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정신 배반한 북한 주민들의 자세

북한문제의 연원(淵源)

 

북한 쪽에서 벌어진 역사유기(遺棄)나 역사훼조(毁造)에 대해 말해서 무엇하랴. 북한 김일성집단은 한반도 통치는 커녕 북한통치 조차 정통성이 애초부터 없었던 무리이다. 왜냐하면, 김일성부터가 한민족을 위한 대표성있는 역할이란 아무 것도 지닌 것이 없는 자였기 때문이다. 소련군 정보장교에 불과했던 그는 외세에 업혀 들어와, ‘미소(美蘇)에 의한 신탁통치(信託統治) 찬성’을 소련 지시대로 북한에서 주도한 자였다. 그리고 소련 군정(軍政)의 연장선상에서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자였다.

그는 본래 정통 공산주의 혁명이론에 충실한 자도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소련의 스탈린조차도 그를 북한 통치권자로 고려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김일성 집단은 원래 북한만의 통치권만이라 하여도 감히 손을 내밀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스탈린은 그러한 김일성의 북한권력 장악을 추인(追認)하게 되었는가?

더구나 그는 한민족 통치자격 제1조건인 인도주의적 삼일정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로 ‘반인류적 패권주의자’에 불과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김일성의 등장으로 인해 북한이야말로 2차대전 종료(終了) 이후에도 참된 해방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김일성 자신이 외세의 대리자에 불과한데다, 그 스스로 잔인한 폭력과 술수로 ‘반인간적 패권’을 즐기는 자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북한주민은 일제 대신에 ‘또 다른 하나의 반인류적 패권집단’에게 사로잡힌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가 어떻게 하여 북한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한국교회 내의 ‘제1세대 가룟유다 무리’ 때문이었다. 그 무리는 강양욱 목사 일파로서, 김일성이 잔인하게 북한을 제압할 수 있는 기회를 선점(先占)하도록 도왔다. 강양욱 무리는 단순히 친일(親日) 신학자나 목회자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제에 의한 신사참배 강요가 있었을 때, 고의적으로 적극적인 동참을 했었다. 그래서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 신자들과 민족 지도자들을 왜경(倭警)에게 고발하던 무리이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어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의 조카 김일성이 나타나 북한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민족 지도자들을 처단하는 일을 도와 달라 요청했다. 일제에 절하고 교회와 민족을 배신했던 이 무리들은 이에 또 한번 자구책(自救策)으로 배신을 저질렀다. 즉 기독교와 민족 지도자들을 한 묶음으로 김일성 요구대로 밀고(密告)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였던 것이다. 김일성은 이를 토대로 북한사회를 한번 틀어쥐게 되자, 그 폭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잔인한 피의 숙청을 단행하였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하는 짓을 보고 만족하여, 김일성 주도하에 소련군정이 실시되도록 허락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박헌영파’(남로당 계열의 정통 공산주의 이념집단 / 주로 남한혁명을 추구한 집단)를 김일성은 마음대로 숙청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김일성으로 하여금 북한권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김일성의 북한권력 장악기틀은 강양욱 무리가 제공한 것 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피의 숙청을 할 수 있는 폭력조직을 갖게 된 것도, 민족 계열과 기독교 계열의 지도자들 숙청도, 모두 그 후속결과였다. 스탈린의 신뢰는 원래 박헌영 쪽에 기울어 있었다. 그러다가 김일성에 의해 성공적으로 추진된 피의 숙청때문이었고, 박헌영파의 숙청성공은 스탈린의 지지결과였으므로, 그 또한 강약욱 무리의 배신 결과라 해야 옳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평양은 기독교적으로는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했고, 한국 크리스챤은 ‘제2의 이스라엘’이라 부름 받았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한 탄압과 회유는 민족 내부와 교회 내부에 친일파와 신학적인 타협주의자들을 낳았다. 이로 인해 일제시대엔 교권(敎權)과 성경 해석의 권위는 일본의 압력에 의해 이 타협주의자들에게 돌아가, 교회 안에는 샤마니즘과 영합한 기복주의(祈福主義)가 들어왔다. 또 현실도피적인 수도주의(修道主義)가 유행했고,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유주의 사상도 물밀 듯이 들어왔다.

이런 세력들은 일제 말엽의 신사참배 강요와 종교탄압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면서, 한국교회 안에 ‘제1세대 가룟유다 세력’인 강양욱 목사 일파를 출현시켰다. 또 교회밖에는 폭력을 숭상하는 좌파사상이 나타났다. 이 두 집단이 해방 직후에 영합하여 북한을 지배하는 정치 종교적 ‘세력집단’으로 급성장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강양욱 무리는 그 역할이 어디까지나 북한권력 장악의 ‘기회 선점’이었다. 정작 권력을 장악하게 한 ‘북한 내부의 힘’은 따로 있었다. 당시 소련 측은 김일성에게 이 내부의 힘이 동조하지 않았다면, 결코 북한 통치권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 주민들이다. 그들은 왜 그런 역할을 맡았을까?

그들은 애초에 김일성 집단의 이념이나 사회주의적 이상에 동조한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의 억압과 가난 속에 있다가, 패권(覇權)적인 힘에 소속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무조건 붙들고 보았다. 이제까지의 가해자들에 대해 보복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무조건 즐거이 참여했다. 거기에다 사회적 특혜가 약속되자, 현실적 이해타산은 양심과 도덕적 책임감을 폐기시키고, 즐거이 김일성 집단에 예속(隸屬)되었다. 이런 집단심리는 사회적 특혜와 공포감을 주는 지배력에 대해 우상숭배 심리를 지니고 절하게 된다. 그래서 배신자와 반동분자에 대한 피의 숙청을 두려워하는 한편, 이념에 대한 심리적 타성(惰性)으로 동조하는 데에까지 가게 된다. 또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비정상 상태를 변명하거나 정당화시키려 들게 된다.

인간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탐욕과 공포감에 의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최면(催眠)당한 상태가 된다. 이런 인간은 양심도 이성(理性)도 자유의지도 정상적인 기능이 상실되고 만다. 일단, 사회의 집단심리가 이런 병적인 증후군에 사로잡히면, 그 사회 자체 내에서는 그 악한 통치체제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그 통치권은 통제 불능의 악을 저지르는 패권집단으로 곤두박질하게 된다.

북한 주민에게 이런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은 일제 말엽 강요된 ‘신사참배(神社參拜)’ 문제와 더불어 출발했다. 1938년은 일제로부터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강요당한 해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해에 다른 곳도 아닌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장로교단의 총회가 열렸는데, 기막힌 내용이 가결되었다.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고 정치적 존경심의 표현이므로, 황국신민(皇國臣民)된 자들은 참여하는 것이 그 마땅한 도리이다!’

북한주민들은 그때부터 삼일운동 정신 같은 것은 비웃다시피 하며 벗어 던졌다. 그리고 힘과 이익 앞에 열심히 절을 하는 집단심리로 들어섰다. 그래서 김일성이 등장했을 때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붉은 완장을 두르고 ‘반동지주(反動地主)’들을 잡아들이는 데에 혈안이 되어 나섰다. 이를 인해 북한에선 기독교 신앙과 인도주의적인 윤리관, 그리고 민족의식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들의 동조에 힘입어, 김일성과 강양욱 무리들은 해방되자마자 소련의 스탈린 뜻대로 북한에 공산주의 사회를 그토록 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는 북한에서 교회를 박멸하고, 크리스챤과 올바른 민족세력을 학살했다. 나아가 김일성-김정일과 같은 비인간적 통치권자들에 의해 휘둘리는 ‘반인간적 사회(反人間的=反人類的 / 基督敎的 用語로는 敵그리스도 社會)에 예속(隸屬)당한 체, 반세기를 신음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그것은 인류사상 가장 부끄러운 비극의 한 페이지었다. 한마디로 말해, 북한사회는 삼일운동 정신을 잇는 한민족 정통(正統)의 정체성(正體性 ; Identity)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회이다. 김일성 자신이 소련군관인 외세의 대리자이었고, 그 정치이념 또한 스탈린식 좌파로서, 역시 사대주의적으로 외세에게 절하는 지배이념이다. 거기에다 그 외세라는 것도 인류사상 일제만큼 혹독한 반인류적 잔혹성을 지닌 이념이다. 그러한 김일성-정일 부자(父子) 권력체제가 2차대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남북의 주민들에게 어떤 괴로움을 주어왔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다.

이런 북한사회 형성과정을 살펴 볼 때, 북한 주민들이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지니고 출발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첫째, 북한주민들은 자신의 양심과 사회정의를 버리고, 이익과 힘을 택했다.

둘째, 이를 얻고자 폭력과 술수를 택해, 범죄적인 인민재판과 전쟁에 나섰다.

셋째, 결국 공포감의 포로가 되어, 인간을 우상화하는 백성이 되었다.

넷째, 우상화된 인간을 두려워 하는 집단최면에 빠져, 다시는 거기서 스스로 헤어나질 못하게 되었다. 앞에 다시는 스스로 저항할 수 없는 집단최면 속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이 북한주민들의 문제 핵심이다.

동시에 이 문제들은 인권지옥에 갇혀있는 북한주민들을 해방시킬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그 원리를 시사(示唆)해 주기도 한다. 그것은 지금 남쪽에서 보내고 있는 쌀과 돈, 성경을 어떤 초점에 맞추어 주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를 가리키는 코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북한을 이런 악한 상황에 계속 가두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외부세력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지를 알게 하는 나침판이기도 하다.

** 참고문헌 **

1) 한국 기독교와 민족의식 / 이만열 / 지식산업사

2)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 최덕성 / 본문과 현장 사이

3) 한국기독교(해방 10년)사 / 김양선 / 삼민사

4) 일본 개신교회사 / 김수진 / 홍성사

5) 해방전후사의 인식 / 송건호 외 / 한길사

6) 신사참배 반대투쟁 정신사 / 안도명 / 혜선출판사

7) 한국기독교와 민족운동 / 이만열 외 7인 (논문집) / 도서출판 보성

8) 영계 길선주 / 길진경 / 종로서적

9) 일제하 감리교회 삼대성좌 / 송길섭 / 성광문화사

10) 근대한국 민중종교사상 / 황선영 외 6인 / 학민사

11) 북한교회사 / 북한교회사 집필위원회 / 한국기독교 역사연구소

12) Apocalypse 2012 / Lawrence E. Joseph / Morgan Road Books-Broadway Books (한국 번역본/강미경/황금나침판)

13) The Trial of Hemry Kissinger /Christopher Hitchens

14) Amazing Grace / Eric Metaxas /Harper Collins Publishers

15) Kissinger and the Meaning of History /Peter Dic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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