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26-33절과 40절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보다는 예언이 더 유익함을 설명'한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며 그가 줄곧 강조해온 문제에로 되돌아옵니다. 즉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본문 26절을 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너희가 모일 때'라 한 것은 '모여 예배드릴 때'를 말합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은 각자가 예배에서 무엇을 하게 되든 그것이 예배하는 모든 이들에게 유익하도록 해야 할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모든 회중에 대한 사랑의 관심과 2)교회의 덕 세움이 모든 일의 주된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방언이나 예언뿐 아니라 찬송, 기도, 말씀, 계시, 통역의 은사 등 그 밖의 모든 은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다른 다양한 은사를 가진 이들이 모두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까? 우리는 "그 원칙"을 사도 바울의 두 가지 말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하나는 본문 33절에서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한 말입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 안에서 모든 일은 질서를 따르고 화평을 좇아서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2)다른 하나는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고전 14장의 제일 끝 40절에서 보는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질서"와 "화평"과 "품위"가 유지되게 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다시 '방언과 예언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 27-33절을 다시 읽어 봅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우리가 이끌어낼 수 있는 "기본질서"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1)첫째,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말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라'는 것입니다. 순서를 따라 하는 것도 중요하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하라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회의하다 보면 어떤 문제에 대해 두세 사람이 발언하면 대개 할 말 다 나왔는데도 나도 한 마디 해야겠다고 어디서 자다가 나온 것처럼 이미 다른 사람이 다 한 말을 또 다시 반복해서 다른 이들을 짜증나게 하고 회의가 길어지게 만드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부디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2)둘째, 통역할 사람이 없으면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즉 "무슨 말을 하든지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게 독백을 늘어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3)셋째, 다른 사람이 할 말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발언을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데도 쉬지 않고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며 발언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고 한 것은 '앞에서 이미 충분히 발언한 사람은 새로 하나님으로부터 할 말을 받은 사람에게 발언의 우선권을 넘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4)넷째, 누구든지 말을 할 때는 질서를 지킴으로써 (1)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게 하고 (2)모든 사람에게 권면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란 1)하나님 아버지와, 2)그 아들 독생자 예수님과, 3)보혜사 성령님은 각각 다른 역할을 하는 독립적인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한 분(一體)이라는 기독교의 모든 교리 중 가장 핵심 교리입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회의 정통신조로 공인되었으며,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추인됨으로써 천주교와 개신교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돕는이'라 하니까, 아버지 밑에 아들이 있고, 아들 밑에 수행비서쯤 되는 성령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그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동일하게 한 몸이라 그래서 한문으로는 一體(일체), 즉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주는 교훈"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관계가 어떠해야하는지의본보기"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질서는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 이런 수직으로 된 상하관계가 아니라 그런 직분은 일을 잘 하기 위한 기능이고, 실제로는 동일하게 한 몸인 一體(일체)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지 중에라도 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나아 보인다면 그것은 내가 이미 결코 가볍지 않은 중병에 걸린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다른 모든 지체들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주님께 하듯 하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서로서로 주의깊게 잘 살펴보시면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나보다 잘하는 것들이 몇 가지씩 있지 않습니까?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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