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3일 동양장로교회 신앙강좌, 강사 : 장대선 목사

1.예배의 본질에 바탕을 둔 로마 가톨릭의 미사와의 구별

1) 종교의 행위 2) 예배의 본질 3) 미사(missa)에 관하여 4) 개혁된 예배

2. 개혁된 교회로서의 장로교회의 예배

1) 장로교회의 교회관 2) 장로교회의 교회관 가운데서의 예배

3. 장로교회의 목사(Pastors)와 가장(Head of family)

1) 장로교회의 목사의 역할  2) 장로교회 가정의 가장의 역할  3) 장로교회의 목사와 가장의 상관성

4. 가장과 가족 개개인

1) 가정의 목회자인 가장  2) 가정에 대한 가장의 책임  3) 가장에 대한 가족 개개인의 책임

5.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통해 산출된 두 개의 예배모범, 즉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과‘스코틀랜드 가정예배모범’으로 널리 알려진 가정예배모범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장로교회의 공예배(Public worship)와 가정예배(Family worship), 그리고 개인 신자의 신앙의 연계성은 교회의 ‘목사’(혹은 당회)와 가정의 ‘가장’에 의해 긴밀하게 연계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목사의 기능과 역할이 중요함과 아울러, 각 가정에서의 가장의 기능과 역할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의 공적인 신앙양육이 개인 신자들에게 완전하게 이해되고, 이를 바탕으로 생활에 실천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목사와 가장의 역할이 참으로 중대하다. 그러므로 교회의 치리에 있어 상당부분이 가정의 가장이 가정예배를 인도하지 않음에 대해 시행하도록 가정예배모범은 언급하고 있다.

1) 현대 신앙인들의 문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의 신자들과 그들의 가정에 있어서 전통적인 가장 중심의 가족 개념이 붕괴되고, 이미 완연하게 개인주의화 된 가족개념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의 인솔에 의한 주일예배의 개념은 거의 사라져버렸고, 각자의 필요나 부서(교육부서 혹은 봉사기구)에 맞춰 각각의 일정으로 주일예배가 이뤄지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조차 가족이 각각의 일정에 맞춰 따로따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는 주로 대형교회일수록 뚜렷하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주일에조차 교회에서 가족들이 전혀 마주치지 않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교회에서 이뤄지는 설교와 신앙교육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은 가정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데, 이 조차도 개인주의화 된 가정의 현실 가운데서는 전혀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현대의 교회들에서 ‘신앙의 일치’(ecumenism)란 찾아보기 어려우며 각자의 삶에서 경험한 바를 공유하는 정도의 교제 가운데서 공동체성을 찾는 수준인데, 그러한 형편 가운데서는 교회의 참된 공동체성을 이루는 신앙의 일치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현상 가운데서 신앙에 있어서도 세대차(generation gap)가 뚜렷하며, 그것이 부모들과 자녀들(혹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분란과 다툼의 근거가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서는 예배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영과 진리”로서의 예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경의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참된 영적 감화는 불가능하며, 영적으로 감화되지 않는 진리의 선포와 가르침은 공허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과 진리로서의 예배로 말미암는 신앙의 일치가 없는 교제(fellowship)란 하나님과의 화목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교제일 수 없기에,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진정한 친교와 결속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2) 신앙의 내재(immanence)와 실천(practice)

현대의 교회들에서의 근본적인 문제인 신앙의 일치가 없는 현실은 교회에서의 상호간 교제와 가정에서 세대 간 화목에 있어서 치명적일 뿐 아니라, 신앙의 ‘내제’(immanence)와 ‘실천’(practice)에 있어서도 근원적인 문제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그러한 문제점들은 교회의 본질과 역할에도 악영향을 끼치니, 가정에서의 신앙적 결속의 붕괴는 교회 공동체의 결속의 붕괴로도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가나안 성도’ 현상과 ‘인터넷 예배’의 예는 그 단적인 예로서, 그러한 현상은 얼핏 일시적인 것(대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일치된 신앙과 예배에 대한 본질적인 몰이해(혹은 무지)로 말미암는 결과인 것이다.

교회사에 있어 지극히 짧은 역사를 지닌 한국 개신교회들의 급속한 양적 성장 가운데서, 그동안 신앙의 질적 성장에 대해서는 거의 간과되다시피 했다고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적인 설교와 가르침이 실제로 신자들의 신앙에 온전히 뿌리를 내렸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가 전무하다시피 하며, 치리(권징)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므로 사실상 회중으로 모이는 것 외에 별다른 신앙의 실천이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교회에서 이뤄지는 공적인 예배 외에는 전무한 실정이며, 특히 목회자의 인도로 이뤄지는 예배 외에 가정예배나 개인예배가 제대로 실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현실이다.

그동안 한국의 개신교회들에서 신앙의 실천과 내재에 대해 그나마 관심을 기울인 거의 유일한 방편은 ‘제자훈련’(disciple training)이 전부이다시피 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대형화 한 교회운영의 한계를 평신도 리더십을 배양하여 보완하려는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기에 근본적인 신앙의 실천과 내재를 위한 양육의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므로 사실상 교회를 통해 이뤄지는 공적인 설교와 신앙교육이 신자들 개개인에게 온전하게 내재하는지에 대해 확인하거나 점검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는 못한 실정이다. 바로 그처럼 신앙의 내재와 실천의 부재로 말미암은 문제들을 최근 불거지고 있는 목회 세습이나 목사와 성도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가나안 성도’ 현상과 ‘인터넷 예배’의 현상 등이 고스란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한마디로 그동안 신앙의 내재와 실천에 온전한 관심을 두지 못하고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과 가정예배모범이 보여주는 치리의 실천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사실상 한국의 개신교회(무엇보다 장로교회)들에서 ‘실천적 무신론’(practical atheism)의 신자들을 양산한 것이라 하겠다.

6. 결론: 예배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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