임이다. 바꾸어 말하면 미가는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이제 성취되어온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기독교 예배에서 이 땅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선포하는 것을 경청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고 선포(설교)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예배 유형은 하나님께서 율법의 첫째 판에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참고. 칼빈, 기독교강요, II, 8,1-3).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술과 상상으로 고안된 우상을 만들지 않으며, 보석과 금박으로 우상을 꾸미지도 않고, 우상을 모시고 행진하지 않으며, 그 우상 앞에서 분향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다. 제4계명에 대한 칼빈의 주석에서 명백히 드러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선포하고 묵상하는 것은 안식일 준수에 필수적이었다(기독교강요, II, 8, 28).

칼빈에게 있어서 율법의 첫째 판의 제4계명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적 예배의 성격을 정해야 한다(기독교강요, II, 8, 11). 물론 이 계명들은 기독교적 형식의 기독교예배를 지시하는 것이며, 그 기독교적 형식은 예수께서 주신 율법의 요약이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마 37-38) . 우리가 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성취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예배를 드릴 때이다. 예배에 관한 지혜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이요 우리를 향하신 그의 사랑을 기뻐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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