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Global Missions 신학덕담
【신학덕담】언약의 의무규정은 언약의 내용을 지향해야3
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KAPC 뉴욕동노회장, 총신대 및 합신대학원 졸업

구약 이스라엘에는 안식일 교훈과 관련이 깊은 희년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희년은 매 50년에 모든 땅을 본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기업으로 받은 땅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에게 팔았어도 그 땅을 샀거나 볼모 잡은 사람은 희년에 본래 땅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레 27:30).

이것은 땅의 안식에 관한 명령이 아니라 땅의 소유권에 관한 명령입니다. 즉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제도입니다. 남의 땅을 샀거나 볼모 잡은 사람이 희년이 되기 전에는 주인에게 안 돌려주어도 되지만 그 기간 동안에도 그가 그 땅의 소유주가 아님을 명심해야 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명령이 따로 주어졌지만 희년에 대한 교훈에서 다시 십일조를 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남의 땅을 샀거나 볼모 잡고 있는 동안에도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레 27:30).

그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십일조와 희년의 교훈에는 모든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지만 실제적 소유권을 가지고 계시면서, 어떤 사정에 의해서 땅이 남에게 넘어가도 희년에 본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제정 된 것처럼 희년의 제도도 사람을 위하여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안식일 교훈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에 대한 많은 규례를 주셨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창조 때 땅에 대한 사람의 역할과 책임을 명령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두 가지 일을 맡았습니다. 첫째는 에덴동산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고, 둘째는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첫째 일은 땅과 관계 된 일이고 둘째 일은 하나님과 관계 된 일입니다. 아담은 땅을 다스리는 일을 두 가지 관점에서 해야 했습니다. 먼저는 땅을 경작하고 개발하여 하나님께서 땅에 넣어 두신 모든 보화들을 캐내어 활용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 땅을 지키고 돌보며 땅을 위협하는 모든 악한 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는 타락 후의 역할까지 포함된 것으로 인간의 죄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일입니다. 땅에 대한 이러한 명령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책임을 구체화 한 것이고 그 안에 인간 서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들어 있습니다.

기업으로서의 땅과 관련된 명령에는 농업, 목축, 상업, 산업, 과학, 나아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노동과 휴식, 지배와 섬김, 문명과 종교, 생산과 분배, 정치와 문화 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이웃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모든 복은 땅과 관련이 있습니다. 경제적 복이나 안보적 복도 땅과 관련이 있습니다. 문명이 아무리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양질의 물건들을 대량으로 생산한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은 땅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혹시 우주에서 어떤 원료를 가져온다고 해도 땅이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인간이 셀 수조차 없이 많은 별들 중에 아직까지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의 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태양계 끝에서 보면 지구는 파란 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파란 점에 불과한 지구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 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지구를 대체할 그 어떤 별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언약의 부가적 복으로 땅을 주신 것이 얼마나 엄청난 복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약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산업 혹은 기업으로서의 땅이 신약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되어야 할까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땅에 대한 교훈 중에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계명이 안식일 계명입니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안식일”(출 16:25; 20:10; 23:3, 38; 신 5:14)로 규정되어 있는 안식일을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막 2:27)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안식일 교훈이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점과 기업인 땅에 대한 규례는 인간 상호관계에 대한 교훈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결국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 방법과 교훈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어렵지 않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소자나 강도 만난 사람이나 약자를 돌아보는 것이 곧 주님께 대한 행위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생각할 때 타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곧 하나님께 대한 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철학자 에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은 하나님의 가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타인의 얼굴을 상생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로 이해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타인의 얼굴 속에 은폐의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는 인간 상호관계를 통해 심화시키게 하셨으며, 기업의 땅은 하나님과 인간상호 간의 필요 불가결한 매개로 주신 것입니다. 땅으로서의 기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모든 복을 의미하며 그 복은 인간 서로에 대한 의무와 책임 수행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생존의 기본 인프라는 땅이고, 도시화된 산업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한 기본 인프라는 사람입니다. 물론 농경사회나 도시 산업사회가 생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농경사회의 땅의 역할을 도시 산업사회에서는 사람이 대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 산업의 기반은 사람입니다. 도시에서는 서로가 삶의 터전이고 삶의 기반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땅을 의인화하여 말씀하셨고 땅을 인격적으로 다루셨습니다. 땅은 본래 인격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비인격적인 것을 인격화시키는 것을 금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땅을 인격적으로 묘사하셨습니다. 땅이 인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격적으로 설명하신 것은 중요한 교훈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땅을 어떻게 대하고 다루느냐가 곧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되고 나아가서 인간 서로에 대한 태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땅에 대한 태도가 단순히 땅에 대한 태도가 아니고 그것이 곧 사람에 대한 태도이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대한 태도라는 사실에 대한 교육적 차원에서 땅을 의인화해서 설명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약에서의 산업인 땅이 현대에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우리가 서로에 대하여 얼마나 더 인격적으로 대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듯이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일 수 있고 불신자들에게도 일반은총의 복이 차별 없어 주어진 것을 감안하면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배려를 반영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책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잘 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성경은 명시적으로 가르칩니다.

농경 사회에서 땅이 기업이었다면 현대에는 사람이 기업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잘 못 사용한 것이 곧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 되어 나라를 잃고 포로 되는 벌을 받았습니다. 구약에서도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을 강조하여 가르치신 것이지만, 땅 대신에 사람을 기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현대 도시에서는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합니다. 현대 도시사회에서는 농경사회보다 사람들이 서로 인격적인 대우를 주고받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사람이 많기 때문이고, 둘째는 익명성 때문입니다. 도시는 사람이 많고 서로에 대하여 익명성이란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익명성의 특징을 지닌 도시에서는 타인을 비인격적으로 대할 위험이 높습니다. 게다가 도시의 매력 중의 하나가 바로 익명성이란 사실입니다. 익명성은 자유를 보장하고 도시인은 그 자유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익명성이 보장하는 자유는 정상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익명성은 윤리적 긴장을 해제시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시에서는 서로가 상대를 비인격적으로 대하게 될 위험이 큽니다. 결론적인 교훈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는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구체적으로 유지되고 또 심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업의 땅을 단순히 이익의 대상으로만 여기면 안 되었듯이 도시생활에서는 산업인 사람을 나의 이익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면 안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었듯이 우리들은 모든 이웃들과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심화시켜가야 합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익명성의 이웃을 하나님을 대하듯이 대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과 교회와 사업과 직장에서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땅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는 곧 이웃에 대한 우리의 책임과 의무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잘 대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타인의 얼굴에 자신을 은폐의 방식으로 계시하고 계신다고 한 에마누엘 레비나스의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황상하  joseph1952@naver.com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상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