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사시사철 교회를 통해 부활 찬송이 넘쳐나기를

영남대학교와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과 서양사학을 공부했으며, 고려 신학 대학원 (M.Div.)과 ACTS(Th.M.)에서 신학일반 및 조직신학을 공부한 후 대구 가톨릭 대학교 (Ph.D.) 에서 선교학을 위한 비교 종교학을 연구하였다.

<홍은개혁신학연구원>에서 성경신학 담당 교수를 비롯해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영남신학대학교, 브니엘신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숭실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이슬람 전문선교단체인 국제 WIN선교회 한국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실로암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며 한국개혁장로회(KRPC) 독노회장, 한국개혁장로회신학교 교장직을 맡고있다.

부활의 의미

[서 론]

해마다 봄이되면 우리는 부활주일을 맞아 기념한다. 그 때가 되면 여러가지 축하행사와 함께 계란을 삶아 나눠먹기도 하고 때로는 그 계란껍질에다 “축 부활”이란 색색의 예쁜 글씨를 써 넣기도 한다. 물론 그 계란은 그것을 깨고 나올 병아리를 연상시킴과 동시에 부활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도들은 왜 애써 부활절을 기념할까?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신앙이 부활의 진리 위에 놓여 있음을 스스로 나타내 기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근거하여 현세적 부활과 앞으로 있을 종말론적 영원한 부활을 소망하는 것이 성도의 신앙적 본질임을 되새겨 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현세적 부활은 무엇이며 종말론적 부활이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부활의 의미와 성도의 중생과 부활, 부활의 종말론적 적용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어 봄으로 성도님들의 부활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신앙 생활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부활의 의미]

부활이란 말은 죽음이란 말을 필수적으로 전제한다. 즉 부활이란 죽음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반드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성도들의 죽음을 예표하면서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구약시대에는 엘리사가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준 기사가 나온다(왕하4:35). 또한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막5:22이하)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눅7:11이하), 죽은지 사흘이나 지나서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셨다(요11:3-44).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도 죽은 유두고를 살린적이 있다(행20:9-12).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다른 사람들 즉, 엘리사나 바울의 사역을 동일시할 성격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을 살리심으로 자기의 메시야적 능력을 보여준 것이며 다른 선지자나 사도들이 이룩한 이적은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죽음을 이긴 부활의 성격을 일부 보여준 것이다.

성경에서의 부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나타난다. 그의 지상 사역의 절정은, 성경대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므로 그 메시야 사역을 완성시킨 것이다(요20:9, 고전15:4).

우리 성도의 신앙은 바로 그 부활의 기초위에 세워져야 한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신앙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것이며, 우리의 소망도 헛것이 되고 말것이다(고전15:14,17). 또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고백함으로써, 원래의 자기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없어지고, 이제 바울로 불리우는 그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새로운 피조물 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이란 무슨 의미일까?

[중생과 부활]

중생(born-again) 한다는 것은 변형되어 나타난다는 말이 아니고 죽어서 다시 태어 난다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중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옛 사람이 죽을 때라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그 마음이 비로서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단 자연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원칙이다.(원칙 이외에 다른 것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그 예로 태중에서 죽은 생명이라든지 스스로 자각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죽은 육아, 정박아 등)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지상의 성도들이란 산 상태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중생(rebirth:born-again)인 1차 부활(rebirth : resurrection)을 체험한 자이다(여기에서 1차 부활, 2차 부활이란 말은 요한계시록20:5, 6에 나타나는 첫째 부활, 둘째 사망등의 말과는 그 성격상 구별된 의미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것을 찾으라”(골3:1)고 했는데, 그것은 곧, 지상에 있는 성도들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었다가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후의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육체적인 죽음을 말하지 않고 성도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에베소서 2:5에서도 바울은 “(하나님께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했는데, 여기의 ‘살리셨다’의 원문 υνεζωοπο?η υ은 υζωποιεω(살리다)의 3인칭 단수 과거형으로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을 비롯한 성도들을 과거에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산 상태에서 다시 살리셨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는(중생) 성도는 영적인 부활을 체험하며 영원한 구원을 실제로 소유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성도는 이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점점 성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성도라 할지라도 세상(자연인의 사회) 가운데서 부단한 어려움과 싸우면서 그 삶을 영위해 가야 한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가 아닌 성도의 형편을 반영한다. 또한 성도의 육체적 죽음은 완전한 천국으로 인도하게 되며 이 세상적 모든 악한 요소로 부터는 해방된다. 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일순간 괘락이라고 누려오던 그것 마저 죽음으로써 완전히 잃게 되어 지옥의 멸망 가운데로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곧 1차 부활의 결과이자 최종부활의 현실인 것이다.



[부활의 종말론적 적용] 

-부활의 때와 형편-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 날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날이기도 하다. 성경은 미래의 어느 한 때가 이르면 순식간에 모든 죽은자들이 부활하며 살아있는 자들이 홀연히 변화할 것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며 죽은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2)고 했고 베드로 역시 그의 두번째 서신에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고 했다.

그 날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일대 혼잡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살전4:16,17).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알면서도 그의 구원사역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이 전혀 예견조차 못했던 급작스레 당한 끔찍한 심판에 이를 갈며 울게 될 것이다(마8:12; 13:42,50; 22:13; 24:51; 25:30, 눅13:28). 그러나 하나님의 성도들은 거룩한 신부(계21:9)가 되어 지금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든 영광스런 혼인잔치(마22:8,9; 25:10, 계19:9)에 참여하여 새 하늘과 새 땅(계21:1)의 백성이 될 것이다.
 
  -부활의 모습-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부활한 성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누가 묻기를 죽은자들이 어떻게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희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희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전15:35-38).
 
  바울은 여기서 부활의 조건과 모습을 보여준다. 그 조건이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씨를 뿌려서 그 씨가 죽지 아니하면 식물과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자기자신의 사역을 설명하시기 위해 식물의 씨를 들어 “한 알의 밀(씨)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부활하게 될 성도의 모습에 대해서 훌륭한 교훈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 동네 앞의 들판 비닐하우스 안에는 지금 수박이 한창 자라가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박의 새까만 씨만 계속해서 보고, 그 씨로부터 싹이 나와 성장한 수박은 한번도 본적이 없다면 그는 그 수박의 덩굴이나 아름다운 열매, 그리고 그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부활도 그러하다. 성도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고전15:44) 틀림없지만 그 형체가 어떠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성도의 부활하게 될 몸의 형체가 지금에 비해 완벽하고도 영화로운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그 때는 장가도 시집도 아니가고(마22:30) 썩지 아니할 것으로 부활하며(고전15:52) 죽고자 해도 다시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존재로 부활한다(눅20:36).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면 가족도 자녀도 없을텐데 무슨 즐거움으로 사느냐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지극히 인간적인 경험에 의존한 것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결론이다. 우리가 미래에 부활한 몸을 입고 들어가게 될 영원한 천국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즐거움에 비길 정도가 아니다. 좀더 나은 집을 짓고, 농경지를 넓히고, 소위 문화생활을 누리는 정도로 얻는 기쁨은 천국에서의 영화와 도저히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성도의 부활한 몸은 죄가 전혀 없는 순결한 몸이므로 이 세상의 슬픔이나 고통은 전혀 있을 수 조차 없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반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과 정 반대일 뿐이다.

모든 사람들은 인격체로 부활하기 때문에 영화와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저주와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양자는 이 세상에서 처럼 그 감정을 서로 적당히 나눠가지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한쪽에만 속하게 된다. 즉 천국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만 내리게 되고 지옥에 속한 자들은 사탄의 저주에 영원토록 시달리게 된다.

[맺음말]

세상에는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무수히 많다. 순전한 불신자들 뿐 아니라 기독교계 내에서도 때로 그러한 자들을 본다. 예수님 당시에도 진리를 오해한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처하면서도 부활을 믿지 아니하였다(마22:23, 행23:8). 오늘날에도 많은 기독교적 이단들이 생겨나서 ‘부활’을 부인한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방식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인간의 경험에 의존하여 가늠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20세기 많은 사람들은 신·불신자를 막론하고 ‘부활절’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 쯤은 안다. 그러므로 도시의 백화점 같은 데서는 ‘부활절 바겐세일’이란 대형간판을 내걸기도 하고, 최근의 신문에서는, 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인해 심각한 구라파의 일부국가에서는 AIDS를 예방하기 위해 피임기구를 부활절 기념선물로 장려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중생한 성도라면 이내 그 1차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았어야 한다. 따라서 부활주일을 보내면서 단순히 그것을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삶속에 체험적으로 영입하는 것이 실로 중요하다.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부활의 비밀을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주신 계시로 말미암아 다소나마 부활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게 됨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멀지않아 있을 영원한 부활을 소망하자.

“선한 일을 행한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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