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s 속에 Cosmos는 없다. 미투에서 위드유로...

“Me Too” 두 단어에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 전 세계가 휘청거린다. Me Too는 처음 발언한 사람의 말은 아닐 것이다. 처음 한 사람(여자)는 어떤 남자에게 성적 피해를 보았다고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 발언에 뒤를 잇는 Me Too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고백을 시작해서 각계에서 Me Too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Me Too 운동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아픔과 상처를 숨기며 슬퍼했던 사람들이 치유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화 “밀양”은 기독교의 죄사함의 의식에 대한 맹점을 지적한 것이 주효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잘못한 것을 신이 용서할 수 있을까? 죽은 뒤에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이 사는 동안에는 피해자 인간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서는 피해자만 할 수 있다. 피해자가 약해서 무능해서 당했기 때문에 피해 받음이 정당한 것이 아니다. 피해자와 함께 했기 때문에 피해를 주지 않은 것이 아니다. 대한제국이 약하기 때문에 강대국에 먹힐만했다는 생각은 폭력에 익숙한 사람의 생각이다. 성관계는 부부 관계에 외에 어떤 형태로 행하든지 여성에게 큰 피해가 있다. 옛날에는 여성의 행동만을 조신하게 하라고 규제했다.

그러나 필자는 남성에게도 피해가 있다고 아들에게 가르쳤다. 그것은 죄가 죄인지 모르는 불법의식이 팽배해지는 “죄 불감증”이다. 사람이 죄 혹은 실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죄인지 모르는 상태는 가장 위험하다. 자기변명이 완료된 상태에는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해서 자기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다. 성폭력에는 피해자 여성과 거짓된 남성상이 존재하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깨뜨리는 악한 행동이다.

Me Too 운동에서 피해 받은 여성은 피해 받은 사람이지 정절 문제로 연결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성경에서 ‘순결’은 ‘첫경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참고 신 22장). 합법적 관계를 진행하면 순결하다. 아내가 남편과 사별하고 다른 남자와 혼인할 때 더렵혀진 몸이 아니다. 부당하게 피해를 받은 여성은 피해자이다. 성(性)을 유린당한 것이지 순결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피해자는 보호되어야 하고, 피해자는 자기가 받은 피해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서 유부녀와 간음은 둘 다 죽이고, 강간한 경우는 남자만 죽이도록 했다. 미혼녀를 동침할 때 성읍이면 둘 다 죽이고, 들판이면 남자만 죽인다. 그리고 들판에서 미혼 여성을 강탈하면 반드시 혼인해야 하는데, 여성이 원하지 않으면 혼인이 체결되지 않을 수 있다. 강제 동침은 혼인하면 남편은 어떤 사유로도 이혼할 수 없다. 성경은 성 순결을 강조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배려도 확실하다. 성경의 엄중한 규율을 무시한 사역자가 교회에 있는 것은 부당하다.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사람이 성경 교사가 되는 것을 용인하지 말라. 거짓 선생은 스스로 의의 교사로 자처한다. 거짓 선생이 일어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거짓 선생에게서 떠나거나 그를 보내라.

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

Me Too가 종교계, 로마 카톨릭, 그리고 개신교로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Me Too를 당당하게 말하자. 마음에 응어리를 갖고 사는 것은 너무나 짧은 인생이다. 큰 소리로 Me Too를 외치고 당당하게 살자. 혹시 누가 뒷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슴에 바위를 안고 사는 것보다 더 나을 것으로 생각하자. 하나님의 말씀, 주 예수의 위로하심을 받은 자는 더욱 담대하게 Me Too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감추어진 죄가 드러나 교회에 권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드러난 것에 대해서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무엇을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Me Too 운동으로 이런 모든 사태가 척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직자, 법조인, 학자, 의료인에게는 더 엄중한 윤리 규정을 두어야 한다. 사회에서 표준과 위로를 제공하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Me Too를 말하지 않으면 치유(With You)도 없다. Me Too를 짧게 말하고 상처의 늪에서 빠져 나오자.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With할 동료들은 Me Too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곽도원(배우)는 거짓 Me Too에 대해서 소송을 포기했다고 한다. Me Too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Me Too에 소송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Me Too는 상처입은 사람이 치유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Me Too를 우리말로 “나도 당했다”고 표현하는데, 직역으로 “나 역시”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당했다”는 표현이 자극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게 하고, 자연스럽게 With You 위로자를 만나자. Me Too를 외치고, Me Too를 듣는 사람은 With You가 되자. 우리 사회는 "Me Too 고백자"의 "With You 위로자" 그리고 "Me Too 가해자"만 있도록 하자. 그래야 더 쉽게 Me Too를 외칠 것이다.

그 아픔과 눈물이 두 단어, Me Too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해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인권의 미덕이라지만, 피해자의 인격과 피해를 놓고 가해자의 삶과 인격을 보호하는 것은 부당하다. 가해자가 자기 보호막 뒤에서 음흉하게 자기를 보호하며 웃는 모습을 종결시키자. 피해자의 눈물이 씻은 뒤에 가해자의 인격을 보호하자. Me Too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유 그리고 위로와 치유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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