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윤 집사(우촌초등학교 부장교사,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매년 5월이면 케일 화분 하나가 교실에 들어온다. 단순한 화분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참깨보다 작은 노란 나비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과학 시간 배추흰나비의 한 살이 과정을 배우기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것이다. 그렇게 나비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돋보기를 들고 알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2-3일 만에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애벌레들이 깨어나 알껍질을 먹더니 하루가 다르게 허물을 벗으며 무럭무럭 자라갔다. 먼저 태어난 애벌레부터 ‘연두, 초록이, 빅, 말랑이, 초롱이...’ 이름을 붙여 주었다. 초록색의 보송보송 솜털이 있는 애벌레들은 케일 잎을 열심히 갉아 먹으며 3cm의 5령 애벌레로 커졌다. 애벌레 도우미들은 아침마다 수북이 흩어져있는 초록 배설물을 치워주고, 화분에 물도 주고 애벌레에게 사랑의 편지도 써서 관찰 공책에 붙여주는 일을 하는데 서로 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현충일이 지난 다음 날, 드디어 첫 번째 애벌레였던 연두가 투명해진 번데기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었다. 다행히도 수업이 시작하기 전이라 모두들 복도에서 숨죽여가며 연두의 날개돋이 모습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알에서 나비가 되기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왔기에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비가 태어난 날, 교실은 온통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태어난 나비를 위하여 반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비집을 만들어 주었다. 나무젓가락을 고무줄로 연결하여 기둥을 세우고 지붕도 만든 뒤 모기장으로 덮으니 제법 그럴듯한 나비 집이 완성되었다. 색지를 예쁘게 오려서 문패도 만들고, 빈틈이 없도록 솜씨 좋은 여자 아이들은 바느질도 해 주었다. 일주일에 걸쳐 다른 번데기들도 하나 둘 나비가 되어 나비집 안을 훨훨 날게 되었다. 예쁜 꽃 화분도 넣어주고, 혹시 진딧물이 생길까 무당벌레를 잡아 온 아이도 있었다. 아침마다 나비집을 들여다보며 나비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기도 하고, 행여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되도록 복도에서는 큰 소리를 내지 말자고 주의를 주는 모습도 보였다. 밖에 나가면 언제라도 볼 수 있는 배추흰나비지만 나비집 안의 나비들은 이미 아이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어린 왕자가 장미꽃에게 의미를 부여하듯 반 아이들과 나비는 서로에게 길들여져 간 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음을 알기에, 나비를 자연으로 보내주어야 하는 날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비집 안은 야생의 배추흰나비가 살기에 그리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제일 맏이었던 연두가 힘없이 날다가 그만 툭 떨어져 죽고 말았다. 아이들은 나비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괴로워하다가 추모식을 한 뒤 묘를 만들어주기로 결정하였다. 추모식을 하며 한마디씩 나비를 위해 기도하는데 폭풍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아이들도 있어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나머지 나비들은 모두 자연으로 날려 보내 줌으로써 생명존중 프로젝트를 마감하였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 그리고 죽음에 대해 깊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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