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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사람의 특징, 엡 4 : 22-242014년 9월 14일,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 박홍섭
  • 승인 2018.02.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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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우리는 지금 17-24절의 말씀을 가지고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는 내용을 여러 차례 살펴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이 옛 사람의 특성을 허망하고 무지하며 무감각하여 방탕하고 더러운 욕심대로 살며 썩어져 가는 삶을 산다고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신자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없는 불신자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23절에 보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유혹으로 번역된 단어는 거짓, 혹은 속임수를 의미하는 ‘아파테’라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불신자의 삶은 속아서 그렇게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속입니까? 거짓의 아비 마귀입니다. 첫 사람 아담을 속인 것처럼 마귀는 모든 아담의 후손들을 그렇게 거짓으로 속여서 허망하게 살게 하고 자신의 욕심대로 살게 해서 결국은 썩어질 것을 열매로 거두게 합니다. 썩어질 것의 궁극은 사망입니다. 

이미 우리는 엡2:1-3절을 통해 인간이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어 마귀의 지배와 세상의 영향 아래서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따라 육체의 욕심대로 살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존재임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자연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나고, 태어나서도 모두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거기에 익숙해서 그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시작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영적사망으로 시작하고 과정도 사망과 그것과 연결된 썩어질 것들을 구하는 것으로 진행되다가 결국은 육신의 죽음과 더불어 비참하고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인 영원한 사망을 맞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생명이 떠나 있어서 그것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무지하고 무감각합니다. 그 무지함과 무감각 속에서 나름대로 기쁨과 슬픔이 있고 성공과 실패가 있고, 울고 웃는 것이 있지만 결국은 영원한 지옥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모든 인생들의 현실이고 비참한 운명입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사실이 그러합니다. 성경의 진술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을 불쌍히 보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리시고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 가시면서 결국은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도록 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 시작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중생인데 우리 편에서는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새사람은 옛사람만큼이나 분명한 특징이 있는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24절을 보실까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우리말 번역에는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이 마치 지금 우리가 해야 할 현재의 일인 것처럼 번역했지만 원래의 뜻은 과거시제라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도란 이미 예수 안에서 그렇게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된 존재인데 그 새사람의 특징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의로움과 거룩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따라서 그렇게 지음 받은 것입니다. 창1:26절에 하나님이 첫 사람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었고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지으신 것처럼 하나님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지으신 새사람들도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거룩함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새사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요? 의와 거룩함입니다. 의와 거룩함은 하나님의 속성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전통적으로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형상을 말할 때 넓은 의미의 형상과 좁은 의미의 형상으로 구별해서 설명했습니다. 분리가 아니라 구별임을 유의하십시오. 넓은 의미의 형상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탁월한 능력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도덕적인 존재로 살수  있도록 이성적 능력과 기능들을 주셨고,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다스리며 살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과 영적인 능력도 주셨습니다. 모든 짐승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능력과 그들을 관리하며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인간은 육신을 입었지만 그렇게 탁월한 도덕적 영적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것이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그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을 바르게 기능하게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바르게 다스리며 살도록 하기 위해 주신 은혜가 바로 좁은 의미의 형상인 의와 거룩함입니다. 

의는 바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르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인 의가 있을 때 인간은 모든 것과 바르게 관계할 수 있고 바른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육신을 입었지만 육신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영혼과 바른 균형을 유지할 수 있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다른 피조물과도 균형을 이루며 바른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속성이 바로 의입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 온 것입니다. 

거룩은 악과 분리되는 것이며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그 안에 어둠이 없는 빛이시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완전한 거룩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그대로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바르게 하는 의로운 분이며 죄와 악을 철저하게 미워하며 혐오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그렇고 아들 하나님도 그렇고 성령하나님도 그러합니다.  

인간이 삼위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의 속성인 의와 거룩함으로 지어져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기능과 능력과 은사를 제대로 사용하고 바르게 발휘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올바로 관리하고 다스리고 살 수 있도록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살 때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일어난 비극이 무엇입니까? 계속 그렇게 살아서 영원한 생명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사단의 속임수에 속아 하나님을 거스르고 불순종과 죄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왜곡되고 어그러지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인간에게 있었던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인 거룩과 의가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넓은 의미의 형상인 이성적 능력, 도덕적 능력, 육신의 능력, 영적 능력도 파괴되고 왜곡되고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도 다른 피조물에 비해서는 여전히 월등하고 탁월하게 남아 있지만 원래에 비해서는 너무나 많이 축소되고 왜곡되고 부서지고 어그러진 것이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능력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고 바르게 기능하게 하는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거룩함이 완전히 부서지고 사라졌기 때문에 그나마 희미하고 왜곡되게 남아 있는 넓은 의미의 형상마저도 오직 자기만을 위하여 사용하면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성경이 그렇게 강조하는 허망하고 어리석고 무지하며 더럽고 방탕하며 부끄러운 욕심에 자기를 방임하며 살아가면서 결국은 지옥을 향하여 썩어질 것을 구하며 사는 삶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인생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유발하는 진노의 자녀라고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새사람이 무엇입니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거룩함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다시 회복된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되었기에 그리스도인은 의와 거룩함 안에서 모든 것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고 죄와 악을 미워할 수 있고 혐오할 수 있게 된 유일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도 사단은 첫 사람 아담과 모든 옛사람을 속인 것처럼 새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도 끊임없이 유혹하고 속여서 새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까지 동원해서 더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위하여 살도록 부추깁니다. 

성도는 그 속에서 교회를 통해 끊임없이 새사람답게 살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모든 사단의 속임수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고 양육해가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진리입니다. 그래서 24절을 다시 보시면 새사람을 말하면서 그냥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진리를 강조합니다. 원어의 뜻은 진리가 거룩함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앞의 의로움에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진리의 의로움과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진리의 의로움과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사단이 첫 사람과 모든 불신자를 거짓된 유혹으로 속였고 지금도 인생들을 속이고 있다면 하나님은 진리로 그의 백성들을 속임수에서 지키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중생하지 못한 불신자의 삶 전체는 거짓과 속임수와 유혹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다음 주에 보겠지만 새사람의 구체적인 삶의 실천항목으로 가면 맨 먼저 거짓을 버리라고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진리의 의로움과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시고 계속 진리로 유혹의 욕심을 대적하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이끌게 하십니다. 진리입니다. 

새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거짓의 정반대인 진리로 지음을 받은 의와 거룩함입니다. 의와 거룩함은 진리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사람의 전체적인 특징은 진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로 우리에게 당신의 의와 거룩함이라는 속성을 주셨고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의와 거룩함은 교회에게 허락된 진리에 의해 자극을 받고 진리로 성장함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진리로 거룩함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요17:19절입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러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요17:17절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이 진리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단은 교회와 성도를 이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속이고 유혹하고 거짓말 합니다. 교회와 성도마저도 진리를 등한시 하게 만들고 자기에게 집중하도록 부추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모든 고통과 비참은 진리에서 멀어지고 마귀의 말을 믿고 거짓을 따르고 거짓을 믿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 하는 자였습니다. 인간이 마귀의 말을 듣는 그 순간부터 진리를 거부하고 거짓과 속임수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리를 아는 지식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으로 마귀의 속임수와 거짓과 그로부터 기인한 모든 허황되고 허무하고 어리석고 무지함과 더럽고 방탕한 욕심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진리만이 모든 거짓과 속임수에 절어 있는 인생을 자유케 합니다. 

오직 새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서 이 진리를 수용케 되고 믿을 수 있고 이 진리로 자신의 삶을 진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리에 거하게 될 때에만 죄로부터 자유롭고 의와 거룩함으로 모든 것을 바르고 균형 있게 유지하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참된 자유의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십자가로 구원해서 하나님의 진리로 이끌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내가 온 것은 세상에 진리를 증거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주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듣고 배워서 자기 자신들에게 적용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진리로 의로워진 우리들이 모든 것을 바르게 사용하며 바르게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그리스도처럼 죄와 악을 미워하고 혐오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참된 자유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이 된 성도들이 매일 심령을 새롭게 하면서 새 사람답게 사는 유일한 원천입니다. 진리를 계속 들으시고 붙드시고 순종하십시오. 

말씀을 맺을까요? 오늘 성경은 예수 믿는 가치를 믿기 전과 믿고 나서의 차이로 설명합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믿기 전보다 더 잘살고 더 건강해지고 더 유명해지고 더 높아지는 차원이 아닙니다. 믿기 전에는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본질적으로 자기만 추구하던 허망한 인생이었습니다. 무지했고 무감각했고 어리석었고 더러웠고 방탕했으며 썩어질 것을 향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예수 믿고 예수 안에서 바르게 되었습니다. 진리 안에서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부하던 가난하던 건강하던 약하던 유명하던 무명하던 어디서 무엇을 하던 생명에 속한 자가 되었고 아름답고 존귀하며 썩어질 것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 되셔서 모든 것을 인도하고 이끄시고 지키시는 평안의 삶이 되었습니다. 거지에서 왕자가 되었으며, 포로 된 자에서 자유 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전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존재와 가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원수인 사단은 지금도 거짓과 속임수로 이 변화를 기뻐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도록 부추깁니다. 계속 진리를 듣고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진리로 자유케 되며 진리로 의로움과 거룩함을 매일 발휘하며 사는 한우리 식구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박홍섭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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