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을 죽인 건, 다름아닌 우리 모두인데

어느날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너희 또래들 처음에 취업하면 한달 월급 얼마나 받냐?" 나는 먼저 아버지의 생각에는 어떤지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350-400 만원 정도..."라고 답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200~250만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거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반문했다. 당신이 젊을 때 사기업에서는 공무원들 월급의 두배 이상을 받았는데, 이제는 공무원이나 사기업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것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왜 공무원에 몰리는지, 이제야 알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젊은이들이 배가 부르고 무사안일을 꿈꾸다 보니 편하게 공무원이나 하려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 어차피 기업에 가봐야 공무원이랑 비슷하니까 그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에 공무원은 짤릴 가능성이 적으니까 그렇다는 지극히 당연한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젊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때 주위에 자살한 친구들이 많았느냐고. 아버지는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사고로 죽은 친구나 병으로 죽은 친구는 있었어도 자살한 친구는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거의 월마다 한 명씩은 자살한 친구들의 기일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친구의 친구까지 포함해서,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그러냐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동창의 자살 소식, 중학교 친구가 연락이 끊겼는데 자살했다는 이야기, 고등학교때 친구들의 자살 이야기, 군대에서 자살한 친구와 그 친구의 소식을 듣고 함께 목숨을 끊은 그의 연인이자 나의 친구...등등

나는 어느 순간부턴가 그런 친구들의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집에 놀러가서 같이 놀던 동년배 친구가 찾아와서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더이상 찾아갈 수 없었다고.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어른들이, 우리에게 노력하지 않고 배가 불렀다고 하는게 너무 화가 난다고" 나는 말했다. "내 주위에선 친구들이 죽어나가는데, 그 친구들이 왜 죽었는지 너무나 잘 알겠는데, 어른들은 그 친구들이 나약해서 그런다고 말하면 정말 너무 화가 난다. 내 친구들을 죽인 건, 다름아닌 우리 모두인데."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버지 때는, 배는 고팠을지 몰라도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주변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었지. 내 주위에는 삼각김밥으로,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죽어간 친구들의 기일이 적힌 달력이 있어."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와 나의 대화가 이렇게 일방적인 적은 별로 없었다. 서로 주고받던지, 치고받던지 하는 대화를 하던 우리의 대화는 끊겼고, 아버지도 나도 더이상 할 말이 남아있지 않았다. 친구들이 좋은 곳에 갔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는 없다.

돈 이야기에서 시작한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돈 문제는 아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 그게 없는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만들어서, 젊은이들에게서 내일을 빼앗은 사람들이 노력하라고 말하는 아이러니. 가장 화가 나는 건, 우리 모두 답을 알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답안지를 작성하길 꺼려하는 나의 모습, 너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