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6:1-2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시록은 6장부터 본격적으로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전쟁을 일으키시는 지를 기록하고 있다. "인을 뗀다"의 "뗀다"라는 헬라어 "아노이고"(ἀνοίγω)의 의미는 "열다"(open)이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이 쓰였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ἀνοίγω)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입을 열어(ἀνοίγω) 가르쳐 가라사대"(마 5:2)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ἀνοίγω) 것이니"(마 7:7)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ἀνοίγω)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51)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ἀνοίγω)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요 9: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 즉 가족이나 교인들 간에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게 하러 오셨다. 그런데 전쟁을 하기 위해 되어져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봉해진 두루마리의 인을 떼는 것"이다. 즉 두루마리가 열려야 하는 것이다.

두루마리가 무엇인가? 

두루마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 이사야 34:4에 보면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라는 말씀이 있고, 찬송가 중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라는 가사가 있듯이 두루마리가 열리는 것은 곧 하늘이 열린다는 의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말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하늘은 언제 열리는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그 순간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순간이며, 겸손히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온 것처럼 예수께서 사역을 하시는 순간과 입을 열어 말씀을 하시는 순간이 하늘이 열리는 때이다. 그분이 오셨을 때에 어둠에 속한 이들은 참빛이신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실 때가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비밀이 알려지는 때인데, 그들은 천국 문이 열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3)

하늘이 열린다는 것 즉 복음이 선포된다는 것은 전쟁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이땅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헤롯은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어린 아이들을 죽였다. 검을 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하늘이 열림과 동시에 빛과 어둠의 전쟁을 알리는 것이다. 그분의 입을 통해 말씀의 검이 나오는 순간이 독사의 자식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별되어지는 순간이다.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이들과 천국 문을 닫고 싶어하는 이들이 나누어지는 순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때가 하늘이 열리는 때이며 동시에 영적 전쟁의 시작을 선포하는 때이다. 전도와 제자를 삼는 일을 절대로 가볍게 생각하면 안된다. 복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부드럽지도 않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양쪽에 시퍼렇게 날이 선 검이 아니라 꿀이 발라진 막대기에 불과하여 죄악을 찌르기는 커녕 죄악을 달콤한 꿀로 덧칠하여 덮고 있다. 그래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선악과를 계속해서 양산해내고 있으며 복음을 너무나 가볍고 부드러운 깃털처럼 변질시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실 때에는 이미 이긴 전쟁을 하러 오신 것이다. 본문 2절의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라는 말은, 현재 이기고 있고 궁극적으로 이길 것이라는 말이다. 즉 예수께서는 그분의 의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전쟁하신다. 전쟁을 시작할 때에 흰 말이 등장하는 것은 신실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며 승리를 나타낸다.

전쟁을 하는 이유는 생명과 평안을 주기 위해서이다. 육에 속한 이들은 사망의 길로 달려가며 영에 속한 이들은 생명의 길로 달려가므로 항상 싸울 수밖에 없다. 육에 속한 자들은 자기의 의로 힘써 하나님을 대적하며 싸우지만, 영에 속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말씀의 칼로 싸운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우리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것이므로 영에 속한 이들에게는 구원이 되지만, 육에 속한 이들에게는 심판 그 자체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전쟁을 위하여 네 종류의 말과 말을 탄 자들을 보내신다. 성경에서 '말(horse)'은 군사력을 나타낸다. 온 우주의 주관자이신 그분은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죽음까지도 주관하시며 다스리신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대해 많은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예전엔 교황이나 바코드 또는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등이 적그리스도이며 현재는 베리칩이 그것이며 앞으로는 또 어떤 것이 나타날지 모른다며 끊임없이 음모론을 만들어내지만, 적그리스도는 이미 세상에 많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요일 2:18). 즉 우리는 지금 그들과 싸워야 한다. 그들과 싸우되 그리스도의 의로운 흰 옷을 입고 싸워야 한다. 천국을 소유한 자라면, 어둠과 싸워서 천국의 영토를 확장해야만 한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성경공부를 하여 지식을 쌓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들 중에 열심인 자들은 주님의 양떼들에게 열심히 먹이느라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경공부를 열심히 할지라도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 많은 지식이 바리새인들처럼 자신과 주변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말씀의 칼을 들고 전쟁에 나가기 전에 먼저 해야할 일은 자기부인이다. 내 생각에 "이 길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주님은 "그 길이 아니다"라고 하신다. 그때 우리는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 주님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영적 지도자가 알려주어도 자아가 강한 사람일수록 절대로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 말씀의 칼이 주어지면, 그 칼로 마귀와 싸우지 않고 주님의 양떼들을 죽이는 데 잘못 사용한다.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 힘써 그리스도인을 죽였던 것처럼 자신의 성경 지식으로 잘못 휘둘러서 주변에 있는 수많은 이들을 잘못 인도한다. 왜냐하면 자아가 강한 이들은 영적으로 말씀을 받지 않고 혼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버린다. 

이런 이들은 차라리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것이 낫다. 이들이 입을 열 때는 하늘이 열리며 복음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지옥이 함께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먼저 해야할 우선순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에 수많은 이들의 삶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관계없는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다. 

[적용]

천국은 침노해 들어오는 것이므로 죽어서 가는 천국만 바라보느라 현재 천국의 삶을 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지금 천국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휴거만 기다린다. 그래서 언제 휴거가 이루어질지 고민하며 논쟁을 벌인다. 지금 천국을 누리며 살지 못한다면, 미래의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심지어 휴거가 답이라고 말하며 가르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휴거라고 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신경을 쓰게 하기 때문에 정작 지금 천국을 이루며 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성도들은 환난의 때에 휴거되어 고난을 면한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고난을 잘 인내한 결과가 구원이라고 말씀하셨고, 성도들이 환난에 던져질 것이라고 하셨다.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왜 휴거에 목을 매는가? 고난을 면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난 전에 휴거를 받는지, 환난 후에 받는지를 놓고 서로 자기 주장을 하느라 오늘이라는 영원한 시간에 천국을 누리며 살지 못한다. 이러한 것들이 영적 전쟁터에서 마귀가 우리를 미혹하는 덫이다.

성경은 항상 우리에게 현재를 살라고 말씀하며, 마귀는 과거 또는 미래를 살라고 미혹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현재만 있을 뿐 내일은 없다. 내일이라고 생각한 그 날이 항상 오늘이며 우리는 내일을 살 수 없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내일 일을 염려하며 오늘을 살지 못한다. 나는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디에서 살고 있나?

주님은 우리에게 오늘 천국을 이루며 살라고 말씀하신다. 내일 또는 먼 미래에 천국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다면 그곳이 천국이므로 지금 천국을 누리며 살라고 말씀하신다. 입을 열어 천국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다. 마귀에게 빼앗긴 주변에 전쟁을 선포하라고 하신다. 

나는 진정으로 그분을 영접했는가? 그래서 현재 천국 생활을 하고 있는가? 내 입이 열리는 순간이 하늘이 열리는 순간인가? 아니면 내 입이 열리는 순간 천국 문을 닫고 다른 이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가? 내 입에서는 무슨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는가?

천국에서의 평화로운 삶은 전쟁 후에 오는 것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는 일시적이고 가짜이며 참 평화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어지는 값진 것이다. 마귀는 적당히 타협하여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을 하지 말라고 미혹한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이러한 상황이다. 마귀의 편에 서있는 이들은 평화협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미혹에 속지 말고 전쟁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긴 전쟁을 우리에게도 피하지 말고 싸워서 이기라고 하신다.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매순간 말씀과 성령의 검으로 승리의 삶을 살면서 천국을 이루며 살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전쟁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거하시는 그분께서 친히 싸우실 것이므로 아무 염려하지 말고 입을 열어 말씀의 검으로 힘써 싸우라고 하신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5-16)

나는 전쟁을 원하는가? 평화를 원하는가? 진정한 평안을 얻기 위하여 오늘도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의의 흉배를 입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말씀과 성령의 검을 휘두를 수 있도록 싸울 준비를 갖추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싸울 준비를 하기 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나의 옛 사람을 못 박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잘 죽자! 그러면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양을 무시로 하게 된다.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저의 의의 옷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의로운 흰 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게 하옵소서

3) 적당히 타협하여 평화협정을 맺으라는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지 말고, 말씀의 칼로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의 삶을 살므로 매순간 천국을 이루며 살게 하옵소서

4) 복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변질시키지 않도록 굳건한 믿음과 하늘의 지혜를 주옵소서. 

5) 성경공부를 통해 혼적인 지식을 넓혀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저 자신을 부인하는 훈련을 시켜주옵소서. 그래서 제 입이 열릴 때 천국과 지옥이 열리지 말고 오직 천국 복음만이 선포되고 흘러나오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6) 과거나 미래를 살지 말고 오직 오늘을 충실하게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휴거를 비롯한 알 수 없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내일 일은 내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 제가 서있는 이곳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7)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매순간 승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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