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다니엘 주석 9 강) 다니엘 2:31-35

1. 다니엘은 2:31-35에서 느부갓네살이 꿈에 본 형상을 제시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에 나타난 형상은 정금, 은, 놋, 철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발은 철로 되었는데 얼마는 진흙으로 이루어졌다(31-33절). 그리고 왕이 본 신상은 “손대지 아니한 돌”이 완전히 부서버린다(34-35절).

(출 20: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 느부갓네살은 자기 꿈을 재현하여 묘사한 다니엘의 진술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해석하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니엘은 단독자로 해석한 것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근거를 확립했다. 그것을 옳다고 인정할 사람은 느부갓네살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진술이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두 증인으로 제시한 증언도 효력에 의심을 가졌지만, 한 명의 증인이 없어도 그 증언이 진리가 되었다.

3. 칼빈은 느부갓네살의 신상에 대해서는 논쟁 없이 네 왕국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16세기에 이해한 방식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네 왕국으로 이해한다. 유대인들은 넷째를 터키로 이해하지만, 로마 제국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네 왕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시아), 마게도냐(알렉산더와 분열왕국), 로마 제국이다. 네 왕국이 연관성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차라리 앗수르, 바벨론, 바사, 마게도냐라고 했다면 좀 이해하기 쉬운데, 앗수르를 빼고 로마 제국으로 채웠다. 칼빈은 다니엘이 머리를 바벨론으로 해석한 것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머리’는 제일 먼저 태동된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앗수르와 바벨론을 뒤이어 등장한 바사는 더 악한 정권으로 제시했다.

그와같이 네 시대, 금, 은, 놋, 철의 시대도 뒤로 갈수록 더 악한 정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철과 진흙이 있음을 주지시켰다. 은으로 비교된 메데와 바사 제국은 바벨론 제국보다 도덕이 더 나쁜 것으로 제시했다. 그래서 마게도냐는 놋으로 비교했다. 칼빈은 알렉산더가 소년 시절부터 잔인한 성격이었다고 제시했다. 부친이 잔혹하게 정복했을 때 시기심으로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모두 정복하면 자기가 정복할 정복지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가 정복에 정복을 한 심리 상태를 제시한 것이다. 알렉산더의 잔혹성은 그 넓은 영토를 정복하면서도 만족할 수 없었다. 칼빈은 알렉산더의 작은 키를 제시하며, 그 작은 체구를 가진 한 사람이 만족하지 못한 심리에서 모든 인간 사랑을 포기했다고 제시했다. 알렉산더가 가는 곳은 피바다였고 폭풍우처럼 파괴하며 휩쓸며 돌진했다. 그 잔혹성은 그의 후계자들까지 전수되었다. 알렉산더의 후예들에 의해 네 제국으로 분할되었는데, 피흘림은 중지되지 않았다. 알렉산더에게 소생이 없었는데, 칼빈은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 것으로 제시했다. 후손들이 알렉산더를 칭송할 것을 중지시켰다는 것이다. 알렉산더와 네 제국을 놋으로 부르는 것은 부당하지 않다. 그리고 로마 제국을 철로 비유한 것을 주모시켰다. 칼빈은 로마인들이 잔인한 압제를 제시했다. 그들의 야심과 탐욕, 잔혹성은 정평이 나있다. 야심과 탐욕 잔혹성이 결부된 민족은 로마인 뿐이었다. 로마인의 악명은 마게도냐, 바사인, 메대인, 앗수르인, 갈대아인과 비교할 수 없었다.

4. 그런데 그 발의 얼마는 철이고, 얼마는 진흙이었다. 철에 진흙이 들어있는 것은 파멸을 의미하고, 파멸되었을 때 산산이 부서질 것을 의미한다. 갈대아 세력을 물리친 메데와 바사, 그리고 바사를 정복한 마게도냐이고, 마게도냐를 로마가 정복했다. 알렉산더의 후예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로마 제국까지 무너뜨릴 것을 경륜하셨다. 즉 로마 제국은 예언에 의해서 멸망이 예고된 제국이었다. 로마 제국은 스스로 분열했고, 그리스도의 나라에 의해서 붕괴되었다. 바울은 형적이 지나감(고전 7:31)으로 제시해서 소멸될 것을 인지했다. 바울은 로마도 사라질 것으로 이해했다. 다니엘, 느부갓네살은 로마라는 제국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1세기 유대인들은 로마가 멸망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유대인들의 몸부림은 그들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지 로마가 사라질 것까지 믿을 수 없었다. 그 로마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지금 보이는 철옹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어떻게 해야 믿을 수 있을까? 고대인들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이나 화무백일홍 인무천일호(花無百日紅 人無千日好)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권력에서 그물에서 벗어난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은 자기 갈길을 알지만 그 길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바울은 세상 형적이 지나감을 알았고, 세례를 주지 않아도 어떤 문제도 없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에 만족했다.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고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는 길뿐이다. 권력에는 야심, 탐욕, 잔혹함이 있다. 어떤 정치가는 잔혹함이 없는 정치를 하라고 당부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정치가에 패배한 사람은 잔혹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5. 칼빈은 로마 제국을 그리스도께서 부쉈다고 제시했고, 의문에 대해서 논증했다. 잠 8:15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에서 왕들을 치리하는 만왕의 왕 예수를 제시한다. 그럼에도 세상왕국을 부수는 하늘의 주의 강림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리스도 왕국에 적대적인 로마 제국은 어떻게 될까?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왕을 깨뜨리는 것은 그들의 교만을 길들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제시했다. 세상왕의 교만이 하나님의 보좌까지 올라가면 불가피하게 그리스도의 손으로 대적자를 굴복시킨다. 그런데 다른 제국들은 그리스도의 현현 이전에 멸망한 제국들이다. 그들의 멸망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칼빈은 그 제국들의 멸망도 그리스도께서 부숴뜨리는 것으로 제시했다. 그것은 앗수르 제국을 물리치고 갈대아인들이 제국의 자리를 차치했을 때, 갈대아의 왕 느부갓네살을 주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통치하심을 시간에서 증명하신 것이다.

또한 신상을 구분은 시대가 변함을 규정했고, 그 변함의 주체가 그리스도이시다. 알렉산더 시대에 다니엘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모든 일은 다니엘에게 준 계시대로 움직였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통치자라는 것을 계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어마어마한 제국을 무너뜨릴 것까지 계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자녀들은 알렉산더, 알렉산더의 후예들 그리고 로마 제국의 엄습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믿지 않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도 믿지 않았고,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하셨어도 믿지 않았다. 유대인의 1차 반란(66-73년), 2차 반란(115-117년), 3차 반란(132-135년)에 의해서 유대인들은 잔혹하게 학살되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기독교와 결별하며 소멸되어 갔다. 히드리아누스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해버렸다. 그래서 모슬렘의 성지가 되었고, 중세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1차 십자군전쟁 1099년 진입해서 1291년까지 유지함). 그리스도의 통치를 명확하게 계시하였음에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계시를 믿는 자들은 어둠 속에서 한 빛을 붙들고 주의 오심을 기다렸다.

6. 다니엘서의 목적은 네 왕국의 강력한 위력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격려하며 주를 영접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이해하게 되면, 갈대아 제국, 바사 제국, 마게도냐 제국, 로마 제국의 위광에 압도되지 않고 참빛을 기다리게 된다. 예루살렘에 참란한 것이 서도, 부끄러움과 치욕에서 다윗의 후손을 기다려야 했다. 다윗의 후손은 알렉산더와 가이사(시어저)보더 더 강력한 세상왕이 아니라, 비교할 수 없는 참왕이시다. 참왕을 기다리는 백성은 세상왕보다 더 탁월한 실력을 가져야 할 수 있다. 다니엘의 예언대로 바벨론이 바사에 의해서 멸망되고 귀환했을 때에도, 바사의 멸망과 마게도냐의 정복군과 로마의 정복군이 들어올 때에는 주의 오심이 임박한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마카비 왕조에 만족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카비 왕조는 제사장이 세운 왕국이어서 다윗의 후손이 등장하지 않는다. 마카비 왕조를 몰락시키고 폼페이가 성전을 약탈했을 때에 그들은 로마 제국의 위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스도께서 그 제국을 먼지처럼 흩어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윗의 후손을 로마 총독의 손으로 찢었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리스도께서 건축자들이 버린 모퉁이 돌이 되었는데, 버린 돌에는 손을 대지 않은 돌이다. 그 돌이 성막의 제단의 돌이 되었다. 정으로 깨지 않은 돌이 로마 제국, 느부갓네살이 본 신상을 깨뜨릴 것이다. 그 신상을 깨뜨리는 돌은 “손으로 하지 아니한 뜨인돌”(34절)이고, 칼빈은 그것을 그리스도라고 제시했다. 참고로 ‘뜨인돌’은 개역개정에서 사용하지 않은 어휘이다. 뜨인돌은 분리된 적이 없는 자연상태의 돌인데, 필자는 출 20:25을 연관구절로 제시했다.

7.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불경건한자들이 자기 세력의 빛으로 공포를 줄 때 침묵으로 일관하게 됩니다. 주님, 독생자의 능력을 알게하옵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스리고 보호하심을 믿고 세상의 공포를 극복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일제 신사참배에 굴복했고, 독재 정권에 굴복하기도 했습니다. 세상 어느 것에도 굴복하지 않고 담대하고 인내로 주의 길을 갈 수 있게 하옵소서. 주의 명령을 대담하게 준수하여 주께 칭찬받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칼빈 다니엘 주석 10 강) 다니엘 2:36-45

1, 다니엘 선지자는 신상의 정금으로 된 머리가 바벨론 왕국임을 제시했다. 앗수르는 강력한 군사대국이었지 융성한 나라는 아니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두려움을 넣어, 70년 동안 지배 기간에 함부로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신상을 제작해서 유대인을 학살하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제국이 사라져도 그리스도의 현현이 임박하지 않고 더 오래 기다리도록 계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갈대아인을 정금으로 된 머리라고 해서 메대와 바사보다 더 막강한 모습으로 제시했다. 갈대아인들은 가장 잔인한 약탈자들이었으며, 경건하고 성실한 하나님의 예배자들에게는 매우 혐오스러운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그 제국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견디며 있어야 했다. 느부갓네살을 정금으로 된 머리 부분으로 지정했는데, 그것은 바벨론의 화려함이고 제국의 시작을 의미했다. 느부갓네살이 우월성을 인지시키기에 적당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의 신상은 머리에서 철과 진흙까지 연결된 동일한 속성을 가졌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자기에게 부과된 부분에만 집중한 듯하다. 그래서 결국 전체를 금신상으로 제작해서 만행을 일삼는다(단 3장).

2. (39절) 다니엘은 바벨론 뒤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고, 놋같은 나라가 일어날 것임을 제시했다. 둘째 나라가 바벨론보다 열등한 나라임을 제시했다. 바사는 바벨론, 메대 그리고 소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정복함에도 갈대아보다 못한 나라로 규정했다. 그것은 국력이 아니라 부패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고레스는 사려 깊은 왕이었는데, 그럼에도 피비린내 나는 야심과 탐욕으로 무참하게 정복을 일삼았다. 칼빈은 시대가 지날수록 더욱 잔인해지고 탐욕스러워지는 것으로 해석했다.

3. 셋째 왕국은 놋 부분이다. 강력한 특성이 아니라 악화된 것으로 칼빈은 반복하고 있다. 은과 놋 차이에 대해서 유대 율법 학자들은 혼동했다. 그것은 둘째 제국을 그리스 왕국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지와 부정직함으로 제시했다. 유대 학자들이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도적으로 덮으려는 행동이었다. 유대 학자들은 알지 못하는 것은 공언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칼빈은 필립의 아들 알렉산더와 로마 제국에서 마메아의 아들 알렉산더(Alexander the son of Mammea)를 비교했다. 유대 학자들은 알렉산더를 무능하고 치욕스럽게 죽임을 당한 후자로 무책임하게 대비시켰다는 것이다. 놋은 마케도냐 왕국과 관계한 것으로 규정한다. 알렉산더가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지만, 넷째 왕국에 의해서 멸망될 것이다. 알렉산더가 구축한 헬레니즘은 문명의 총아로 화려하고 강력했지만, 칼빈의 해석대로라면 잔인함의 방법을 증가했다.

4. 넷째 왕국은 40-43절까지 제시하는데 로마 제국을 의미한다. 로마 제국은 알렉산더가 지배했던 지역을 무자비하게 정복했다. 그런데 그 제국은 섞이지 않은 철과 진흙으로 형성되어 분리될 것이 자명했다. 그 나라는 다른 인종과 서로 섞는 문화였다. 그것은 로마가 공화 정치를 구성한 것으로 제시했다. 공화 정치는 아무리 낮은 등급이라 할지라도 국가로부터 어느 정도 공동의 이익을 얻는 구조여서 정치 구조상 가장 안정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권력이 원로원과 백성에게 있기 때문에 두 계층이 연합해도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멸망한다는 것이다. 로마 제국은 최고의 영화를 보지만 결국 파멸한다.

5. 다니엘 선지자가 산에서 뜨인돌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한 다고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왕국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 왕국은 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세력이 등장할 때 멸망했다. 그런데 성경은 뜨인돌에 의해서 멸망된다고 해석한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상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는 것이다. 제국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적대시하는 것이 당연했다. 갈대아인, 메대와 바사나, 마게도냐도 그리스도의 나라를 적대시했다. 그 속에서 유대인들은 생존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강력한 세상 왕국에서 생존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하고 고백하는 믿음을 배양한다.

6. 다니엘에서 제시한 뜨인돌, 산에서 분리된 한 돌은 동정녀 탄생과 비유한다. 그 돌은 사람의 손이 아닌 산에서 떨어진 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인한 지상 왕국과 다르게 구별되어야 한다.

7. “돌”, 그리스도는 돌로 여러 부분에서 지칭되었다. 그리스도의 왕국의 영구성이 많이 적용되었다. 그 떨어진 돌은 모든 사람에게 멸시를 받지만 돌은 세상 왕국을 파괴할 것이다. 세상 왕국을 파괴하는 것은 네 제국이 파괴하는 형태로 이해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엄청난 돌로 파괴하는 것은 매우 잔인하게 보이지만,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복이다. 세상 왕국은 진흙가루처럼 흩어지지만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영하다.

8.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이 땅에서 순례자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지혜가 우리의 눈을 가리지 않게 하옵시고,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인도하옵소서. 우리는 탐욕에 눈이 멀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귀가 열리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여시고 영생으로 인도하시나 고맙습니다. 우리 곁을 떠나지 마시고 권능의 팔로 붙들어 영원히 찬송을 받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

螢藍書院 五恩 高炅兌 형설청람(螢雪靑藍), ex fide in fid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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