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회의 전경

16세기 종교개혁의 시기에 믿음의 선조들이 성경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순교로 우리에게 물려준 여러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서들이 있다.

제네바 교리문답(1541년), 프랑스 신앙고백서(1559년),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1560년), 벨직 신앙고백서(1561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1563년)등이 그것이다. 정통기독교는 이 문서들을 매우 소중한 유산으로 여겨 공적으로 승인해서 교인들에게 가르쳐왔다.

그러나 16세기 말부터 이 소중한 문서와 교회의 신앙고백을 버리고 인본주의 사상을 끌어들이는 자들이 생겨났다. 물론 이것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현상이 아니라 펠라기우스 이후 늘 있어왔던 인본주의 사상의 발현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네덜란드의 정부 관리였던 코른헤르트였다. 이 사람은 ‘테스트’라는 자신의 책을 통해 벨직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에 관한 부분들을 비판했다(1583년).

그러자 네덜란드 정부는 라이덴 대학의 교수들에게 이 문제를 검토하고 해결하도록 지시했다. 이때 이 일을 맡은 사람이 야콥 알미니우스(1560-1609년)교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알미니우스는 코른헤르트와 토론하고 논쟁하는 중에 오히려 하나님 절대주권의 칼빈주의 사상을 버리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코른헤트르의 주장에 동조하게 되어 그 사상을 가르치고 전파하게 되었다.

1609년 알미니우스가 죽고 1610년 그를 따르던 목사 46명이 고우다에 모여서 알미니우스의 신학적 주장들을 정리해서 ‘항론’이라는 다섯 가지 항의문(조건적 선택, 보편속죄, 부분타락과 선행은총, 저항할 수 있는 은혜, 성도의 견인부정)을 발표하면서 벨직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의 내용을 수정 삭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의 영향이 날로 커져가자 결국 1618년 도르트레이트에서 각국의 대표단 105명이 참석하여 총회가 열렸다.

1618년 11월13일에 시작하여 1619년 5월9일까지 흐르테교회에서 열린 154회의 공식회의를 통해 도르트 총회는 알미니우스의 주장을 따르는 200여 명의 목회자들을 파면하고 알미니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결정하고 전통기독교가 가르치고 따라야 할 구원의 5대 교리를 작성하게 되었다. 이때 작성된 신조가 바로 도르트신조이다. 흔히 영어의 첫 글자를 따서 튤립 교리라고 일컫는 칼빈주의 5대 교리(전적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가 바로 그것이다.

믿음의 선배들이 물려준 많은 신조들과 신앙고백서들 가운데 역사적 개혁신앙을 이어가는 장로교회가 반드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벨직 신앙고백서(1561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1563년), 도르트신조(1619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년)와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 문답서(1648년)이다.

다른 문서들도 소중하지만 이것들은 꼭 가르치고 배우고 전수해야 할 보물과도 같은 유산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성경적인 구원의 도리를 가장 정확하게 담고 있는 도르트 신조를 공부하는 것은 개혁주의 기독교인의 필수 사항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 공부를 통하여 구원의 확신과 감격이 넘쳐나는 성도들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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