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저는 경기도 광주시 광주성결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완호 집사입니다. 목표를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삶의 굴곡이 심해서 평범한 분들과 비교해 보면 삶의 길이가 서너 배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저와 제 가족을 건져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표현이 부족하지만 서툴지만 끝까지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1) 반 아이들에게 사랑심기

아내의 중고등부 교사는 큰 딸애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 되었다. 첫 딸애가 중학교에 입학 하면서 엄마도 같이 청소년의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중고등부 교사를 시작 했다. 그리고는 내 사업장이 부도를 내고 지명 수배자가 되면서 경제적으로 견디기 힘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9년을 연속으로 중고등부 교사를 했다. 아내가 직장에 나가면서 몸이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도 주일에는 교사로서 사명을 계속 감당했으며 집안의 형편이 어려울 때도 새로 나온 반 아이들 에게 성경책은 꼭 선물을 해 주었다.

아마 지금도 그들이 성경책을 가지고 있으면 맨 앞장에는 그 때 아내가 직접 써주었던 인사말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집의 세 자녀는 불만이 많았다. 교회에 가면 자상하고 사랑스런 천사표 선생님이 되고 집에 오면 짠돌이 할멈으로 변한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서는 돈이 없어서 그토록 쩔쩔 매면서 어떻게 교회에 가면 반 아이들에게 밥도 사주고 간식도 사줄 수 있느냐고 하면서 엄마에게 항의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대답 했다. 내가 지금 이 고생하고 투자 하는 것은 다음세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다음 세대가 누구냐? 그 열매는 모두가 너희 것이다.  우리 부부가 어렵게 신앙생활 하는 것도 모두 너희들에게 복이 될 것이다.

사실은 아이들뿐만 아니고 나 자신도 그 당시에는 교회의 헌금부분에 대해서 불만이 조금은 있었다. 하루 하루 살아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궁핍했다. 그래도 아내는 꾸준히 변함없이 봉사하고 약정된 헌금을 했다. 그 당시에 나의 생각은 모든 헌금이 다 소중하고 신앙의 고백이 되겠지만 여자의 몸으로 너무 힘들게 일을 해도 부족한 가정 살림살이에 우선적으로 교회 헌금부터 챙기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어느 학기초에는 세 자녀들의 입학을 포함한 학비가 6백만원이었으나 수입은 절반에도 훨씬 못 미쳤다 그러나 아내의 신앙은 물질로 부터 기준이 된다고 말을 하면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또 한 아내는 구역장 할 때도 구역식구들을 최대한 보살펴 주려고 노력했는데 주일 학교 교사가 되면서 더욱 사랑이 풍부해졌고 남 녀 학생 불문 하고 육신의 자녀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다. 반 아이들과 많은 대화와 함께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는 자녀들 에게 늘 강조했다 “부모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자식이 천대 까지 복을 받는다”

2) 아들을 위한 헌금 심기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에 내가 부도를 내고 가정이 힘들어 졌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 할 때만 해도 제법 초롱초롱하고 공부도 잘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서 성격이 변하기 시작 했다. 돐이 지날 때에 대학병원에서 수술한 경험도 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집안의 환경이 갑자기 바뀌는 혼란속에 치과 치료까지 받고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치과치료를 받기위해서 일 년 넘게 혼자 다녔고 심지어 치과에서 이를 발췌하는 날도 엄마가 없으니까 혼자 가서 발췌 하는 날도 있었다.

아파트에서 생활 할 때는 학교가 끝나고 오면 엄마가 기다려 주고 숙제도 챙겨 주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컴컴한 주택가의 지하실 방에 혼자서 문 열고 들어가면 낯설고 무섭기도 하니까 학교 공부보다도 일상생활의 혼란이 더 컸다. 자연스럽게 성적은 떨어지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지적만 당하고 야단맞기 시작했다. 성격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모든 생활이 적응이 안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식구들이 하는 모든 말에 대해서 순종 보다는 반항이 훨씬 더 많아졌다.

어느 주일 아침에는 내가 주일 학교를 마치고 장년부 예배전에 차를 가지고 집으로 가서 아들을 데리고 교회에 오기로 했다. 그런데 집 앞에서 기다려도 아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집에 들어가 보았더니 준비는 전혀 안하고 느긋하게 음악을 듣고 있었다, 순간화가 나서 나는 아들이 음악을 듣고 있던 카세트를 그대로 집어던져서 박살이 난적도 있었다.

그런 아들을 위해서 아내는 기도와 함께 아들 이름으로 헌금을 심기 시작 했다. 엄마도 돈을 벌기 위해서 매일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아들과 함께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 직접 교육은 못하고 기도와 헌금으로서 엄마의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 다른 현금은 드린다고 표현 했는데 특별히 이 헌금만큼은 심는다고 했다. 그 헌금과 기도가 기초가 되고 뿌리가 되어서 아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이었다. 처음 에는 나도 큰 관심 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기도를 하지 않았지만 그 헌금은 성인이 되고 직장 생활 때까지 계속 되었다. 요즈음에 생각 하면 아내의 아들 사랑과 교육은 기도와 아들을 위한 헌금이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고 감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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