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저는 경기도 광주시 광주성결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완호 집사입니다. 목표를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삶의 굴곡이 심해서 평범한 분들과 비교해 보면 삶의 길이가 서너 배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저와 제 가족을 건져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표현이 부족하지만 서툴지만 끝까지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근에 김인환 목사의 청소년 사역에 대해서 설교 중에 “교사들이어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 하는 말씀을 들었다. 아내는 이미 20여 년 전에 그 말씀대로 실천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가르치기 전에 사랑이 먼저고 놀이가 먼저였다.

나의 모든 재산을 잃으면서 지명 수배자가 되었고 결국은 구속이 되었다가 풀려나면서 모든 지명수배는 풀렸지만 경제적으로는 최소의 생활조차도 힘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그 어려운 환경 속에도 쉬지 않고 중고등부 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다. 수배가 풀리면서 나는 가정으로 돌아 왔고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우리집은 이미 교회 청소년들의 사랑방이 되어 있었다. 특히 중고생인 두 딸이 있으니까 남학생 녀석들이 밤 낮 없이 드나들면서 놀았고 그런 녀석들을 아내는 뭐라도 먹여서 보내려고 했다. 청소년 시기 이니까 이 녀석들이 먹기도 잘 먹었다.  다른 가정들은 아빠를 어렵게 생각해서 조심 했는데 우리는 아내가 없으면 내가 직접 챙겨주니까 자기들 집처럼 아주 편안하게 들락 거렸다. 물론 녀석들 모두가 아내의 반 아이들은 아니지만 한번쯤은 아내의 반을 경험했고 중고등부에서 임원들을 하고 있으니까 이 녀석들을 잘 돌보아야 중고등부가 활력이 있었다.

아내는 이름도 없는 학생부의 부장과 총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나의 승합차에 정원을 초과해서 태워가지고 맛있고 양이 푸짐한 맛 집을 찾아다녔고 시외로 나갈 때는 밥도 먹이고 넓은 장소에서 맘껏 뛰놀게 해 주었다.  반면 우리집 딸 들은 사생활이 없다면서 불평이 많았다. 이 녀석들이 딸들의 방에 들어 갈 때도 자기들 방에 들어가듯 아무 때나 문을 활짝 열고 다니니까 딸 들이 아내한테 항의도 많이 했지만 한번 시작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특히 그 때 그 녀석들 중에는 막내가 한명 있었다. 작은 모임이라도 있거나 새로운 먹을 거라도 있으면 꼭 불러서 함께 했다. 어느 때는 우리 가족식사 시간에 초대해도 혼자 와서 잘 먹고 갔다. 우리 집의 막내아들처럼 챙겨 주었다 

그렇게 함께 그 들과 놀아주니까 아내한테는 누구나 쉽게 다가와서 말을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었다. 또 한 우리집의 딸들과 아들이 그들의 친구로서 함께 교회 생활을 하니까 자녀들을 통해서도 그들의 고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부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고 부모와 대화가 단절이 되어서 부모와 자녀가 남남처럼 살면서 힘들게 청소년시기를 보내는 친구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어느 때는 딸아이의 친구 엄마가 학교에 있는 우리 딸을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고 딸 은 “엄마! 기도 해줘” 하면서 그 친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다.

어느 해 여름에는 아내가 중고등부의 수련회에 가서 저녁식사 후에 일대일로 여학생과 대화가 시작 되어서 밤을 새우면서 새벽이슬 맞을 때까지 대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한 번씩 깊은 대화를 한 아이들은 청년이 되어도 그 친근감이 이어졌고 영원한 선생님이 되었다. 그 들은 집사님 하고 부르는 것 보다는 선생님이 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 때 그 녀석들도 지금은 모두가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어서 자녀를 키우고 있다.   

아내가 교회의 중고등부 교사를 오랫동안 하면서 느낀 점은 청소년들이 부모와의 대화가 부족했다. 20년 전이나, 지금 이나, 또 앞으로도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 하고 있고 또 변화 될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그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몇 십 년전 자기세대의 생각만 가지고 자식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강요를 하기도 했다. 또 한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으나 청소년들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 하면서 오는 부모와의 갈등과 자신에게 남는 고민 등은 충격이 되고 탈출구가 없었다. 그런 모습들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더욱 깨달은 것은 자녀의 이야기는 무조건 다 들어주자! 언제든지 무슨 이야기든지 부모한테는 마음 놓고 말을 할 수 있는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자! 하는 것 이었다.

그리고 부모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말을 해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서 자녀가 되돌아 올 때 까지 사랑하고 기도 해 주자! 하는 것 이었고 아내는 나에게도 우리 가정에서 그렇게 실천 하도록 조언을 해 주었다.

우리가정은 다른 것은 몰라도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 하는 것만큼은 성공 했다고 생각 한다. 자녀들과의 대화는 지금도 항상 열려 있고 대화 내용도 무제한이다. 좋을 일 이든 나쁜 일이든 우선 가족에게 제일 먼저 알려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위로한다. 지금도 가족 간에는 비밀이 없고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무슨 일이든 토론하기를 즐겨한다.

그때는 중고등부 교사를 감당하면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보다 몇 배의 큰 교훈을 얻어서 함께 고민하고 기도 하면서 내 자녀들과 소통이 잘되고 올바르게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힘들었고 자녀들은 불편 했지만 그래도 참고 직분 감당 하면서 받은 열매라고 귀중하게 생각한다.
 자녀들이 청소년기를 교회에서 보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 부모가 청소년부 교사를 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 하다고 생각 한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