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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강해】(3) 정복자의 강포를 극복하며 정진하는 믿음
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

<칼빈 다니엘 주석> 1강, 다니엘 1:1-3.

1. 유다 왕 여호야김 3년은 BC 605년이다. 이 때 첫 포로가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첫 포로에 포함되었다. BC 605년는 갈그미스 전투(Carchemish)가 발생했고, 바벨론이 앗수르와 애굽의 군대를 격파해서 중동 지역을 평정한 해이다. BC 609년에 요시아 왕이 앗수르를 지원하는 애굽 군대를 므깃도에서 저지함으로(왕하23:29) 바벨론이 승리할 수 있었다. 요시아 왕이 므깃도에서 바로느고를 저지한 것은 계시에 의한 것이다. 요시아 왕의 전투는 가장 슬픈 전투였다. 자기 백성을 칠 제국을 돕는 전투에 임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주의 뜻을 이룸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앗수르는 사라지고 바벨론 제국이 등장했다. 세계 최강국 앗수르가 멸망한 이유는 북이스라엘을 정복했기 때문이고, 가장 빨리 멸망된 제국인 바벨론도 유대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죄는 피할 수 없다. 

2. 칼빈은 느부갓네살(1절)을 느부갓네살의 아들로 해석했다. “여호야김의 3 년”에 느부갓네살이 아버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왔다. 칼빈은 자기 해석이 합리적이고 요세푸스가 여호야김 8년에 일어났다고 해석한 것에 대해서 다니엘서를 읽어보지 않았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요세푸스가 성경에 무지했다고 주장했다. 요세푸스처럼 무식한 것은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의 하나였다. 참고로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 갈 때 예루살렘에는 예레미야, 에스겔이 있었다. 예레미야의 묵시를 무시해서 당한 고초였다. 칼빈은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간 사람을 더 부러워했을 것에 대해서, 절대 그렇지 않음을 제시했다. 이것은 칼빈의 실존이 드러난다. 프랑스에서 고통받은 그리스도인이 제네바 혹은 해외로 피신한 위그노들이 평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달랠 의인 세 사람에 다니엘을 포함시켰다(겔 14:14, 노아, 다니엘, 욥).

3.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고 공성전(攻城戰)을 전개했다(1절). 공성전의 기본은 성을 고립시키고 보급을 차단시키며 압박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도성인 예루살렘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는 것은 불경한 백성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불경한 백성을 심판하는데 경건한 백성들도 포함되어 바벨론 포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경건한 백성들은 여호와나 민족에 대한 불만이 없고, 충성과 사랑에 변함이 없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낙망함이 없는 것이다. 주의 자녀가 낙망하지 않을 것은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전유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루살렘이 여호와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소유하셨다. 그래서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있다. 왕과 방백 그리고 백성들이 범죄한 유대와 예루살렘에 대한 징벌의 수레가 멈추지 않음을 다니엘은 알았다. 예레미야의 묵시를 들은 자녀들은 여호와의 징계의 때에 징계를 기쁘게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졌다. 그래서 더욱 더 경건하게 서야 할 사명을 느꼈다.

4.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전에 있는 성전 기물을 전리품으로 획득해서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 보물 창고에 저장했다(2절). 정복자의 발에 밟히지 않을 것은 없다. 고대 전쟁은 신의 전쟁이기 때문에, 전리품으로 획득한 타국의 신전의 기물들은 정복자의 신전 창고의 전리품이 되었다. 바벨론의 신전은 마르둑을 기본으로 하는 만신전(萬神殿, pantheon)이었다. 이방인 정복자는 신을 수집 품목으로 생각했다. 자기들이 정복해서 소유한 신을 소집해서 만신전을 만들며 기뻐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에는 기물만이 있고 신상은 없었다. 그것은 이방의 어떤 신전과 달랐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전을 훼파하며 성전기물을 취했지만, 어떤 신상(神像)을 취하지 못했다.

5. 느부갓네살은 왕족과 귀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포로는 정복자의 위용이었고 정복지 관리 정책의 일환이다. 아스부나스라는 환관장이 소년들을 양육할 사람이었다. 포로 양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칼빈은 요세푸스가 다니엘과 포로들을 환관이 되었다고 한 것을 거부했다. 환관은 왕과 긴밀한 존재이고 통지 지역을 관할하기까지 한 긴밀한 직책이라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각 처에서 정복한 왕족과 귀족들 몇 사람을 선출해서 자기에게 보이라고 명령했다. 칼빈은 왕족과 귀족들은 정복된 지역의 인재들로 제시했다. 느부갓네살은 자기 위용을 자랑하려고 포로들을 훈련시켜 선을 보려고 했다.

6. 전능하신 하나님, 옛 백성에 대한 놀라운 섭리와 심판을 거울처럼 우리 앞에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주의 장중과 보호에 있음을 확실하게 믿게 하옵소서. 우리는 무슨일을 닥쳐도 주의 보호하심을 바라나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셔 잃지 않음을 믿나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임을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소유로 맡기셨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고 혼란하다 할지라도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옵소서. 우리는 주의 피의 대속으로 천국 안식까지 도착할 것을 원하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칼빈 다니엘 주석> 2강, 다니엘 1:4-8

1. 칼빈은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를 17-18세의 소년으로 추측했고, 용모가 준수한 것으로 제시했다(4절). 그리고 “재주가 통달, 지식이 구비, 학문에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수사학적 능력이 있음으 로 제시했다. 지식의 습득과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이 있음이다. 우리 시대에는 습득은 듣기와 읽기이고 전달은 말하기와 쓰기로, 국어의 4영역이다.

2. 느부갓네살은 왕궁에서 지낼 소년을 훈련시켰다. 먼저 바벨론(갈대아) 방언을 가르쳤다. 정복자로서 위상을 높일 정책이었다. 칼빈은 정복자의 정책에서 학문을 경시하지 않음에 대해서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16세기 유럽이 무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암흑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무지를 자랑하며 권력을 탐하는 사회는 가장 어둡고 부패한 상태이다. 느부갓네살은 장남삼은 행동일지라도 학문을 장려한 것이다. 그리고 갈대아 어와 풍습을 습득하게 해서 민족성을 소멸시키는 정책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국주의는 조선을 2등국가로 세웠는데, 전쟁이 발생하면서 징용을 하기 위해서 내선일체, 황국신민을 추구하면서 조선어 말살정책과 창시개명을 시작했다. 느부갓네살도 다니엘과 세 친구와 포로들의 이름을 개명한다.

3. 5절. 느부갓네살은 왕궁 음식과 포도주를 제공하면서 3년을 훈련시키도록 했다. 가장 풍요로운 음료를 제공하면서 민족성을 말살시키려 했다. 민족을 말살하는 것은 지역이동, 언어, 음식, 이름 등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3년을 양육 기간으로 두었다. 갈대아 언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간이다. 훈련장은 3년이 지난 뒤에 왕 앞에서 훈련 과정을 시연해야 했다. 훌륭한 재능을 가진 이들에게 3년은 긴 기간이 아니다.

4. 6-8절.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있었는데, 환관장이 이름을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 개명시켰다. 다니엘은 선지자로서 자기 상태를 제시한다. 유다 지파이고, 재능, 민첩성, 수사 능력, 신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포로로 잡혀와 호화롭고 자유로운 궁전에서 왕의 식탁을 대하면서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유다 지파였는데, 갈대아 사람으로 이름을 개명시켰다. 왕궁에 있는 유다인은 유대인이 아니라 갈대아인이 되어야 한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으로 살면서 갈대아인이 되든지, 유대인을 부정하고 갈대아인으로 살든지 해야 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유대인이지만 갈대아인으로 살아야 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사는 하늘의 시민권자이다(빌 3장). 그 땅의 백성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그 땅에 즐거움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갈대아의 정복자는 갈대아의 풍성한 즐거움을 제공하며 의식을 개조시키려 했다.

5.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해서 왕의 진미,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환관장에게 구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의도를 간파했다. 칼빈은 왜 그들이 왕궁의 식탁이 그들을 더럽힌다고 판단했는지에 대해서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왕의 의도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정복자의 정책을 거부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정복자를 반대하는 길은 쉽지 않다. 정복자의 길을 따르는 것이 주 하나님을 반역하는 길도 아니었다. 음식 먹음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난 뒤에는 차이 없이 음식을 먹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음식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버리는 것도 인내와 겸양의 품목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신사참배도 국가의례로 종교적 타격을 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의례 신사참배를 허용한 뒤로 일본국가종교인 신도예식까지 교회에서 진행해야 했다. 첫 술에 달콤함을 수용한다면 그 뒤에 오는 부패를 감당할 수 없다. 신사참배를 한 것을 교회를 지키기 위한 노고였다고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궁 음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주장한 것을 웰빙이라고 평가할 사람들이다.

6. 칼빈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순례하는 동안 우리를 더럽히지 않을 음식을 육신의 필요에 따라 먹게 하옵소서. 풍부한 중에도 절제하며 절제를 더하여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궁핍과 기근을 견디게 하옵시며 언제나 주의 영광에서 자유롭게 먹고 마시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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