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70) - 전도서 (3)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전2:14-15).

 

전도서는 지혜의 세계를 잘 말해준다. 지혜 전통이 여러 군데서 모아져서 전도서에서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전5:4). 모세오경은 신명기 23:21절 이하에서 서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전23:21).

후기 히브리어, 아람어(페르시아 일상어)에 영향을 받은 구절이 들어온다.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전2:5),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8:11). 이 전도서는 페르시아 통치 시대 이후에 팔레스틴의 상황을 보여준다. 마카비 혁명 이전 수 십 년 전, 주전 3세기 중반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본다(쉬미트). 이 때는 초기 헬레니즘 시대였다.

또한 전도서의 사고 구조에 있어서 이집트(애굽)와 바빌론 지혜 문학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도 한다(로레츠). 역사적 맥락에서는 헬라적 지혜문학 사고가 영향을 미치었지만 단순히 그리스-헬라적 회의주의 지혜가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지혜 문학이 고대 궁정의 지혜학교를 통해 소통하고 교류하였음을 볼 수 있다.

전도서는 잠언의 지혜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전4:13).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전10:12). 하지만 잠언적 지혜와 다른 면도 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전1:17).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전8:17).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 토라의 세계에 있는데, 이 세상적인 지혜나 이상한 방식의 지식 추구를 해보았다는 고백은 비성경적인 요소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믿음의 사람은 지혜를 알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혜자와 우매자가 매 한가지며 차이가 없다고 지혜 세계를 상대화하기도 한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인생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전6:8).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전3:19). 죽음 앞에서 지혜자나 우매자나 다 한가지라는 사실을 말한다. 운명 앞에서는 인생이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인간과 짐승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전3:19). 전도서에서는 인생의 회생, 부활의 희망과 관련해서는 회의적인 것 같다.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1).

지혜와 정의가 공정하게 대우를 받고 공평하게 처우(處遇)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 세계를 말한다. “세상에 행하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인도 있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전8:14). 지혜의 세계는 무궁하며 지혜가 열 명의 유사보다도 힘이 있다고 말한다.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전7:19). 또한 어떠한 의인이라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사는 존재임을 말한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 그러므로 결국 인생은 십자가의 구속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구약 전도서는 말하고 있다.

<The Lord Is My Shepherd> ,1862, Eastman Johnson (1824-1906)

인생의 고난과 질곡, 삶의 고통 속에서 부르지는 절규 속에 지혜는 무엇인가?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19:4; 렘15:10; 20:14; 욥3장). 이러한 인생 가운데 즐겁게 지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향유하며 사는 것이 지혜임을 말한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전2:24).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3:13).

결국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지만 헛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말한다.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전5:7). 인간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세계와 영원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함을 말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하나님의 세계를 사모하며 영원을 추구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결국 지혜로운 인생임을 전도서는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가 전도서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 하나님이 인생 가운데 살리시기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는데, 그 하나님(삼상2:6)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가? 전도서는 이 질문에 대하여 궁극적 대답을 추구하도록 전도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숨어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되지 않은 채 우리에게 찾도록 지혜로운 말 걸기를 하시고 계시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34:6).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