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화 권사(국제학박사, 전 광주광역시 시의원)

지난 2월 12일 향년 83세로 소천한 방철호 목사에 대한 조사(주월교회 장여옥 장로)를 홍인화 권사가 다듬었다. 

방 목사의 부음(訃音)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방 목사의 부인인 고 김광숙 선생님은 필자의 중학교 가정과목 교사였다. 20여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매우 다정다감한 아줌마 선생님이었다. 방 목사는 한 여자만을 사랑하라고 한 성경의 말씀에 따라 그걸 실천한 분이다. 1남1녀의 유가족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조화와 부의금을 받지 않았다. 방 목사의 시신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또 장례에 오는 조문객을 본인이 적금한 돈으로 대접하라는 뜻을 그대로 받들고 있었다.

한호 목사(주월교회 담임)의 사회로 진행된 입관예배, 발인예배을 거행했다. 한 목사는 광주를 위해 수고한 방철호 목사의 생전 광주사랑을 기억하며,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본받기를 기원했다. 요즈음 정말 보기드문 감동이 있는 장례식이었다. 고인은 대한민국미술인협회 회원으로 한국 현대미술대상전 추천작가로 국내 개인전 20회와 스위스 프리버그 초대전을 가진 바 있다. 고인의 미술품을 모아 오는 22일 유스퀘어 금호갤러리에서 유고전이 열릴 예정이다.

충남 출신으로 조선대 문리과 대학에 진학하며 광주와 인연을 맺은 방 목사는 이후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며 광주를 사랑하는 일관된 삶을 살았다. 4·19혁명과 5·16 시위에 참여했고 유신치하에서는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던 남영동 지하에 끌려가 고문을 받기도 하였다. 1975년 민주쟁취국민회의 광주전남집행위원장을 맡았으며, 1980년 5·18 당시에는 시민 수습위원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광주시 기독교수습대책위원회를 조직해 사망자들의 장례비를 위하여 모금활동을 벌였다. 그해 5월 29일 처음으로 집단장례가 치러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목관을 직접 제작해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5·18 희생자들만의 집단묘역 조성을 요구했으나, 광주시는 망월동 시립묘지의 일반인 묘역을 주장했다. 이때 방 목사 등이 나서서 유족의 뜻을 강력하게 집단 묘역으로 가닥을 잡았다. 오늘날 5·18국립묘지가 있기까지 숨은 공로자인 셈이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부활절 예배를 가졌던 광주기독교단을 하나로 이끌어낸 당사자도 방 목사다. 이후 광주 사회복지에 헌신하는 한편 갈등과 불화가 있는 곳에 달려가 조정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하며 판매수익은 불우한 이웃돕기에 평생을 바쳤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방 목사는 노인들을 위한 광주공원 사랑의 쉼터 조성에 기여했으며 지난 2006년에는 주월교회 목사 퇴직금 1억7천여만원을 교회에 기부했다. 방 목사의 기부금은 노인요양원 ‘주월의 집’ 개설에 사용됐다.

또 얼마 전 동서화합에도 힘을 쏟았던 그는 자신과 가족보다는 타인을 위해 살았던 오방 최흥종 목사와 강순명 목사를 생각나게 하는 분이다. 정치권과 정부에 지역 균형발전을 촉구하는 토론회 준비에 손녀 대학 등록금으로 마련했던 돈을 내놓기도 하였다. 정말 아낌없이 내놓은 방 목사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그의 광주사랑과 애민정신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푯대가 돼줄 것이다. 

홍인화 권사(국제학박사, 전 광주광역시 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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