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무신론 혹은 유신론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어

【편집자 주】 붓다는 신인가? 인간인가?

불교는 과연 붓다라고 하는 신(神)을 믿는 것인가? 어떤 불자는 그렇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불자는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불교는 누구나 수행을 통해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부처는 절대자로서의 부처인가?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불교는 믿음과는 거리가 있는 것인가? 그것에 대한 임헌준 목사님의 설명을 들어보자

임헌준 목사 / 대전고 졸업,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호서대학교 신학과 석사 과정 졸업(Th.M),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총회위탁과정 수료, 호서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사과정 졸업(Ph.D), 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노회에서 목사 임직, 2001년부터 현재까지 예은교회 (충남 아산) 담임 / 호서대학교, KC대학교, 나사렛대학교 등 출강 / 저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크리스챤 신문사, 2001), 『아는 만큼 보인다-기독교와 불교 비교하며 살펴보기』(쿰란출판사, 2005), 『기독교의 핵심 주제』(크리스챤 신문사, 2008),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크리스챤 신문사, 2008), 『기독교와 불교』(더나은 생각,2016)

‘붓다’(Buddha, 부처)라는 말은  첫 회에 언급한 것처럼 '우주 인생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은 사람' '각자(覺者)'라는 뜻이다. 이 말은 본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룬 고타마 싯다르타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붓다는 진리를 깨달은 수행자로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인간일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불교의 교리가 확장되면서 역사적 인물에게 붙여졌던 ‘붓다’ 칭호가 이상화되고, 여기에 초월적인 절대자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그러면서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미륵불 등 수많은 부처들이 등장하였다.

오늘날 불교 신자들이 사용하는 부처라는 말에는 이런 두 가지 의미가 혼용되고 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할 때, 여기서 ‘부처’는 절대자가 아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소원을 빈다.”고 말할 때, 여기서 부처는 절대자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부처라는 칭호의 사용 범위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불교의 절대자에 대한 이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이가 난다.

 

1_ 원시불교(原始佛敎)의 무신론(無神論)적 이해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는 절대자의 존재를 주장하는 당시의 사상계에 대하여 반대하면서, 만약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① 인간의 선악이 설명되지 않는다. 즉 인간이 선악을 행하는 것은 절대자의 뜻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죄에 대한 책임도 없고, 선하게 살려는 노력도 무의미할 것이다. 또한 ② 인간의 행복과 불행 역시 절대자의 섭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욕, 노력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中阿含經 第三卷 度經, 大正藏 2,435) (고진익 편, 230)

고타마 싯다르타는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는 원시불교는 무신론적 경향이 강하다.

 

2_ 대승불교의 유신론적 경향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과는 달리, 대승불교의 가르침에는 많은 부처와 보살들이 나타나는데, 이들 가운데 초월적인 절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정토신앙, 미륵신앙과 같은 타력신앙(他力信仰)에서는 초월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한 인간의 구제(구원)를 말하고 있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절대타자(絶對他者)인 아미타불, 미륵불의 본원력에 의해 구제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승불교 가운데 일부 종파는 유신론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몇몇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자.

 

(1) 보살신앙

보살(bodhisattva)은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그 운동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보살은 일반적인 수행자가 아니라, 초월적인 능력과 방법으로 인간을 도와주는 절대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① 관세음보살

묘법연화경의 제25품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독립시켜 관음경(觀音經)이라고 부르는데, 이 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인간을 현실 세계의 온갖 고통으로부터 구해준다고 말한다.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이라고도 많이 부르는데,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또 관세음보살의 이름 앞에 ‘천수천안(千手千眼)’이라는 수식어구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관세음보살의 초월적 능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②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석가불의 위촉을 받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부처가 없는 시대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교화, 구제한다는 보살이다. 특히 지장보살은 가장 고통이 가혹한 지옥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 한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보살로 일컬어지고 있다.

대방광십륜경,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지장보살본원경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장신앙은 4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의 타림분지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중국에 들어와 재래의 명부시왕신앙과 습합하여 민간신앙으로 뿌리를 내렸다. (우리사찰답사회, 208)

우리나라에서도 지장신앙은 명부시왕신앙과 결부되어 망자(亡者)의 천도와 복을 빌어주는 신앙으로 정착해 왔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명부전의 주존(主尊) 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함께 널리 신봉되고 있다. 관세음보살이 현세의 이익을 수호하는 보살로 신앙되고 있다면, 지장보살은 사후 세계의 교주, 지옥 중생의 구제자, 망자 천도의 길잡이로 인식되고 있다.

 

(2) 정토신앙

정토신앙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곧 아미타경(阿彌陀經),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기초로 하여 대승불교 초기(B.C. 1세기경)에 인도에서 일어났다.

정토신앙에서는 인간을 죄가 많고 번뇌에 휩싸인 존재로 본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절대타자인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서만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미타불의 본원력 구제설은 유신론적인 종교 사상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이에 대해 정토신앙이 힌두이즘의 영향을 받아 성립하였다는 학설이 있는가하면, 기독교의 영향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인도학을 전공한 일본학자 이와모토 유타카(岩本裕)는 아미타불의 타력본원(他力本願) 사상이 분명히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정토신앙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타력본원 사상과 인도에 옛날부터 있었던 낙토사상(樂土思想)을 혼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이와모토 유타카, 182-183)

(3) 미륵신앙

미륵신앙(彌勒信仰)은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 곧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륵대성불경(彌勒大成佛經)을 기초로 하며, 대략 B.C. 2세기에서 B.C. 1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시작되었고 고타마 싯다르타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미륵보살이 미래불로 출현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륵신앙은 크게 ① 미륵보살이 지금 도솔천에 있으면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있는데 사람이 미륵불을 믿고 의지할 때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다는 ‘상생사상’(上生思想)과 ② 미륵보살이 미래에 도솔천으로부터 이 세계로 내려와 화림원(華林園)이라는 곳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룬 뒤에 세 차례의 설법으로 사람들을 제도할 것이라는 ‘하생사상’(下生思想)으로 나뉜다.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미륵신앙이 전래된 이후 지속적으로 전파되었으며 특히 신라 말, 고려 말과 같은 변혁기에는 미륵불이 도래하여 고통 받는 민중을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를 기대하는 신앙운동으로 성행하였다.

이와 같이 절대자의 존재 여부에 관한 초기 불교와 후기 불교의 가르침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불교를 무신론 혹은 유신론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불교 학자들이나 승려들은 아미타불과 미륵불 같은 절대자가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면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냐는 문제에 대해 통일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각자의 신앙과 생각에 따라, 아미타불이나 미륵불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方便)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불교 신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다 같은 신(神)”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도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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