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2018년

빌리 그래함은 100년의 인생을 장식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인물이었으며 그가 조직한 종교운동과 기독교 조직들은 계속해서 21세기를 주도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운동과 조직들이 성경적인지에 대해 연구해야하는 것이 그를 먼저 보내고 아직까지 이 땅에 남은 자들의 해야할 일이다.

그는 역사상 어떤 설교자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오클라호마 시의 폭탄 테러와 9.11 테러 공격 이후 추도식과 같은 국가 위기에서 대통령 취임식과 연설에 참여하면서 "미국 목사”라는 호칭을 듣게 되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1918년 노스 캐롤라이나주 샬롯에서 태어났으며 탬파 근처 플로리다 성경 연구소(Florida Bible Institute)와 일리노이주 휘튼 대학(Wheaton College)을 졸업했다. 그는 남부 침례 교회(1939)의 목사가 되어 시카고 교외의 작은 교회를 목회하며 주간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설교했다.

어릴 적에 교회에 가기 싫어하고 아버지가 읽으라는 성경보다 야구선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찼던 그래함은 1934년에 부흥 집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이시며 구원자로 마음에 모셨다. 그후 자신의 삶을 완전히 변하게 한 그분을 전하기 위하여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빌리 그래함 십자군'을 조직하여 십자군 행진을 시작했다.

빌리 그래함과 카톨릭

1946년에 빌리 그래함은 크리스천 청년들을 위한 풀타임 사역자로 복음 전도 캠페인을 시작한지 2년 후 4년 동안(1948-1952) 미네아 폴리스의 노스웨스턴 학교(Northwestern Schools)의 교장을 역임했으며, 그 기간 중 1949년 로스 앤젤레스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거대한 텐트를 치고 개최한 두달간의 "캔버스 대성당"(Canvas Cathedral) 모임은 그를 전국적인 관심으로 이끌었다. 

왜 집회 이름을 "텐트 교회"라고 하지 않고, "텐트 대성당"이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그가 나중에 변질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에게 뿌려진 씨가 달랐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매튜 스윔은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다리로 카톨릭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했으나, 그의 마음을 감찰하실 분은 오직 주님께 있으니 오늘 우리는 그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세기를 주름잡았던 너무나 유명한 복음주의자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기를 바랄 뿐이다.

텐트 대성당. Canvas Cathedra

1950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기반을 둔 빌리 그래함 복음주의 협회(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를 설립하고 1957년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4개월 동안 채운 뉴욕 집회는 빌리 그래함 목사를 미국 종교 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로 세웠다. 그는 뉴욕에 와서 약 4개월간 매일 밤마다 집회를 하며 신기록을 세웠다. 그의 설교는 타임스 스퀘어, 양키 스타디움, 메디슨 스퀘어가든 등에서 생방송으로 지상파를 타고 전국으로 방송되었다.

빌리 그래함은 "가장 존경받는"사람들의 목록에 정기적으로 올랐다. 1950년에서 1990년 사이에 그는 다른 미국인보다 갤럽 기관(Gallup Organization)의 '가장 존경받는 사람’ 목록에 더 자주 선정되었다. Ladies Home Journal은 "종교적 성취” 범주에서 그를 두 번째로 꼽았다. 그는 대통령(로널드 레이건)의 자유 메달(1983)과 의회 금메달(1996)을 모두 받았다. 또한 벨몬트 수도원의 예수회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1967) 및 참된 에큐메니컬에 대한 기여로 카톨릭 국제 프란시스 명예상을 받았고(1972), 영국 황실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2002.2). 

빌리 그래함과 존 오트겐 주교. (1967년. 벨몬트 수도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빌리 그래함)

그의 집회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고 결단한 카톨릭 신자들을 빌리 그래함은 교회로 보내지 않고 그들이 다니던 성당에 계속 머물게 하므로 카톡릭으로부터 대환영을 받아 그의 종교통합을 위해 크게 기여한 것을 인정하여 1972년에 '카톨릭 국제 프란시스 명예상'을 받게 되었다.

많은 대학에서 유명인사를 초청하여 명예학위를 주면서 그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하게 하고 그 학교의 이름을 빛나게 한다. 로마 카톨릭 대학인 벨몬트 수도원의 학장인 존 오트겐 주교도 빌리 그래함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대신 카톨릭 수도원에 와서 말씀을 전하도록 했는데, 시골 샬롯에서 태어난 그래함은 그 제의를 받아 들였다. 그런데 획기적인 일은 그 동안 침례교 목사가 카톨릭 기관에서 연설하도록 초청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개신교와 카톨릭이 함께 모여서 형제로서 인사할 수있는 시대"라며 그러나 10 년 전만해도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후 그래함은 많은 카톨릭 기관에서 연설하는 것을 즐거워 했으며, 1970년대 후반에 그는 교황과 처음 만났다. 그 만남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샬롯 출신의 목사를 "형제"라고 부름으로써 에큐메니컬 우정을 형성했다.

그래함 목사는 카톨릭 신자들을 비롯한 다른 교단의 대표들에게 자신의 십자군에 참석하도록 환영했다. 많은 지역에서 카톨릭 당국은 타락한 카톨릭 신자들이 성당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그래함 목사를 환영하고 목회적 후속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래함은 1997년 자신의 자서전 「Just As I Am」에서 풀턴 쉰(Fulton Sheen)과 커싱 추기경(Cushing Cardinal)과 같은 저명한 미국 카톨릭 신자와의 우정을 언급한다. 어떤 사람들은 쉰(Sheen)을 일종의 "카톨릭 빌리 그래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때 쉰(Sheen)을 "20 세기의 가장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로 언급한 사람은 그래함이었다. 

EWTN 라디오의 호스트인 매튜 스윔(Matt Swaim)은 그의 글에서 복음주의자 빌리 그래함 목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신학교 교수에게 "복음주의(Evangelical)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빌리 그래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즉 "복음주의"라는 말을 빌리 그래함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그가 복음주의의 얼굴이 되었다.

매튜 스윔은 또 로즈 케네디(Rose Kennedy)는 빌리 그래함 목사가 미국에서 대중적 개신교 및 카톨릭 에큐메니즘의 얼굴이 되지는 않았지만 벨몬트 수도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래함은 사람들이 그를 "그래함 신부(Father Graham)"라고 부르기 시작할 수 있다고 농담을 했다면서 그러나 그래함이 카톨릭 신자는 아니며 카톨릭을 사다리로 사용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성실함의 모델이었다. 빌리 그래함의 친구인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을 비롯한 다른 지도자들과 목사들에 대한 스캔들과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60년간의 사역에서 아무도 그에게 불의한 행위에 대해 심각한 비난을 가한 적이 없다. 이는, 빌리 그래함이 다른 면에서도 비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일부 자유주의자들과 지식인들은 그의 메시지를 "단순하다"고 불렀으며,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전국교회협의회와 협력하여 그가 "세상과 타협했다"고 생각했다.

1957년 뉴욕시 십자군(crusades) 운동을 위해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를 초대했을 때, 백인 분리주의자들은 분개했다. 빌리 그래함은 "십자가 밑에 있는 땅은 평평하다"고 말하면서 "나는 백인들이 십자가에서 흑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마음에 감동되었다"라고 말했다.

1982년 정부의 초청으로 '세계평화회의'에서 복음을 전하기로 합의하면서 소련을 방문했을 때 그는 비판의 불씨를 터뜨렸다. 그래함은 정치적 망명을 모색하고 있는 시베리아 세븐 반체제 인사들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박해의 어떠한 증거를 개인적으로 보지 못했다”("had not personally seen any evidence of religious persecution.")고 언급하며 공산주의를 옹호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반역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복음을 선포할 자유가 제한되지 않는 한 어디에서든지 설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련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순진한 “소련의 선전 기계 도구”라는 맹렬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는 기독교 사상 가장 많은 이들에게 설교를 하고 가장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타협자였다. 그는 성경에 비추어볼 때 기독교와 반대편에 서있는 공산주의와 카톨릭과 종교통합 세가지를 모두 흡수하고 실천하여 수많은 이들을 수렁에 빠뜨린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비추어졌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3)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거짓 선생이나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자들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의의 병기로, 어떤 이는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신다. 불의의 병기도 나름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제사장들과 엘리야가 850대 1로 싸웠던 것처럼 오늘날 교계의 목회자들도 그러한 비율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불의의 병기로 성도들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세우신 것이므로 불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거짓 선생들은 죄의 병기로 사용되지만, 의의 병기로 사용되는 이들은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해야 한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사 45:7)

하나님께서는 어두움과 환난도 창조하시며 어두움 가운데에서 빛을 비추어 빛의 필요성을 알려주신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는 빛과 평안만 있지 않고 어둠과 환난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햇빛만 있는 사막에서는 빛의 고마움을 100%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환난과 어둠을 때때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진정 그것은 선물이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결국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Altar Call을 듣고 기도 받으러 앞으로 나가는 이들

빌리 그래함이 끼친 파급 효과

영접 기도

빌리 그래함의 지속적인 유산은 문화의 모든 부분에서 복음을 전하는 능력인 것 같다. 그는 할 수 있는대로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서적, 신문, 영화, 위성 방송, 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을 혁신적으로 사용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그는 다른 종교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했다. 그래서 그의 설교를 듣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한다. 그런데 그는 종교통합의 길을 걸어갔으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설교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독교인 중 74%가 그리스도에게 개인적으로 헌신을 했다고 믿고 있으며, 그중 95%가 거듭났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20세기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이다. 

대부분의 초신자들은 전도받거나 교회에 나왔을 때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영접 기도를 따라하도록 권면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이 영접기도를 따라하고 나면, 그들은 이제 주안에서 거듭났다는 말을 듣게 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거듭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설교 후에 결단한 이들은 제단 앞으로 나오라는 알터 콜(altar call)을 들으면서 제단 앞으로 나와서 설교자가 하라는대로 기도를 하면 그것이 믿음의 행위를 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되며 또한 본인이 그러한 기도를 통해 거듭나게 되었다고 믿는다. 뿐만 아니라 설교자는 그들이 이제 기도를 따라했으므로 그렇게 되었다고 선포한다. 

그런데 조사에 의하면 알터 콜(altar call)을 듣고 앞에 나와서 영접 기도를 한 사람 중에 84-97%가 믿음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으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감동을 받아서 앞에 나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를 따라 하거나 기도를 받은 후에 교회를 나오는 순간 정말로 새피조물이 되지 못하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9세기의 '알터 콜(altar call)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찰스 피니(Charles Finney)는 설교 후에 구도자들이 앞으로 나오든지 그에게 상담하러 오라고 했다. 그는 그들을 상담하면서 그들에게 죄를 고백하게 하고 기도를 해주었다. 그는 결코 영접기도를 시키지도 않았으며 앞으로 나왔다고 해서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프로 야구선수였던 빌리 선데이(William Ashley(Billy) Sunday, 1862-1935)가 회심하고 복음전도자가 되면서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복음전도자가 되었다. 문제는 그 동안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해왔던 상담과 상담실을 없애버린 것이며, 더 나아가 그는 영접기도를 하러 앞으로 나온 이들은 모두 회심자라고 선포했다. 그는 한번의 설교를 듣고 회심할 수 있다면서 상담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빌리 선데이 이전에는 구도자들(seeker)을 목회자가 회심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이들로 간주했으나, 빌리 선데이 이후에는 구도자들을 회심자(convert)로 간주하게 되었다. 선데이 목사는 앞으로 나와서 그와 악수만 해도 회심했다고 간주했으므로 가장 열매를 많이 맺은 전도자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빌리 선데이 이후 수많은 복음전도자들은 주일 예배나 집회시에 많은 사람을 앞으로 나오게 하여 회심자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도록 미혹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백뮤직을 깔고 감동적인 메세지를 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이는 성경말씀보다 회중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빌리 그래함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이 8세때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정을 했고 그가 구원받았다는 말을 들었으나, 실제로 그가 회심한 것은 22세였다는 사실처럼, 목회자가 아무리 거듭난 새피조물이 되었다고 선포할지라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빌리 그래함은 선데이 목사가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는 다시 상담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상담을 통해 회심하도록 도운 것만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회개 서약을 따라 기도하도록 시켰다. 결국 그것이 오늘날의 영접기도가 된 것이며 현재 수천 종류의 영접기도 책자가 발간되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단계이다. (1)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2) 죄인은 지옥에 가며 스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3)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치루셨다 (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

이러한 순서에 따라 받아들이고 영접기도를 하면 이제 그가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었다고 선포한다. 이러한 것은 빌 브라이트가 만든 4영리 등을 통해 우리는 수없이 들어왔고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리고 전도할 때나 선교지에 가서 그러한 방식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만든다. 그러나 거듭나므로 스스로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렇게 교육에 의하여 또는 전도자의 권유에 의하여 하는 영접기도는 수많은 영적 사생아를 낳을 뿐이다.

빌리 그래함은 빌리 선데이의 오류를 보완하기 위하여 상담을 통한 영접기도를 시켰으나, 회심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그 많은 이들을 상담할 수 없게 되므로 앞에 나온 이들에게 즉석에서 영접기도를 하도록 했다. 결국 그는 구원의 길이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믿게 했다.

이러한 영접 기도의 결과는 9개월간 엄마의 뱃속에서 잘 있다가 진정으로 거듭난 회심자들이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뱃속에 있는 수많은 태아들이 2개월, 3개월, 5개월, 심지어 8개월이 되었을 때 낙태되어 영적 사생아로 태어나게 했다. 영적 사생아로 태어난 그들은 자신들이 거듭나지 않아서 죽어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듭났으며 구원받았다는 선포를 들었기 때문에, 거짓 믿음을 갖고 종교생활을 하며 지옥을 향해 오늘도 힘들게 달려가는 것이다. 성령받지 않고 종교생활하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다.

 

차세대를 위한 콘서트 혁명

1990년대에 그는 "십자군 운동"(후에 이슬람교도들과 다른 이들이 그 의미에 불쾌감을 느끼자 "선교"라고 부름)에 대한 공식을 재설계했다. 그는 “youth night"을 통해 “차세대를 위한 콘서트"로 혁명을 일으켰는데, 기독교 록, 랩, 힙합 아티스트가 행사를 주도하고 그후에 빌리 그래함은 짧게 설교를 했다. 이러한 형식은 밴드를 좋아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고 놀랍게도 그들은 80대 고령의 복음주의자 빌리 그래함의 말을 경청했다. 또한 그는 청년들을 위한 수많은 영향력있는 조직을 창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의 영향력있는 파급 효과는 일리노이의 휘튼 대학(Wheaton College), 매사추세츠의 고든 콘웰(Gordon-Conwell) 신학교, 미네소타의 노스 웨스턴 대학(Northwestern College) 및 캘리포니아의 풀러 신학교(Fuller Seminary)와 같은 학교로 확대되었다. 그의 격려와 지지는 미국 복음주의 재무 투명성협회, 유럽 선교, TransWorld 라디오, 세계 비전, 세계 구호 및 전국 복음주의 협회 연합을 위한 복음주의 협의회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빌리 그래함 룰(Modesto Manifesto)

빌리 그래함은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살았다. 그는 브러쉬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중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고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유명인들의 가십거리들과 그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그는 돈을 흥청망청 쓰지도 않았으며 여자 문제도 없었다. 

그가 사역을 시작한 초기 어느날 그가 투숙한 호텔에 돌아왔을 때 그를 유혹할 작정으로 그의 침대에 누워있는 여인을 보게 된 빌리 그래함은 아무 동요없이 호텔을 나왔고, 그 이후 그는 절대로 그의 아내 없이는 어느 여성과도 단둘이 차를 타거나 식사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그의 행동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그러한 목회를 선호하면서 그것을 ‘빌리 그래함 룰’(The Billy Graham Rule) 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이처럼 배우자에게 성실한 남편으로 살았으며 그의 유명세는 왕이나 왕비, 수상 및 대통령들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큰 저택을 구입해서 떵떵거리며 살지 않고, 노스 캐롤라이나의 백년된 통나무 집에서 살았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겉으로 드러난 선한 생활 때문이며 모든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했기 때문이다.

빌리 그래함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종교 통합

그는 1966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 전도대회,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국제 회의, 그리고 1983년, 1986년, 2000년에 암스텔담에서 열린 순회 복음주의자들을 위한 세 차례의 거대한 컨퍼런스를 통해 200개국에서 2만4천여명의 복음주의자들을 불러 모아 국제 기독교 공동체를 하나로 모았다.

빌리 그래함은 여러 면에서 복음주의 운동을 형성하고 구현했다. 신학자 J. I. 패커(J. I. Packer)는 복음주의의 “융합”을 빌리 그래함에게 돌렸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여러 기구가 있긴 했으나 단합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로 통일한 것은 다름아닌 종교통합이었다.

Christianity Today(1978년1월13일)에 의하면, 빌리 그래함의 대변인은 1977년 12월 신문 기사에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구원의 길임을 믿지 않는다”("without reservation the belief that Jesus Christ is the only way of salvation.")고 밝혔다. 제임스 빔은 77년 9월 헝가리에서 전도를 마치고 돌아온 빌리 그래함을 뉴욕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맥콜의 잡지(McCall’s Magazine(100, 154-158) 1978년1월호에서 제임스 마이클 빔 (James Michael Beam)은 그의 긴 수필  "I Can't Play God Any More”에서 빌리 그래함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I used to play God”, “I used to believe that pagans in far-off countries were lost and were going to hell—if they did not have the Gospel of Jesus Christ preached to them.  I no longer believe that”, “I believe that there are other ways of recognizing the existence of God—through nature, for instance—and plenty of other opportunities, therefore, of saying ’yes’ to God.”

빌리 그래함은 “나는 내가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일을 해왔습니다"라며,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인척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예전에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듣지 못한 오지의 이교도들은 잃어버리고 지옥에 갈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더이상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다른 방법들 - 예를 들어, 자연을 통하여 - 이 있다고 믿으므로, 하나님께 '그렇다'고 말하는 기회가 많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유대인도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잃어 버렸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변해서 특히 유대인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는 복음주의 단체들에 반대를 했다. 그는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자유 의지에 관한 자신의 결정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나는 유대인 선교를 결코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사람이 개종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이며, 심판하실 분도 빌리 그래함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한 생각이, 그의 집회때에 결단하고 앞으로 나온 이들이 카톨릭 신자일 경우 성당으로, 모슬렘은 이슬람사원으로, 크리스천은 교회로 보냈던 것이다.

'토크쇼의 제왕'으로 불리는 미국 CNN TV방송의 래리 킹(Larry King)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교황을 여러 번 만났으며, 교황이 빌리 그래함을 좋아하며 교황과 자신이 거의 모두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을 “현세의 가장 위대한 종교 지도자”이며 “세기의 가장 위대한 도덕적 영적 리더”라고 했다. 또 그는 다른 종교인들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설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만났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간에 변질된 것 같은 이유는,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아니라 뉴에이지에서 전하는 마지막 시대에 도래할 세상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단일화시키는 메시야였던 것이다. 그의 메시야 사상은 다음의 대화를 통해 확연히 밝혀졌다.

빌리 그래함과 로버트 슐러의 대담

빌리 그래함과 로버트 슐러의 대담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목사와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1997년 5월 31일(토), <Foundation>지(1997년 5-6월호)).

로버트 슐러: 기독교의 미래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빌리 그래함: 모두가 알다시피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이 있습니다. 이 몸은 전 세계의 크리스천 그룹 뿐만이 아니라 크리스천 그룹이 아닌 자들로도 구성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사랑하거나 안다면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간에 그들은 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I think everybody that loves Christ, or knows Christ, whether they’re conscious of it or not, they’re members of the Body of Christ ...)

나는 온 세상을 그리스도께로 이끌 큰 부흥이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사도 야고보가 사도행전에서 말했듯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시간에도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모슬렘 세계에서나 불교 세계에서 또는 기독교 세계에서 또는 무신론자들 세계에서 불러내고 계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And that’s what God is doing today, He’s calling people out of the world for His name,whether they come from the Muslim world, or the Buddhist world, or the Christian world, or the non-believing world, they are members of the Body of Christ, because they’ve been called by God.)

물론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지도 못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마음속에서 그들이 없지만 필요로하는 어떤 것이 있음을 알고 빛으로 돌아서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며 그들도 우리와 함께 천국에 있을 것입니다.

(They may not even know the name of Jesus, but they know in their hearts that they need something that they don’t have, and they turn to the only light that they have, and I think they are saved, and that they’re going to be with us in heaven.)

로버트 슐러: 지금 박사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어둠 가운데 태어나서 전혀 성경을 본 적도 없는데,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과 삶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이 맞는지요?

빌리 그래함: 네. 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야생 상태로 거하고 있는 종족들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들은 단 한 번도 성경을 보지도 못했고, 성경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자기들이 살고있는 곳의 사람들과는 다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 박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정말 흥분이 되는군요.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비는 넓군요!

빌리 그래함: 물론입니다.

로버트 슐러: 박사님께서는 풀톤 신(F. Sheen) 주교와 노만 빈센트 필에 대해 아시지요? 그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빌리 그래함: 남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삶 자체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이 선포하는 바를 그대로 지키며 사는가를 보게 됩니다. 저는 참으로 좋은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나와 내 사역 그리고 슐러 당신과 당신의 사역과 로마 카톨릭주의와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카톨릭 교인들은 우리를 환영했고, 지금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카톨릭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속한 교단이나 교회 혹은 그룹 등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눈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 11:52)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콜롬비아 대학의 역사 학자인 랜돌 발머(Randall Balmer)는 "그는 1980년대에도 교황과 대통령, 여왕과 독재자의 친구이자 친지가 되었으며,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태도와 보이지 않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라고 빌리 그래함을 평가했다. 

그는 진정 매력적이었다. 훤칠한 외모에 강력한 메세지를 전할 때에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누구보다 겸손해보였고, 세상의 모든 종교를 가슴에 품고 사랑하므로 그보다 더 마음이 넓은 사람은 없을 것만 같이 보였다. 불교를 믿건 이단이건 간에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기를 바라는 그의 넓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그런데 그렇게 겸손하고 사랑이 많아 보이는 그가 우리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그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족속을 다 멸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며 그분의 공의이며 사랑이다. 가나안 족속을 죽이라는 것은 그분의 택한 자들을 거룩하게 보존하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거룩한 성품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의 거룩을 몰랐을까? 하나님보다 회개치 않은 죄인들을 그렇게까지 애틋하게 사랑한 것일까? 

"사울이...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 15:7-9)

우리는 누구나 단 한번의 인생을 살 뿐이다. 그리고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을 뿐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새기고 있는지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인본주의에 물들어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속히 신본주의로 돌아서야 할 것이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이 천국에 가도록 기도하며 전도해야 하지만, 그들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7-38)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참된 진리는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가게 만든다. 예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자 수많은 제자들이 예수의 곁을 떠나갔던 것처럼. 그리고 예수께서 잡혀가실 때 모두 도망간 것처럼. 그 이유는, 사람들은 죄를 포기하거나 자기를 부인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내 감정과 내 지식과 내 경험과 내 상식과 내 명예와 내 권세와 내 건강과 내 사랑하는 이들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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