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서정 = 하나님의 부르심ㆍ거듭남ㆍ회심ㆍ칭의ㆍ성화ㆍ견인

교회론에 있어서 항상 이해되어야 하는 전제는, 하나님 안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로 이뤄진 ‘비가시적 교회’(진정한 교회인 보편 교회)에 대한 것이다. 즉 예정(predestination)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선택에 기반을 두는 교회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가시적 교회’(진정한 교회인 보편 교회가 역사와 장소 가운데 나타나 있는 교회)인 지상의 교회들에 대한 정당한 이해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사들과 신자들에게 교회는 가시적 교회, 그것도 건물이나 회중에 머무르는 선에서의 가시성에 국한하여 이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건물일 뿐인 교회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집”이 되며,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회집일 뿐인 예배당 안의 회중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권속”들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추구 또한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 때문에 많은 목사들의 목회에 대한 인식이 예배당과 회중을 늘리거나 유지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라는 것이 결코 부동산에 불과한 건물이나, 그 건물을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해 주는 회중들에 본질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목사들의 목회에 대한 인식이 예배당과 회중을 늘리거나 유지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목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은 어디에 있으며, 그러한 본질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목회란 무엇일까?

먼저 교회의 본질은 앞서 언급한 비가시적 교회인 진정한 교회로서의 보편 교회에 있다. 그리고 그 교회는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택하심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모으시고 세우시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역사를 통해 더욱더욱 차고 넘치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가시적 교회가 역사 가운데서 가시적 교회로 드러나는 양상은 단순히 눈에 드러나는 건물이나 회중으로서가 아니라 “구원의 서정”(order salvation)으로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과 거듭남(regeneration), 그리고 회심(conversion)을 거쳐 신앙(faith) 가운데서 의롭다 칭함(justification)을 얻고 성화(sanctification)되며 마지막까지 견인(perseverance)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서정은 “은혜의 수단”(the means of grace)들인 말씀과 성례를 통해, 더욱 교회정치와 치리(혹은 권징)에 의해 확고히 서고 유지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된 교회인 장로교회에서는 항상 신앙고백과 교회정치를 통해서 교회의 확고한 표지(sign & mark)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말씀”(율법과 복음)과 “성례”(세례와 성찬), 그리고 이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치리”(정치와 권징)이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내용들 가운데서 교회는 확실하게 눈에 드러나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가시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다. 이 모든 서정들과 표지들이 오직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진정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마치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가 진리(성경의 진리이니, 그것의 표명이 바로 ‘교리’다) 가운데서 뿐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서 이뤄지는 것과 같다. 예배에 있어서 우리의 심령에 진정어린 고백과 동조가 이뤄지는 것 또한 성령님의 역사로서 가능하듯이, 교회가 일련의 서정(order)과 표지들로서 드러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오직 성령의 역사로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원리와 구조에 따라 거의 모든 조직신학의 순서에서 교회에 대한 설명은, 신론(the Doctrine of God)·인간론(the Doctrine of man)·기독론(the Doctrine of the person and work of Christ)·구원론(the Doctrine of the application of the work of redemption) 다음에야 비로소 다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의 최종적인 완성과 종결로서 비로소 종말론(the Doctrine of the last things)이 설명되는 것이다.

결국 목회(ministry)란 이 같은 일련의 내용들을 수종(attendance)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목회를 위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목회론(교회의 운용과 회중을 돌보는 것에 관한 다양한 실천들)이 실행되는 것이니, 더구나 그런 목회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다면 그 사역은 “울리는 꽹과리”(고전 13:1)가 될 뿐이며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참된 신학(진리)과 성령님의 역사(영적)가 없이 어떻게 교회가 눈에 드러나겠는가? 단언컨대 그러한 본질이 없는 것은 번듯한 부동산이거나 거기에 모인 군중들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사로잡힌 목사들이 바로 종교적 재벌(conglomerate)이요 종교적 연예인(star)인 것이다.

장대선 목사 (가마산장로교회 담임, 교회를 위한 개혁주의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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