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ens And The Night, William Edward(1810-1877), 19th-century

세이렌

 

                       김종욱

 

운명 교향곡의 시작, 빅뱅,

화음은 계명 계명은 영원한 생명

 

우리 우주가 부푼 빵이라면 우리는 잼

태양을 졸이며 설탕 냄새를 풍기는

어린 조카들의 말랑한 표정들

하늘색 체육복, 실내화, 빈 도시락통,

공룡 물통, 노랑 파일, 정원 가방

기념품 같은 웃음들은 세레나데이거나

슬픈 레퀴엠

 

어린아이는 가지 말라고 말할 수 있어도

나는 이미 그럴 수 없어

우릴 비추는 수면이 다른 차원에서 접히고

어렴풋한 빛에서 내게 묻게 되는 것은

달의 눈동자와 생각의 수초

우연은 없어 벌어지면 필연

 

뭔가 더 달콤한 일이 생기거나

촉촉하게 쓸쓸해지길 바라

그러니까 시폰 케잌이고 싶어

별바다 별숲 그리고 나비잠처럼

벽에 걸린 액자가 가득한 미술관 같은

이야기는 하나의 영화가 되지 않아도

더 크게 한 아름 안을 수 있어

귀신 꽃이라는 이름의 수국

매를 때리듯 피어나는

굵은 빗방울들은 딱딱 소리를 내고

지붕에선 비가 새고 있어

구름이 병든 지붕 밑으로 질병처럼 흘러내릴 때

이윽고 꽃이 핀 숲 속의 오솔길

눈동자엔 왜 슬픈 하늘이 들어있었을까

 

내가 찾아내고 다듬었던 우리의 최후가

유리로 된 술잔이 깨지듯이

매끈하게 빨리 끝이 나기를

해체되는 짜릿함이 독한 술 같아서

신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악마가 된 것 같기도 해

욕망이 인간성을 해체하기 시작하면

욕망이 욕망을 욕망하고 그 욕망이

욕망하는 우리를 욕망하면 이상하게도

병든 욕망과 기억은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변형되고 자라나 물과 돌의 성질을 갖고

코끼리나 고래, 공룡 같은 거대한 동물들이

얼마나 사색적이었는지를 알게 하고 그러면

내가 공룡이나 고래 코끼리인 것만 같아

핵폭발이 일어나는구나 기대했었는데

이제는 멸종해 버린 거대함 같아

 

국경을 넘기 전엔 약간의 여유가 있었으니까

잠시 과자도 먹었어 꿈과 악몽의 부스러기를

소풍처럼 여기고 사진도 찍고 농담도 했어

근데 그 전쟁에서 누가 총을 쐈는진 기억에 없어

내 품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공감은 그 카메라를 고장 나게 해

아직 힘이 센 야생동물 같지

감정이입이 안되는 카메라로 마침내 무심히

아, 이 운명은 정말 대단한 장관이야

밝은 주황의 고통에서도 보색으로 타오르는

괴벽한 싸이프러스의 푸른 불꽃은

 

납으로 된 렌즈론 볼 수 없어도

아름답고 또 아름답구나 아름다워

네가 태어난 하늘에선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두 번째 노아의 홍수에서는

구겨지며 비명을 지르겠지

투명한 셀로판지 같은 빛의 공간과

비닐팩 같은 대뇌 피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속이 비치고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구겨지는 평면

함께 햇빛에서 무화과를 따먹는 감광

물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이

정숙한 비너스의 품에 안기기 위해

어둠이 여인이란 걸 알게 된 건

달빛의 수련 속에서 피어나

옷을 벗으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때

우린 그 검은 파도의 노랫소리에 잠기게 되겠지

1905년 5월 15일 에든버러에서의 예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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