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크고 회중이 많다고 반드시 교회가 아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잘 개혁된 교회의 운영원리는, 사실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의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을 통해서 가장 분명하게 확립되었다. 이 운영원리 가운데서 비가시적 교회가 더욱 가시적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게도 되는 것이다. 즉 개혁된 교회는 건물이나 회중이 아니라, 교회의 기구(조직)이 얼마나 말씀에 충실하여 서고 운영되느냐에 따라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고백하고 있는 교회론을 이해하는 가운데서 비로소 개혁된 교회의 운영원리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파악할 수가 있다.

먼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5장의 “교회에 대하여” 언급한 첫 항을 보면 “보이지 않는 보편적 혹은 우주적 교회는, 그것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하나로 지금까지 모여졌고, 모여지고 있으며, 또한 모여지게 될 택자들의 전체 수로 구성된다.”고 하여, ‘예정’에 근거하는 ‘택자’의 개념으로서 그 본질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특성을 “보이지 않는 보편적 혹은 우주적 교회”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교회의 본질을 철저히 ‘하나님의 택하심’이 이뤄지는 ‘예정’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5장에서 고백하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말미암는 비가시적 교회(invisible church)는 2항에서 곧장 가시적 교회(visible church)로서 드러남을 고백하는데, 2항은 이르기를 “복음 아래 혹은 보편적이거나 우주적인 (이전 율법 아래서처럼 한 민족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는) 보이는 교회는, 그들의 자녀들과 더불어, 동시에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세상 도처의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고 했다. 즉 “보이지 않는 보편적 혹은 우주적 교회”가 보이는 교회로 드러나게 될 때에, 그것은 “택자들의 전체 수”에 대한 이해, 곧 ‘예정’에 대한 신앙고백인 “참된 신앙을 고백”한다는 의미에서 가시적(visible)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가시적 교회라 할지라도 개체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보편적이거나 우주적인” 교회로서의 “보이는 교회”인 것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은 교회와 보이는 교회가 ‘예정’ 곧 ‘하나님의 택하심’과 그것에 대한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것으로 긴밀히 연계된 것으로서 교회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인데, 그것이 이미 츠빙글리에 의해 아주 분명하게 고백된 내용과 일치한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말하는 교회에 대한 정의는 그처럼 본질적이고 원리적인 교회론을 바탕으로 더욱 진전된 “보편적 교회”로서의 “보이는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고백하고 있다. 즉 제25장 3항에서 고백하는 바 “그리스도께서는 이 보편적인 보이는 교회에 세상 종말까지, 이생에 있는 성도들을 모으고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역자들, 신탁, 그리고 규례를 주셨고, 그리고 그 자신의 임재와 성령에 의해서, 그의 약속을 따라, 더욱 더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만드신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택자들의 전체 수”로서의 “보이지 않는, 보편적 혹은 우주적 교회”가 보이는 보편적 혹은 우주적인 교회로 드러나는 것이 “복음 아래서” 즉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세상 도처의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고 할 때에,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역자들, 신탁, 그리고 규례”로서 구현되며, 결정적으로 “그 자신의 임재와 성령에 의해서, 그의 약속을 따라, 더욱 더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명확히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은 이미 칼뱅이 기독교 강요를 통해, 그리고 프랑스 신앙고백(1559)에서 고백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5장은 4항에서 보이는 보편적 교회가 어떻게 “때로는 더 잘 보이고(드러나고), 때로는 덜 보이기도” 하는지에 대해 고백하기를, “복음의 교리가 가르쳐지고 받아들여지는 것(말씀), 규례들이 시행되는 것(치리 혹은 권징), 그리고 공적인 예배가 더욱 순수하게(성경 말씀에 충실하게) 혹은 덜 순수하게 그들 안에서 실행됨에 따라서, 더 순수하거나 덜 순수하다.”고 고백함으로써, 보이는 교회의 가시성(visibility)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체교회에서 “복음의 교리가 가르쳐지고 받아들여지는 것(말씀), 규례들이 시행되는 것(치리 혹은 권징), 그리고 공적인 예배가 더욱 순수하게(성경 말씀에 충실하게)……그들 안에서 실행됨”이 바로 개혁된 교회가 운영되는 원리인 것이다. 이를 가리켜서 ‘교회의 표지’(sign & mark)라고 한다.

이처럼 “공적인 예배가 더욱 순수하게” 실행되는 것은 보이는 교회로서의 보편교회가 개체교회 가운데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총회(Westminster Assembly of Divines, 1643-1649)는 1645년에 ‘정치규범’(the Form of Presbyterial Church Government)과 ‘예배모범’(the Directory for the Publick Worship of God)을 작성했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 가운데 선 모든 장로교회들은 공히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을 따라 공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 그것이야말로 “공적인 예배가 더욱 순수하게……그들 안에서 실행”되는 기본적이며 핵심적인 모습이며, 그것을 떠난 예배를 드림으로써 공적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와 회중이 정작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국의 장기의회(Long Parliament, 1640-1653)를 배경으로 한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해산됨과 거의 동시에 총회장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자리한 잉글랜드에서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산출한 모든 표준문서(정치규범, 예배모범, 신앙고백, 대·소교리문답)들은 폐기되어 버렸는데, 이는 당시 의회파의 주도적 인물이자 정치적 실세였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 장로교회파가 아닌 회중주의의 독립교회파(Independency)를 표방해버렸기 때문이다. 이후로 스코틀랜드에서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이 채택이 되었으나, 나중에 잉글랜드에 의해 통합된 영국은 국교회인 ‘성공회’(the Anglican Domain)를 표방하게 되면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모든 표준문서들이 폐기되고, 미국을 비롯한 신대륙의 장로교회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은 그대로 채택되지는 못했으며, 특히 신앙고백의 경우 1788년, 1903년에 수정되고 추가됨으로서 그 원형을 훼손한 체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가 성립되었어도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표준문서들이 모두 들어와 채택되지는 못했었고, 인도장로교회의 12신조(1904)를 따라 축약된 형태로 신앙고백(조선예수교장로회 12신조, 1907)이 이뤄지는 가운데 소교리문답만이 정식으로 채택되다가 부가적으로 나머지 표준문서들을 승인하는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한 이후로 거의 사장되어버렸고, 비교적 최근에서야 역사적 장로교회의 바탕인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의 중요성이 비로소 일깨워지고 있는 중이다.

※ 이 글은 2018년 3월 3일 오후 3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운로 189(운천동) 동양장로교회(이석병 목사) “토요 열린 강좌” 특강의 일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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