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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다운 삶, 엡4:21-242014년 9월 7일,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텔레비젼 프로그램 중에 외모로 인해 심한 열등감이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선발해서 성형수술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렛미인이라는 프로그램이 그것인데 여기에 선택된 사람은 대대적인 수술을 받고 체계적으로 몇 달 간의 관리를 거쳐 변화된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이게 됩니다. 그때 사회자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너 완전히 새 사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 외모의 변화가 그 사람의 자신감에도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많은 변화를 주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모의 변화는 아무리 많은 변화가 있다 할지라도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마이클 잭슨 같은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흑인이지만 백인처럼 하얗게 되었고 두꺼운 입술도 가늘게 만들었고 코도 높이고 눈도 고치고 거의 전면을 다 개조했다고 할 정도로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성형의 부작용도 겪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믿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입니까? 새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때 달라졌다는 것은 성형수술을 해서 외모가 달라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외모는 예전과 그대로이지만 그의 생각이 달라졌고 가치관이 바뀌고 감정이 변하고 말이 달라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성령께서 수행하시는 대대적인 인격의 성형수술이 거행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내적인 수술입니다. 그 수술의 결과는 교만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으로 바뀌고, 강퍅한 심령이 애통하는 심령이 되고 고집스럽고 완악했던 사람이 온유하게 되고 세상에 주리고 목말랐던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됩니다. 조금도 다른 사람을 불쌍히 보지 않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게 되고 여러 가지 마음으로 복잡했던 인생이 하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청결한 마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늘 주위에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트라블 메이커가 주위를 화평하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며 의를 핍박하던 사람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요? 성령께서 삼위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지혜를 동원해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격의 대대적인 수술이 단행된 것입니다. 이렇게 심령이 새롭게 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고 오늘 본문은 이런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새사람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적인 성형수술도 시간이 지나 자리가 잡혀야 하듯이 마음의 대대적인 변화도 매일의 삶 속에서 새사람다운 삶으로 자리가 잡히고 터가 굳어지고 자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인 22-24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매일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서 새 사람의 삶이 자리 잡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말 번역은 마치 지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는 것처럼 되어 있는데 원어의 뜻은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22절에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할 때 벗어버린다는 ‘아포 데스따이’는 부정과거 시제입니다. 부정과거 시제는 이미 과거에 영 단번에 일어난 사건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24절에 새 사람을 입는다고 할 때 “엔듀사따이”도 역시 부정과거 시제로 아포데스따이와 엔듀사따이가 전부 21절에 가르침을 받았다는 단어와 연결되는 부정사입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진리의 성령이 예수님을 가르치고 전해주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그때, 이미 놀라운 역사로 옛 사람을 벗어 버렸고 새 사람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었다고 배웠습니다. 여러분은 가르침을 받은 대로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라 이미 새사람입니다. 그러니 과거에 예수 모르던 그때와 같이 옛사람같이 살지 말고 새 사람답게 매일을 사십시오.” 한 마디로 성도답게 살아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그러합니다. 성도는 신분상 새사람이지만 실존적으로는 여전히 옛사람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므로 날마다 새사람답게 새사람의 옷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23절의 심령을 새롭게 하라는 ‘아나뉴스따이’는 22절과 24절의 부정과거 시제와 달리 현재형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옛 사람을 벗어버렸고 새 사람을 입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것을 오늘 나의 삶 속에서 매일 새롭게 확인하고 계속 새로운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인 동시에 우리의 거룩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은 사람이라면 성도답게 살아라! 그것이 옳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합니다. 성도다운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옳은 것처럼 성도는 성도다운 것이 옳습니다. 욕의 대부분이 짐승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왜 사람인데 사람 같게 살지 못하느냐는 뜻입니다. 사람인데 짐승처럼 사느냐? 네가 사람이냐? 그런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욕을 먹고 교회가 욕을 듣는 대부분의 경우는 성도답지 않고 교회답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성도답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말이 안 되는 것인지를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옛사람의 옷을 입고 살지 않으려면 옛사람의 옷고 사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내가 지금까지 이런 옷을 입고 살아왔을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자각이 와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17절부터 계속 옛사람의 삶을 특징적으로 묘사해서 그러한 삶이 얼마나 누추하며 허망하며 어리석고 방탕한 것인지를 알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22절은 그러한 옛사람의 삶을 썩어져 가는 삶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더 거룩해지며 아름다워지고 존귀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계속 부패하는 존재들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더 타락해지고 더러워집니다. 우리가 더 타락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 더러워지도록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도 자동적으로 생각이 허망해지고 더러워지고 부패해지고 썩어갑니다. 생선과 육류를 냉장고에 넣지 않고 그냥 두면 썩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라 자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 흘러가며 결국은 썩어져갑니다. 사단은 그렇게 썩어져 갈 것을 유혹의 욕심으로 포장해서 좋은 것으로 속입니다. 매력적인 것으로 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배워야 합니다. 21절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데” 사람이 왜 그렇게 허망하게 사는 것입니까? 왜 그렇게 더럽게 사는 것입니까? 진리를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우리의 지각과 마음을 계속 새롭게 하셔야 합니다. 계속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만 매일 심령이 새롭게 될 수 있으며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도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는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지음 받은 새사람들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인생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리며 살도록 참으로 아름답고 존귀하게 지었습니다. 그것도 육신을 가진 체로 말입니다. 천사는 육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육신을 주셨습니다. 비록 육신이 한계가 있고 제한이 있지만 그 육신을 가지고 천사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잘 다스린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아들로 삼으시겠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이것이 깨어지고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을 가지고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쾌락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책임을 잊어버리고 남들을 희생시키고 괴롭게 해서라도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진리를 차버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누추하며 더럽고 허망하며 썩어져 갈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옷차림과 하는 행동과 말들을 한번 보십시오. 누가 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가는가? 시합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남들을 괴롭힙니다. 남들을 괴롭히므로 오히려 기쁨을 느낍니다. 왕따....... 남이 파괴되는 줄 알면서도 재미로 그럽니다. 세상에서 진리는 사라지고 왜곡되고 거짓 진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육신을 입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시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렇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몸소 십자가에 피 흘리며 돌아가셔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그렇게 몸을 입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도록 새로운 생명을 믿는 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예수님 안에만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성도답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말만 하지 않고 생각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습니까? 육신을 입고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에게 제시하신 예수님을 믿고 계속 그에게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것 없이 아무리 혼자 책보고 연구하고 노력해도 인간의 내면과 몸둥아리가 고쳐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철학을 공부하고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학을 공부하고 인간학을 공부해도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서 말씀을 듣고 배울 때 비로소 우리 몸이 바로 사용되어 질 수 있고 우리 생각이 바로 사용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성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진리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신 일을 들어야 합니다.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살도록 다시 살아나신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들어야 합니다.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들어야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듣고 가르침을 받아야 진리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 안다고 귀를 닫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듣고 또 들어서 성도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누추하며 어리석고 허망하며 더러운지를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허망한 삶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으면서도 성도답게 살지 못합니까?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이 없어서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못 깨달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과 건물과 모이는 숫자에 앞서 진리의 말씀입니다. 지금 그 교회에서 어떤 말씀이 선포되고 있으며 교인들은 그 선포된 말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통해 가르침을 받고 자기의 삶을 고치고 있는가? 힘들고 갈등이 있고 손해 보는 것이 있고 희생하는 것이 있지만 그 말씀대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매일 새사람을 입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없을 때 교회는 교회답지 못한 것이고 성도는 성도답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를 말씀 속에서 발견하시고 매순간 심령이 새롭게 되어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 답게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홍섭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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