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이 아니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우리 속에 스며있는 불신앙과 교만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발행인, 본국제신학교학장, 본월드미션이사, 등. 저서: 충성된일꾼되어가기. 제자세우기 40일영적순례, 주기도문연구.

번영과 물질의 터진 위에 세워진 한국 현대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제정신 가지고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을까? 많은 분들이 인생의 갈증과 목마름을 가지고 방황한다. 마음의 공허감, 허전함,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쾌락과 만족에 시간을 드린다. 어떤이들은 물질에 목숨을 걸고, 어떤 분들은 사랑에 목숨 걸고, 어떤 분들은 명예와 편안한 삶에 목숨걸고, 어떤 분들은 여행과 스포츠에 목숨을 걸고, 술과 쾌락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적당한 것은 삶을 세워가는 양념이 될 수 있지만 집착할 정도라면 그 끝은 결코 진정한 기쁨을 채우지는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러면 종교인들의 마음은 이상 기류는 없는가? 마음에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차 있는가? 제자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인들중에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들도 제법 많다.

“1804년 1월 20일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서점에서 성경책 두 권을 주문했다. 제퍼슨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절을 면도칼로 일일이 다 오려냈다. 긴 작업을 마치자 원리 본문의 겨우 10%만 남았다. 예수님의 기적과 동정녀 탄생, 희생적인 죽음, 부활에 관한 구절들은 다 제거했다. 이렇게 싫은 부분을 제거한 뒤 제퍼슨은 자신의 민주주의 철학에 맞는 예수님을 재탄생시켰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춘 예수님을 만들어갔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 전체 내용을 거의 거부해놓고 ‘나는 진정한 크리스천이다...예수님의 교리를 따르는 제자’다” 라고 주장했다.(스카이 제서니,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p.66재인용)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도 거의 비슷하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의 수준에 맞추지 않고, 자신에게 하나님을 맞추는 모습이다. 직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용의 대상이요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했다. 스카이 제서니(저서,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는 이런 형태의 신앙관을 “오늘날 소비자는 왕이라는 세상적인 사고”와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소비주의적 종교형태를 가지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하나님이 나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자는 언제나 왕이기 때문이다. 나를 똑 닮은 하나님을 만들어낸다. 하나님을 닮은 내가 아니라 나를 닮은 하나님이라니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세운 최상품 포도나무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들포도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누구의 문제인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의 관점의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늘 내안의 항아리가 비워져있어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다시말해서, 내가 좋아하는 ‘궁극적인 관심사’에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상숭배하고 한다. 창조주가 아닌 다른 것이 내 삶의 중심에 차지하고 그것을 숭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이 내가 좋아하는 우상을 섬겨주기를 바란다.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는 물질지향적인 현대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낸 현대판 하나님일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현대판 하나님만을 추구한다면 진정한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자기만족과 쾌락과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이 존재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내면의 오염과 타락상을 정나라하게 보여주는 민낯이다. 나를 비우지 않고, 내가 만든 인생의 바벨탑에 주님을 이용하면 할 수 록 더욱 내안의 감정의 그릇과 영혼의 그릇이 형편없이 점점 말라갈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깨닫는다. ‘이 세상 것을 가지고는 우리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하나님을 맞추며 신앙생활하면 영혼의 목마름을 채울 수 가 없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궁극적인 관심사를 먼저 내려놓아야 진정한 채워짐이 있다.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앞으로 나와야 한다(사59: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인생의 목마름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나오라고 하신다. 주님 앞에 나오는데 돈도 필요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물도 얻고, 포도주도 얻고, 젖도 얻는다. 물은 목을 시원하게 하고, 포도주는 기쁨을 얻게 하고, 젖은 양식이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만이 인생의 모든 욕구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신다고 제안하셨다.

왜 이런 결론이 나오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지으신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창조주에게로 돌아갈 때 진정한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 받는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

영혼의 목마름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누가 제일 잘 아는가?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라. 무엇인가 병들어가고 있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하나님 앞에 백기를 들고 나아가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다.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하고 상처받고 답답하고 실의에 차있는 우리들을 부르신다.

주님 앞에 나오는데 꾸밈도 필요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면 된다. 나오기만 하면 주님이 어루만져 주시고, 힘을 주시고, 삶의 의욕을 주시고, 도와주신다.

늦둥이 아들과 함께, 펄벅재단 견학-좋은 일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너무도 좋아한다. 늘 부족함이 많기에 힘겨운 것들도 많다. 다양한 사역의 현장속에서 책임져야할 무게들이 점점 많이 늘어만 가고 있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여유롭게 살아야하는데, 책임의 영역이 늘어난다. 그래서 짊어져야할 짐 또한 많다. 때로는 짐들을 훌훌 내려놓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할 때도 있다. 누구나 스스로 짊어져야할 십자가들이 있다. 짐이란 영적, 정신적, 육체적, 관계적, 재정적, 가정적, 일터에서 일어나는 힘겨운 짐들을 포함한다. 혼자 지고 힘들어 지쳐 낙망하고 무너져서 쓰러지지 말고, 주님께 맡기라고 하신다. 영혼을 짓누르는 무거운 힘든 짐들을 주님께 맡기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계신 예수님께 맡기라. 그러면 쉼을 얻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27,38). 목마른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나 와서 마시라고 명령하셨다. 우리 영혼의 모든 갈증과 삶의 어려움들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셔야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는 귀한 메시지를 주셨다.

우리는 늘 내 항아리의 부족함을, 빈곤함을 외적인 요소에서 찾았다. 환경이 열악해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 돕는 손길이 없어서, 배우자를 잘못만나서, 사업의 파트너를 잘못만나서, 등 이유를 외부에서 찾았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라고 한다. 내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면 외적 환경이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 안에 생수의 강이 멈추면 늘 외적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그것의 결론은 늘 목마름이다. 결국, 인생의 모든 목마름은 예수님을 만날 때 해결된다는 가장 근원적인 원시적인 방법으로 돌아오게 된다.

영혼의 목마름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최선책은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생수의 강이다. 예배를 대하는 태도가 불성실하면 안된다. 예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시편 기자는 말한다.“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시42편). 갈급한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와야 한다.

우리들이 주님을 향한 예배자 마음과 사모함이 얼마나 간절한가? 형식적인 종교인의 삶을 벗어버리고, 역동적이고, 감격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향한 뜨겁고 간절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과 갈증과 목마름을 가지고 우리 하나님께로 나와야 한다.

교회의 모든 예배 요소를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다 드리는 것이다. 헌금도 찬양도 기도도 다 나의 왕이신 예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다. 드리는 것을 좋아하는 자녀들이 믿음이 성장한다. 그러나 받는 것이 있다. 바로 말씀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55:3).

우리 인생의 최대의 놀라운 은총이요 축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고 새 힘을 얻고 영혼이 살아나는 귀한 은혜를 덧입는다.

현대 신앙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주인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왕으로 교체해야 한다. 왕의 교체 없이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왕이 아니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우리 속에 스며있는 불신앙과 교만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제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초가 세워지는 것이다.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길은 왕을 교체하는 것이다. 왕이 바뀌면, 질적으로 다른 예배자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다. 신앙의 태도가 달라진다. 헌신과 순종의 길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다. 헌신과 순종의 깊이와 넓이가 다르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고백의 차원이 다르다. 성숙한 제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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