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저는 경기도 광주시 광주성결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완호 집사입니다. 목표를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삶의 굴곡이 심해서 평범한 분들과 비교해 보면 삶의 길이가 서너 배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저와 제 가족을 건져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표현이 부족하지만 서툴지만 끝까지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1995년 12월 31일 낮. 거리에는 송년회와 새해맞이로 모든 사람의 기분이 들떠 있을 때에 나는 비를 맞으면서 걷고 있었다. 한겨울속의 가장 추운 년 말의 차가운 빗물이지만 내 몸은 차가운 것을 못 느꼈다,  가슴 속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오늘 교환 돌아온 수표를 결재하지 못하면 부도가 나고 나는 끝장이다. 찬비를 맞고 눈 섭이 얼어도 추위를 못 느끼는 내 몸과 마음 이었다. 그 날은 부도를 막았지만 결국은 3개월 후에 최종 부도처리 되었다.

경험 부족과 외주 관리 잘못으로 사업초기에 겪는 적자 발생! 그 정도 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 했는데 문제는 엎친데 덮치고 있었다. 봉제공장에 출고된 원단에서 사고가 발생 했다. 재단하기 전에 원단상태로는 한 컨테이너 정도의 물량이고 봉제품으로는 두 컨테이너 정도 되는 물량 이었다. 봉제를 하려고 공장에 입고 시켰는데 재단을 하고 봉제 하던 중에 이상하게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2-3일후에는 공장안으로 사람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악취가 심했다.

외주 공정중의 한 과정에서 실수를 해서 불량이 발생 한 것이다. 나도 무역부 사장하고 같이 봉제공장에 가보았더니 정말로 심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원단이 절단하기 이전이라면 외주 공장으로 돌려보내서 다시 작업을 하면 수정이 가능한데 이미 원단은 모두가 절단되어 있는 상태이다. 중간과정의 잘못된 외주 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해도 원단 값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금액이다. 

온 몸에서 기운이 쫙~~ 빠지고 적극적인 해결 보다는 이 현실에 도망가고 싶은 생각 밖에 없다. 결국은 부족한 자금에 이번 주문량까지 불량처리해서 손비 처리하면 영업이나 자금이나 버틸 여력이 없다. 아니 버티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그 때부터 포기라는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러나 월말이 되고 수표 교환이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한 달만 더하는 마음으로 다음 달에는 혹시 좋은 일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포기하는 것을 자꾸만 미루어졌다. 솔직히 포기 하는 것이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나도 영업부에 근무하면서 오래된 외상값을 받으려고 남의 집 대문 앞에 가서 밤을 새워 보기도 했고 거래처 사장 옆에서 하루 종일 붙어서 따라다닌 적도 있었고 독하게 욕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수모를 당하고 그 고통을 겪어야 된다고 생각 하니까 포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한번은 월말에 은행 창구 앞에서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친구한테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 또 다른 곳에서 돈 을 빌렸다. 내가 우선 달라고 했다. 우선은 그 돈으로 오늘 나부터 사용하고 며칠 후에 내가 당신한테 다시 해 줄 테니까 그 친구는 그 때에 갚으라고 했다. 아내는 화를 내면서 내가 빌려서 내가 갚는 돈이니 당신 하고는 상관 없다면서 들은 척도 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며칠 후에 꼭 가져 오겠다고 하고는 가져가서 못 가져 온 금액이 얼마인지 알고는 있느냐? 하면서 막무가내였다.

결국은 은행 창구 앞에서 남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큰소리로 부부싸움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여러번 반복했다.

부도직전의 월말에는 주위에서 아는 사람들한테 돈줄이 막히자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었다. 아파트 등기문서를 가지고 고리사채업자를 찾아 갔다. 그 날은 수표 교환을 겨우 막았지만 며칠 후에 그 소식을 들은 처가에서 돈을 준비해서 그 아파트 문서를 회수하고는 아내에게 주면서 두 번 다시 나에게 내어 주지 못하도록 다짐을 했다.

그 무렵은 사무실에서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만 들려도 깜짝 깜짝 놀랐다. 사무실에서 저녁이 되어도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집에 가면 가족들이 있는 앞에서 거래처의 수금해달라는 독촉전화를 받기가 싫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독촉 전화가 없었다.

그럴 즈음에 하루는 아내가 나에게 말을 했다. 교회의 헌금도 제대로 안하고 그동안 작정한 헌금도 안 하는데 사업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그리고 십일조의 빈 봉투를 볼 때 마다 보기가 안 좋다고 했다. 나도 자존심이 상하고 여자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마음먹고 현금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몇 개의 봉투에 골고루 넣어서 십일조의 빈칸을 채웠다.  그 헌금을 하나님이 받으셨을까? 이미 신앙도 떠났고 기도는 꽉 막혔다. 기도를 한다고 해도 입술로만 하는 형식적인 기도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도하며 죄에서 해방감을 얻었을 때의 그 감격! 성가대에서 대원들을 위해서 간절하게 했던 중보기도!  초등부 아이들을 끌어안고 뜨겁게 기도 하던 뜨거운 가슴! 그 모든 나의 신앙은 어디로 갔을까?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위로 향한 모든 통로가 완전히 막혀 있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 할 때부터 임원은 계속 했고 하루하루가 버티기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관장이나 부서장 등 임원은 계속 하고 있었다, 그 때의 임원은 이름이나 걸어놓고 필요한 경비나 내어주며 기도가 전혀 없는 이름뿐인 임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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