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육/문화 시문학
【김종욱 시 산책】 나의 힘겨운 은사시나무

나의 힘겨운 은사시나무

 

                                         김종욱

 

알래스카의 별빛 아래 얼어붙은 숲은

은박 껌종이에 애써 그린 풍경화처럼

은빛 음영으로 구겨져도

나의 가난한 그림 속에서

우리 모두는 빛을 닮은

작고 흰 극북의 꽃들로 펴야 하는데

 

지루하지 않은 물 같던

은박은 너덜너덜 벗겨지고

하얀 환상의 구겨진 민낯만

모습을 드러낸다

 

빛을 받던 은색의 창문이 찢어진다

마지막은 죽음,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제 두려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달빛은 발밑에 흥건히 떨어져서

껌의 첨가향처럼 사라져가고 있어

 

모든 예술은 시린 피아노 소리의 환청과 세뇌

눈밭 위의 태양, 달과 별 녹으면서도 얼어붙고

깨지면서 빛나는 백야는 슬픈 노래 같아

슬픈 유리 같아

 

빛은 먼 별의 과거로부터 온 편지

어차피 손길이 닿을 수 없는

빛의 호수 깊은 바닥엔 이미 죽은 은빛 낙엽들

익사한지 오래된 몸은 빛을 고단해하고

나는 그 느낌을 저녁마다 안다

 

파도소리와 별빛에서 모르는 단어 몇 개를 훔쳐

그들의 언어를 흉내 내고

더 쓸 시가 없다던 이도 죽어갔다

그래 빛을 좀먹는 벌레는 더 맛있는 빛 속에 있다

 

어디선가 들리는 은빛 휘파람 소리

물거품같이 사라진 어린 시절의 합창

여름방학의 여름비가 난반사되면

내가 기억하는 네 미소는 조금씩 구겨진 동그라미

나는 환청 속에서 계속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어

 

실패작들은 저 밝은 빛 근처에 전부 던져버려

내가 죽인 것들은

죽는 연습을 하는 은빛 숲이 되고

기억은 창작이라는 차디찬 술을 마신다

 

나는 늘 존재하고 싶지만

존재 자체에 날개를 달아주는 사랑은,

물과 빛을 반짝거리는 작은 순간들이

영원히 이어지는 수많은 방향의

알 수 없는 미소

나의 은사시나무

나의 베아트리체

안녕, 반짝이는

 

 

김종욱  elim12@naver.com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종욱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