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의 신앙고백(1530)이 보여주는 개혁된 교회의 특성

독일에서 루터에 의해 주도된 개혁의 움직임과 별도로 스위스 연방에서의 개혁의 움직임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어떻게 구별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스위스의 개혁을 상징하는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의 이해가 루터와 어떤 일치 혹은 구별이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카를Ⅴ세(Charles Ⅴ, 1500-1558)에게 보낸 츠빙글리의 신앙고백에서도 루터의 슈말칼덴 신조가 사도신조와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계승함을 밝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니케아와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지지한다고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트렌트 회의의 문서들이나 거의 모든 종교개혁 시기의 신앙고백서들, 특히 프랑스 신앙고백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특성이다. 이러한 특성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경우에, 특정한 신조들을 지지하는 표방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의 일치된바(특히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를 고백하는 형식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혁된 신학의 출발선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전제가 바로 교부들에 의해 작성된 정통 신학과의 일치, 혹은 연장선상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현대의 교회들이 정통 신학의 계승보다는 현대 문맥으로의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즉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정통적인 고백을 따르는 것으로 모든 신앙고백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츠빙글리의 신앙고백은 곧장 2항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관하여 고백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이미 루터의 신앙고백이나 교리문답과 확연히 구별되는 순서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잘 알려진 벨기에 신앙고백(1561)이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과도 확연히 다른 츠빙글리 신학과 고백의 독특한 점이다.

츠빙글리 신앙고백(1530) 2항은 “하나님의 주권”에 관하여 고백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이 하나님은 만물을 자의로 다스리시는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어떤 것을 결정하시는 그의 목적은 어떤 피조물에도 의존하시지 않으시며, 인간의 논의(discussion)나 사례(example)가 있기 이전에 미리 결정하십니다.”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만물을 그 어떤 것이든지 자유롭게 결정하고 처리하십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다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주께서는 태초에 만드신 사람이 타락하도록 하셨으나(“주께서는 태초에 만드신 사람이 타락하도록 하셨으나”라는 문구를 김영재는 “주께서는 태초에 만드신 사람이 타락할 것을 아시고 예견하셨으나”로 번역했으나, 이 발제에서는 James T. Dennison, JR의『Reformed confessions of the 16th and 17th Centuries in english translation vol-1』의 영역을 따라 번역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키실 그의 아들에게 인성으로 옷 입히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선하심을 모든 면에서 나타냈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그 안에 자비와 공의를 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을 바탕으로 츠빙글리는 6항에서 교회에 대한 그의 견해를 고백한다.

교회에 관해 고백하는 6항을 보면, 츠빙글리는 고백하기를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된 선택받은 자라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이에 관하여 바울이 교회를 가리켜 흠도 점도 없다고 말할 때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루터가 교회와 관련하여 슈말칼덴 신조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올바른 믿음에 있다.”고 하여 교회의 거룩성에 중점을 두어 고백한 것보다 더욱 진전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된 선택받은 자라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점에서 츠빙글리의 교회론은 루터보다 더욱 깊이 있는(성경의 원리에 더욱 들어선) 정의로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무엇보다 츠빙글리는 루터와 달리 “예정”(predestination)에 의해 교회를 규정한다. 그리고 “선택”(election)에 의해 교회를 언급한다). 

계속해서 츠빙글리는 언급하기를 “택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만 아십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의 지체들은 믿음을 가졌으므로 자신들이 택함을 받은 자들이고 이 첫 교회의 지체들인 줄 압니다. 그러나 자신들 이외의 다른 지체들에 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사도행전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작정된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믿는 자 자신밖에는 누가 진실로 믿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믿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바울의 말씀에 다르면, 믿는 자는 성령의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택함을 받고 인침을 받아 진실로 자유롭게 된 것을 알고, 노예가 아니라, 가족으로 아들이 된 것입니다….” 라고 하여 예정(predestination)을 바탕으로 하는 선택의 교리에 근거하는 설명으로 교회에 대해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츠빙글리의 교회론은 루터의 정의보다 훨씬 성경에 천착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예정과 선택의 개념을 확고하게 고백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츠빙글리의 신앙고백에서 설명하는 교회론에서 더욱 독특한 점을 하나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유아세례’(infant baptism)의 근거가 되는 언급들 가운데서 교회를 설명하는 점이다. 예컨대 츠빙글리의 신앙고백 가운데 이러한 문구를 볼 수 있다.

“아직 신앙이 없는 사람들 중에도 택함을 받은 이들이 많습니다. 마리아와 요한과 바울이 아직 유아일 적에, 아니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택함을 받은 이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이 사실을 신앙으로도 알지 못했고 게시를 통하여서도 알지 못했습니다.……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첫째 교회는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것이고,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자신들이 이 첫째 교회의 지체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진정한 신앙고백을 유지하는 한, 하나의 교회는 존재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유아들, 즉 이삭, 야곱, 유다와 모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 교회에 속한 교인이며, 또한 사도들의 설교 아래서 교회의 첫 열매들 가운데 있는 부모의 유아들이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올바른 믿음”으로 반응할 수 없는 유아들이 어떻게 교회의 일원일 수 있는지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츠빙글리의 교회론을 함축하는 신앙고백의 문구가 바로 “교회는 달리 또한 보편적인 의미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띤 모든 사람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아래 적을 둔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고 성례에 참여하지만, 그 중에는 아직 마음으로는 그리스도를 싫어하거나 그를 잘 알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이 교회에 속한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한 문구다.

 

앞서 루터의 교회론이 ‘성령 〉 거룩성 〉 공동체’로서의 교회였던 것에 비해, 츠빙글리의 교회론은 훨씬 광범위하면서도 성경에 깊게 참작하여 개혁된 신학에서의 뚜렷한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의 주권의 강조와 예정,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근원적인 설명 가운데서 비로소 비가시적 교회(invisible church)와 가시적 교회(visible church)의 연계성 가운데서의 보편교회(catholic church 혹은 universal church)의 이해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츠빙글리의 신앙고백에서 비로소 참된 교회에 대한 개념이 상당하게 확립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 위 내용은 4월 16일(월)로 예정된 "바른교회 바른목회 바른예배 세미나"(부산 엘레브선교센터 8층)에서 발표될 예정인 강의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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