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OO는 WITH YOU로 간다. 이것은 우리시대가 바라보는 관점이다. ME TOO가 목표가 아니고, 해결을 위한 신음인데, 해결점은 유일하게 WITH YOU라는 것이다. ME TOO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슬람 지역에서도 ME TOO가 일어날 정도이다. ME TOO는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세우고 있다.

ME TOO를 보면서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피해를 당한 일본군성노예(위안부)에 대한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안의 경중을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일본군성노예 사건과 비견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에서는 어떠했을까? 30년 전에는 혼혈(混血) 때문에 고통을 받기도 했다.

우리시대에 성행하는 ME TOO는 성(性)에 대한 담론의 대변혁을 준 것이다. ME TOO는 정당성은 시대현상이다. 이제는 “유교(근대)적인 정절(貞節) 개념”이 사라졌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그러한 담론이 세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성폭행당한 사안을 공개적인 방송에서 당당하게 발표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경찰서에서 성폭행 진위를 말하는 것에도 충격이 크기 때문에, 정신상담사가 옆에서 보조하며 진행할 정도이다. 그런데 당당하게 공개방송에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안일 것이고, 그 촉발을 따라서 많은 동조자들이 용기를 내서 자기 피해 사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더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ME TOO의 특징 중 하나는 상당이 오래전에 발생했던 밝히는 것이다. 그 동안 피해를 마음에 안고 있어 그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폭력 신고는 피해를 받음과 근접한 시간에 밝혀야 한다. 그런데 ME TOO는 상당한 기간이 경과된 후에 밝힌 것이기 때문에, 형사적인 처벌보다는, 피해 당사자가 상처를 선언함으로 치유를 목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법처리 사안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처리가 진행되어야 한다. 용서가 사법처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형벌은 형식적인 것이고, 용서는 내면적인 것이다. 형식적인 것이 완료되어도 내면적으로는 완료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용서되고 형식적인 벌도 완료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ME TOO를 어떻게 볼까?(참고 신명기 22장) ME TOO는 여성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배치시키지만, 성경은 쌍방행위를 놓는다. 혼인과 미혼 상태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혼외 성행위는 남,여 모두를 이유를 묻지 않고 죽이도록 했다. 혼인한 여인에게 성폭력 할 때는 가해자만 죽이도록 했다. 혼인한 남성을 성폭행한 여성에 대한 규율은 없다. 성행위에서 남성과 여성의 독특한 상이점이 있는 것으로 규정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미혼일 경우에는 반드시 결혼하도록 규정했다. 폭행된 여인이 결혼을 허용하지 않으면 합당한 벌금을 지불해야 한다. 위자료가 아니다. 불법 행위에 대한 징벌적 부과금이다. 성경에서 성순결은 가정보호와 생명존중에 있다. 성(性)을 출산을 위한 행동을 기본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우리시대에서 성(性)은 인간적인 기본적이고 필수적이고 권리인 행위로 규정하고, 생명과 연계시키지 않는다. 쌍방인정한 관계인가?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상태였는가에 판별을 둔다.

성경은 충만을 명령한다(창세기 1:27). 이 땅에 많은 인간 생명이 가득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바로 서야 하고,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생명이 많이 출생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정파괴는 생명충만을 파괴하는 것이다. 가정의 필수요소인 혼인한 여인을 파괴하는 것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불법 음행은 둘 다 모두 죽이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피해에 대한 대책은 응보를 지향하는 것이 회복을 지향한다. “눈에는 눈이 이에는 이”라는 선언이 응보적인 선언이 아니라, 피해자의 인격과 가해자의 생명도 존중하는 것이다. 성경은 회복이 보복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음을 제시한다. 자기 아픔을 이겨내고 극복해야 하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이다. 상처와 상처가 만나면 아픔이 더할 것이다. 그러나 상한 영혼이 치유함을 받은 뒤에 상한 영혼을 감쌀 때에 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은 인간에게 진정한 위로와 자유를 줄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언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치유를 얻을까? 보복에 의한 것이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은 보복이 아닌 용서로 회복한다고 주장한다. 용서는 내가 먼저 사함을 받은 경험이 있다. 당신은 죄사함의 경험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죄는 누가 어떻게 사했는가? 그 방식으로만 모든 사람이 진정한 사함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약한자와 상처입은 자를 힘써 위로하고 사랑하며 강한자에게 담대하게 정의을 요구한다.

피해자에게는 어떤 정의나 의무가 아니라, 위로와 보호가 최우선한다. 권력자에게는 이해와 관용이 아니라, 정의와 의무를 최우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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