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는 성경하브루타 (23)

이대희 목사/ 예즈덤 성경하브루타 연구소 소장,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전 서울장신대 교수, 에스라성경대학원 대학교 성경학 박사과정 수료,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이대희 지음, 베이직북스, 2016 세종도서 올해의 책 선정) <유대인의 탈무드식 자녀교육법> 외 200여권의 성경공부와 하브루타 관련 도서 출간. 지난 20여 년 동안 성서한국, 성서사람, 성서교회 비전을 갖고 한국형 예시바 성경학교인 예즈덤성경학교에서 (매주 월요일) 하브루타 방식으로 66권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유대인교육과 밥상머리를 오랫동안 연구했으며 현지 이스라엘의 정통 마을과 회당과 가정, 미국의 유대인 공동체를 방문하여 안식일과 회당예배와 탈무드 토론에 참여한 경험과 15년 넘게 밥상머리를 전파하고 있는 유대인자녀교육 전문가이며 사회적으로도 수많은 강연 경력이 있다

3-7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는 교회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그림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다. 교회는 세상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공동체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나라 보다 세상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면 지금 교회는 병든 상황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닌 하늘의 도성이다. 그 이유는 세상은 잠시 있다 사라지지만 하늘의 도성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 가치를 보여주는 곳이 교회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모든 믿음의 인물들은 이 세상은 나그네처럼 살고 오직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다(히11장). 교회는 그들의 믿음 위에 세워졌고 그것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다. 교회는 세상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함을 몸으로 보여주고 삶으로 증거 하는 곳이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안에서 물질의 욕심으로 서로 분쟁하는 일이 생기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보이지 않는 상황까지 이른 다면 신앙의 부패는 이미 많은 영역에까지 이른 것이다.

예수님과 빌라도와 대화는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살았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죄가 없어도 십자가에 죽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는 오직 세상의 나라가 전부였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유대인의 왕이면서 힘없이 죽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 그의 선택은 우매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얼마 후에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권좌에서 힘없이 물러나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왜 그리스도인이 환란 가운데서도 즐겁게 살아야 하고 화평을 누리면서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라지는 세상의 나라가 아닌 영원한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증거는 핍박과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즐거워하는 일이다. 교회가 서로 하나 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면 세상 우리를 보고 주님의 제자인줄 알고 교회를 보고 천국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게 보여 지는 교회 모습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거리가 멀다. 교회의 분란으로 해결이 힘들게 되자 이제는 사회법정에 오가는 교회가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아무리 어려워도 기도하면 된다고 그렇게 부르짖었던 신앙이 지금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내가 붙잡고 있는 믿음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교회의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왜 이런 현상이 한국교회에 계속 일어날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교회가 세상의 나라에 지배당한 모습 때문이다. 분란의 뿌리는 거의 교회 부동산과 물질과 권력에 원인이 있다. 만약 그것이 사라진다면 거의 교회 분란은 쉽게 해결된다. 교회는 이 땅에 물질을 쌓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 인재를 키우고 제자를 삼아 세상에 파송하는 것이 주된 교회의 사명이다. 그런데 그 사명을 등한시 하면 결국 물질에 지배를 당한다.

정말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여 그 나라를 전파하고 있는가? 그것이 주된 사명인가?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예배당에 모이고 성도의 교제를 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의 분란과 분열은 지금 당장 해결될 수 있다. 어차피 주인 없는 종들의 싸움 아닌가? 복음 안에서 교회와 신앙을 새롭게 갱신하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자기를 죽이는 기회로 삼고 다시 기도한다면, 베드로의 기도로 죽은 다비다(도르가)가 살아난 역사가 한국교회 속에서 재현될 수 있다(행9:40).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다시 기도하자. 성령의 역사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새롭게 일어날 것이다. 결국은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교회가 되느냐가 지금 교회를 회복하는 결정적인 키(Key)가 된다. 누가 먼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그 일을 자기 십자가로 알고 감당해야 할지를 각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Masolino, di tabita 마솔리노, 다비타,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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