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8 빛의 증거자는 기적 속의 사람이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창세기의 태초는 천지창조를 시작하면서 태초이고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조 이전의 태초이다. 말씀은 창조 이전에 존재했다.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하면서 말씀과 하나님을 구분 시킨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인격으로 표현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 말씀이 요1:14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다.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말씀과 하나님과 예수님은 어떤 관계인가? 말씀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말씀이고, 말씀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몇 분이냐 보다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가 알 수 없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 해도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 분이 하신 일을 볼 뿐이다. 우선 말씀이 이루시는 일에 관심을 두고(살전2:13하,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그 말씀을 따라 가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래서 참 신앙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말씀은 창조의 수단이다. 그러나 그 말씀이 곧 창조주 자신이다.(요1:1) 모든 만물은 말씀을 통해 이 세상에 나왔다.(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말씀을 드러내기 위해서다.(사43:7, 엡2:10, 요16:13-14)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창조를 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 안에는 생명과 빛이 있다.(요1:4) 그 생명과 빛은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을 증거한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님을 증거한다.(롬1:20)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만물은 생명과 빛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창조물다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본래 의도한 것이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런데 생명과 빛을 지닌 창조만이 하나님의 창조인데 또 생명과 빛이 오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창조의 빛과 생명이 상실 되었다는 말이다. 즉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빛과 생명이 없는 현재 어둠의 상태라는 것이다. 현재 이 세상이 사단의 통치를 받고 있기 때문에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께 대항하여 닫아버린다. 이것이 암흑의 상태라고 표현한다.

요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생명과 빛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다시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시겠는가? 우리의 모든 것이 죽음이고 어둠이라는 것을 알리고 생명과 빛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생명과 빛이 없는 것은 예수님의 활동이 아니다. 예수(말씀) 안에는 생명과 빛이 있다.(요1:4,요8:12) 예수님이 생명과 빛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생명도 없고 빛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생명도 빛도 없이 버티는 것이 인간이다.

어둠 속에 있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과 빛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왜냐하면 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과 빛은 인간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주입되어야 한다. 이 생명과 빛은 한순간 온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한량없이 주신다.(요3:34)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령을 계속 받는다. 우리는 성령을 계속 받아야 한다.(엡5:18, 갈3:3)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 받음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유지되고 그리고 계속 받음으로 주님의 모습을 유지하게 된다. 성령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 받는다. 하나님이 계속 주시기 때문이다.(행4:29-31) 그래서 성령을 받은 자는 항상 성령 충만을 구하는 기도이어야 한다.(엡5:18, 눅11:13, 요20:22, 요3:5)

말씀이 오셨다는 것은 자기 백성에게(요6:38-39) 생명과 빛을 주러 오셨다. 흔히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는데, 그 세상이란 모든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기 택한 백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요17:9). 하나님 성령을 주셔야 하고 성도는 은혜 받은 사람이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 성도는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다.

그렇다면 빛과 생명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가? 성령을 통해서 온다. 유일한 매체는 성령뿐이다. 인간이 아니다. 성령 외에 다른 매개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성령만이 예수를 증거한다.(고전12:3, 요16:13-14) 성령을 누가 주시는가? 하나님이 주지만 나중에는 예수가 준다.(행2:33) 성령은 아버지의 영임과 동시에 예수의 영이다(롬8:9) 그런데 성령을 받은 자는 보냄을 받는다.

요1:6-8 세례요한은 증거자인데 무엇을 증거 하는가? “나는 아니오”를 증거하는 사람이다.(요1:8,1:21-23) 오직 예수 그 자체 뿐이다. 교회는 예수만 드러내는 아니오의 집단이다.(요3:30) 그런데 요한이 “나는 아니오”를 증거한 결과가 무엇인가? 빛이다. 그리스도인의 자기부인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자기부인이다. 그런데 요한이 빛을 증거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요한이 말하는 빛이란 인간에게서 죄를 끄집어내는 빛이다. 빛은 죄를 비추는 빛이다. 그런데 인간이 제일 이해 못하는 것이 죄의 개념이다.

죄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과 단절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하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는 곧 자신의 죄에 대한 무지이다. 죄는 인간 스스로 절대 알 수 없다, 빛이 와야 알 수 있다.(요15:22)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 예수를 증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님이 길을 안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이 어둠이 빛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을 하나님만이 나타낼 수 있다. 성령께서 말씀 안에 빛과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게 된다. 빛과 생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사람은 자신이 성령을 소유했다는 생각을 버리고 누가 나에게 성령을 주시는가? 그 분께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사도요한의 취지이다.

빛은 예수님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어둠이다. 세례요한도 어둠이다. 그런데 어떻게 빛을 증거하는가? 빛과 생명을 받은 자만 생명과 빛을 증거할 수 있다. 세례요한은 빛을 받았던 자이다. 즉, 성령을 받은 것이다.(눅1:15-16) 빛을 본 자는 빛의 증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다.(마5:13)

결국 우리가 알 것은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적인지 알아야 한다. 빛의 증거자는 기적 속의 사람이다. 날마다 기적의 삶을 산다. 그 증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에만 관심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관심이 있다. 말씀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자기에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장일 목사, 본헤럴드 편집국장, 사라의터치 암치유사역 전문가, 지구촌목민선교교회(Global Jesus Missons) 목사, 저서: 『예수형 인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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