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KAPC 뉴욕동노회장, 총신대 및 합신대학원 졸업

요즘은 사람들이‘영성’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용어의 의미가 상당히 모호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면 문제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려고 하면 대단히 모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성이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spirituality, 독일어로는 Spiritualit로서 가톨릭적 배경을 가진 불어에서 왔는데 지금은 개신교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그 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폭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는 의미를 이 단어 속에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밖에서도 이 용어는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성의 본래의 뜻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뿌리박고 있는 기본적 태도, 즉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고 그분의 일에 헌신하는, 영혼의 특정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영성이란 영적인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의 의미가 모호한 것은 ‘영적인 것’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안에서는 이 용어가 성령의 역사와 관계된 의미로 사용되지만 성령을 이해하는 것도 사람마다 너무 다르기에 모호성은 여전히 남습니다. 영성이란 단어가 가톨릭적 배경에서 나온 용어이고 또한 대단히 모호한 개념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개혁주의 교회에서 사용하기가 합당치 않은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가 오늘날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영성’이라는 단어 앞에 '개혁주의적'이라는 형용사적 의미를 붙여서 '개혁주의 영성'이라고 구별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영성’이라는 용어대신에 ‘경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영성’과 비슷한 용어로 중세에는 ‘헌신’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을 종교개혁자들은 ‘경건’으로 대체하였습니다. ‘헌신’은 기도, 묵상,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 마음의 통일 등을 가리키는 총칭인데, 가톨릭적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한 경건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그 중심에 가지고 있습니다.

칼빈은 경건을 ‘하나님의 은덕을 알도록 일깨워 주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묶어진 경외’를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경건은 우리를 세상의 더러운 것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며 참 거룩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한 ‘경건’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에서 사용된 헬라어 유세베이아 ‘εὐσέβεια’의 번역이라는 점에서, '경건'이라는 단어가 '영성'보다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의 특징은 종교개혁 신앙의 3대 ‘솔라’(sola)에 잘 나타나 있는데,

첫째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둘째는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셋째는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입니다.

따 라서 개혁주의 경건은 성경적 경건이고, 그것이 개혁주의 신앙고백들로 표현된 것이기 때문에 개혁교회는 그것들을 존중합니다. 따라서 개혁주의 경건은 성경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문서들과 개혁주의 전통을 토대로 한 경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이 경건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를 아는 지식’을 가지고 정의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과 이에 대해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혁주의 경건의 주요 핵심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우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사람이 반응하는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경건의 특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또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존중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반응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참 경건은 은혜의 우선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중생에서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며, 거기서부터 경건의 실천이 나오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참 경건과 개혁의 열정이 식어지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다시 형식화되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호한 영성이 아닌 참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경건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영성'을 강조하는 이들 중에는 성경과 관계없는 영성 또는 성경과 다른 영성을 주장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때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객관적인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고 성경 말씀을 경건의 표준으로 삼고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바른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무이한 최고의 궁극적인 권위로 받아들이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따라서 학문적이라는 미명 아래, 또는 체험이라는 미명아래 성경의 권위를 폄하하거나 부인하는 신학자나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은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주장들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은 개혁교회의 전통적인 교리를 철저하게 옹호하는 가운데서 경건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도 종교개혁의 귀중한 유산인 전통적인 교리와 신학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출처가 모호한 비성경적 영성에 심취해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교리를 희생시켜가며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참 경건한 신자는 바울과 야고보가 말한 율법의 자유하게 하는 능력을 믿고 기쁨으로 실천하는 이들이고 또한 자기의 그릇된 인간의 욕망을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철저히 다스리는 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야고보서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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