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15-23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6: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로마서는 성경을 요약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핵심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로마서를 자주 읽으시며 많은 연구를 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이 진행되면서 로마서를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여러가지 번역 성경으로 로마서를 읽으면서, 깨닫는 것들을 노트에 남겨두시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엄청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제일 크게 다루는 문제는 ‘죄’입니다. 사탄에 대한 말은 한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에 단 한번 나옵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롬 16:20). 

이는 사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다루실 일이고 너희가 할 일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죄에 대해 가장 심도 깊게 다루고 또한 복음의 핵심을 다루는 로마서에 사탄에 대한 언급이 한번 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 또한 죄의 문제를 다룰 때 사탄에게 주목해서는 안 되며 로마서가 주목하도록 하는 곳에 주목해야 함을 말합니다. 

로마서가 독자들에게 주목하게 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즉, 우리의 죄의 문제는 사탄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볼 때 해결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죄, 남의 죄, 이웃의 죄에 대해 사탄이라고 정하고 죄를 이기기 위해 축귀를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효력이 있을리 없습니다. 잘못 배운 사람들 중에는 “내 속에 있는 음란 귀신 물러가라, 내 속에 있는 미움의 영이 떠나게 하소서”라고 밤새 기도하지만 이는 죄를 이기는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거짓 복음입니다. 로마서가 알려주는 죄에 대한 승리 비결은 나와의 싸움에서 주의 은혜로 이기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내 속의 죄를 이김으로 나는 죄와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총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9장에서 11장까지는 인류 역사를 향한 구속사를 말합니다. 12장부터 15장까지는 복음을 알게 된 자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열매들로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생명이 너희에게 있으니 어떠어떠하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15장 후반과 16장은 바울의 개인 일정과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1장부터 8장까지는 죄에 대해, 율법에 대해, 은혜에 대해, 영적인 법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믿음에 대해, 의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루는 본문은 로마서 8장까지 이어지는 내용으로서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죄를 이기는 비결을 깨달은 자들, 즉 생명의 성령의 법을 깨달은 자들에게 더욱 성령을 의지할 것을 당부하면서 고난의 문제를 다룹니다. 내 안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체의 고난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나아가 모든 피조물의 세계에 나타나는 죄로 인한 비참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내게 발생하는 외부적인 요소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고난이라는 문제로 봉착하게 됩니다. 이때 죄를 승리하는 비결을 아는 복음의 사람들은 고난의 문제는 모든 피조물의 세계가 겪는 저주와 관련하지만 자신들에게는 오직 더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하는 기회가 될 뿐이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간들의 죄 문제를 보기 위해 로마서 전체를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로마서 1장부터 로마서 5장 끝까지는 하나님의 공의, 율법,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율법을 통해서 완전한 의를 이루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죄로 물든 모든 인류 중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죽으며, 인간의 그 죽음이 바로 우리 인류 전체가 전부 죄인들이기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 인류는 각각 죽을 죄를 지기 때문에도 죄인이지만 아담 안에서 죄성과 죄책을 물려 받고 태어나기 때문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율법 앞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죄인인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에서 벗어나 예외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로 말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이미 죽음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장래에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때문에 또 다른 길이 열립니다. 그 길은 은혜의 길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과 새언약을 맺는 길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 죄를 위해 치러진 사실임을 믿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무조건 ‘완전한 의’를 소유한 사람이 되어 영생을 얻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한 의인’이 됩니다. 이때 그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오랜 약속이며 새언약인, 복음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상태로 이어지는데, 그 상태란 우리의 옛생명이 십자가에 죽은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대로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일들을 알게 되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게 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객관적으로 이루신 역사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위해 죄의 문제를 해결해 놓은 사실은 역사적으로 실제로 발생한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의미는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만 알려지며, 따라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포함한 주의 백성의 죄의 문제를 친히 해결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죄가 우리를 더 이상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연합군이 일본을 무너뜨리자 한국이 해방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라디오 및 전령관을 통해 연합군의 승리와 식민국의 해방 선포를 통해 조국의 해방 사실을 알게 된 대한민국 백성은 더 이상 일본 사람들의 종이 될 필요가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해방의 선포를 듣지 못하였거나 듣고도 믿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자유를 누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든 말든 실제로 일본군은 연합군에게 패망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사람들이 믿든 말든 실제로 사탄의 세력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무너졌습니다. 이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 복음이며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은 정말로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로마서 6장 14절을 통해 선포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왕으로 모신 분들입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의가 되시며,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내 죄를 담당하심으로 나는 죄 값을 치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분을 온 맘을 다해 사랑하고 영접함으로써 주님과 언약을 맺었고, 이에 그분이 이루신 완전한 의가 내 것이 되었고, 나의 무한한 죄가 그분에게 넘어가, 주께서 내 대신 십자가 상에서 율법의 공정한 형벌을 치르셨다는 사실을 아시며 또한 믿으십니까? 내 생각, 내 삶, 내 기준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성경이 최고이며 성경의 주인공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생각과 삶과 기준으로 두기로 작정하셨습니까? 나의 삶 속에서 진정으로 주님이 가장 큰 행복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모든 것이기에 그분이 나의 구세주시며 왕이시고 따라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오직 죽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며 찬양할 마음 가짐이 되어 있습니까? 특히 성경에 의지하여 주께서는 부활하셨으며 나를 위해 새하늘과 새땅을 예비하실 것이기에 나는 언제라도 죽음을 지나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것이며 어느날 주님 재림하실 때 주님처럼 부활하여 영원히 새하늘과 새 땅에서 주와 함께 거하게 될 것을 믿으십니까? 

지금 제가 드린 이러한 질문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신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거듭난 사람이며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고, 따라서 오늘 제 설교를 이해할 수 있고,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 제 말씀이 와 닿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은 거듭난 주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복음의 메시지를 가장 반갑게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면 회개하셔야 합니다. 아직 교만한 것이며 복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영생과는 무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로 죽음을 맞게 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분명한 증표가 없기에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과 복음을 아직 깨닫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이 예배 시간을 통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얻고 복음이 깨달아지는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마음 속에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여러분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현재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십니다. 

본문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오직 한 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 길은 무엇을 하든 그 마음 속의 동기가 하나님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죄만 짓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후로는 두 길이 생깁니다. 마치 아담에게 선악과가 그 눈 앞에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따먹을 수도 있고 따먹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거듭난 우리에게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길이 생깁니다. 

로마서 6장에 의하면, 그 두 길은 죄의 종이 되는 길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종이 되는 길입니다. 이 두 길은 거듭난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을 마치는 그 날까지 그들 앞에 항상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죽는 그 날까지 매순간마다 계속 두 길 사이에 선택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은 ‘내’가 해야 합니다. 이 선택을 하나님이 하라고 그 분에게 던지면 안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닌 책임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선택할 수 있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를 부인하면 영지주의가 됩니다. 사실 이 시대에 이러한 결정이 의미가 없다고 가르치는 현대판 영지주의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해도 필요없고 성경 읽어도 필요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강권하실 때까지 가만이 있으라. 그때가 되어야 거듭나게 되고 저절로 하늘의 큰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이러한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그 동안 죄를 이기고 싶었어도 늘 실패했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그 말에 수긍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하나님께 던지고 가만히 멍청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에게는 죽는 그 날까지 아무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죄 가운데 죽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이 전파될 때는 언제나 선택과 결정을 요구합니다. 심지어 거듭나지 않는 사람도 복음을 듣게 되면 선택과 결정을 요구 받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 조상으로부터 죄성을 물려 받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결정을 하되 오직 그들의 죄의 본성에 따라 언제나 죄만 택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자유로운 선택이 사라진 것을 의미하지 않고, 여전히 죄성에 따른 선택일지라도 자유 의지로 인한 선택이기에 처벌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혹시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살래”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에베소서 2장의 원칙처럼 죄의 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3).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강권하시는 성령님의 효력있는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죄 많은 인간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기꺼이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이 되어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의의 길을 선택해야만 죄의 길에 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라도 죄의 길을 선택하면 의의 길에 설 수 없습니다. 한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순간에 있어서 의의 길과 불의의 길에 동시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가 어디에 서 있든 그는 오직 하나의 길에만 서게 됩니다. 물론 어떤 길에 설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내’가 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누구에게 복종하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제 다시 그 선택 대상의 종이 된다고 말합니다. 즉,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의의 종이 될 수도 있고, 죄의 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의는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는 예수님을 선택하지 않고 과거의 본성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선택을 통해 예수 안에 거하면 의의 길이요, 선택을 통해 예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죄의 길입니다. 그것이 사상이던, 생각이든, 행동이든 그리스도의 의를 택하지 않으면 저절로 죄의 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 후에는 선택한 대상의 종이 되는 것이 우리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줄곧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고 당부하며 권면합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3-4). 

그러므로 성경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거듭난 우리를 “자유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죄의 기회를 삼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의의 길과 죄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우리 입장은 자유 의지적 선택이라는 면에서 볼 때, 아직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저 멀리 선악과를 바라보는 아담의 상태와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담보다 더 큰 유혹이 있습니다. 반면에 아담보다 더 큰 도움도 있습니다. 더 큰 유혹이 있다는 것은, 아담은 선악과를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죄의 맛을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미 죄의 맛을 알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죄는 우리에게 아담보다는 더 큰 유혹입니다. 더 큰 도움은 아담에게는 마음까지 붙드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도움이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맘을 붙드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에게는 도움을 바라며 손을 벌리기만 하면 성령님이 우리 맘을 도와주시고, 나아가 주께서 마련해 주신 모든 은혜의 방편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고, 성찬이 있고,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로마서 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의 자녀들을 위해 이루어 놓으신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주며 당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을 보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동사는 두 개가 있고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우리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하였지만, 성경이 진술하는 내용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들일 경우 영적 지식이 됩니다. 그래서 영적 세계의 진리와 법칙을 알게 됩니다. 한편, 우리에게 해당하는 동사대로 순종하고 행하면 영적으로 진술된 내용이 우리에게 실제로 체험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체험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두 동사는 무엇입니까? 6장 16절에 보니 “내주어”, 17절에 보니 “마음으로 순종하여”, 19절에 보니 “내주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내주어야 합니까? 16절은 “너의 자신을”, 19절에 보면 “너의 지체를” 이라고 말합니다. “너의 자신을”이라는 말은 네 마음과 몸과 삶과 정성을 다 드리라는 뜻입니다. “너의 지체”를 이라는 말은 네 눈, 코, 귀, 입, 몸, 나아가 시간, 돈, 생각, 감정, 의지 등을 드리라는 뜻입니다. 사실, “내 자신을” 다 드리면 “내 지체를” 다 드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둘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부분입니다. 로마서 6장 19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과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것들에게 너의 자신과 지체를 드렸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 즉 의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 너희 마음과 지체를 드리라. 그리하면 거룩함에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일차적인 결론입니다. 로마서 6장 19절 앞에 많은 진술과 설명이 있지만, 우리 각 개인에게 복음을 체험하는 비결은 이것입니다. 주께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면 복음을 체험합니다. 복음을 체험한 사람의 결과는 거룩입니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복음을 체험하는 방법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마음과 지체를 다 드리는 것입니다. 조금도 남김없이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죄를 이기고 거룩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0-23)

이미 수 차례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거룩에 대해 성경적인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복음에서 떨어져 율법주의 또는 신비주의로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말하는 거룩의 표준은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셨을 때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항상 예수님의 삶이 담긴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읽으면서 주의 성품과 삶을 연구하기 바랍니다. 주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삶을 통해 거룩의 개념을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욕주의적인 거룩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승을 보면 거룩하다고 느끼고 수녀가 되면 거룩하여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룡산에서 도를 닦고 내려왔다고 하면 거룩하게 느끼고 금식 기도를 40일 했다고 하면 거룩하여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금욕주의는 복음의 철저한 원수이며 나아가 마귀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5:1-5). 

우리가 비성경적인 거룩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한, 우리는 복음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위선으로 나아가기가 쉽습니다. 거룩의 개념이 잘못되면 예수님 당시의 율법주의에 속한 바리새인의 모습을 갖게 되거나, 신비주의 및 금욕주의에 속한 영지주의의 모습을 취하게 됩니다.  

성경이 가진 거룩의 개념은 레위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질서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정하신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거룩입니다. 남자는 남자다운 것이 거룩이며, 여자는 여자다운 것이 거룩입니다. 자녀는 자녀답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거룩한 것입니다. 하늘의 새는 하늘에 있어야 거룩하며, 물고기들은 바다에 있어야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질서가 거룩입니다. 

또한 성경의 거룩 개념은 건강입니다. 병이 들지 않고 죽음과 저주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거룩입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의 아름다운 세상이 거룩한 세상입니다. 저주가 없는 상태가 거룩의 상태입니다. 

또한 거룩은 아름다운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거룩한 사람은 그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성령은 “The Holy Spirit”, 곧 거룩한 영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면 거룩한 영을 따르는 것이니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이때 거룩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거룩한 성품인데, 그 성품은 우리가 볼 때 참으로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그 성품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즉, 거룩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항상 나타나는 사람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거룩한 사람이며 그 마음은 지극히 아름다운 마음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모습은 거룩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거룩하며 아름답습니까? 이것이 바로 거룩한 모습이며 경건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사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거룩은 따분하고 지루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며 질서이며 사랑이며 겸손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은 그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에 착한 마음과 믿음의 사람이 그를 볼 때 대단히 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우리가 누구의 지시를 따르냐에 따라 그 대상을 닮는다고 말합니다. 열왕기하 17장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라고 되어 있는데, 그 뜻은 허무한 우상을 따를 때 그 우상을 닮는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죄의 길을 따를 때 사탄을 닮습니다. 세상을 따를 때 세상을 닮습니다. 하지만 의의 길을 따를 때 의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습니다. 온 맘으로 주를 순종할 때 우리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를 닮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6장 21절처럼 죄의 열매는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 사망입니다. 그러나 거룩함의 열매는 영광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여러분이 자신을 주께 드릴 때 주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나타납니다. 그것이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눈과 팔, 귀, 발, 즉 우리의 삶의 전반에서 나타나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내 생명을 포함한 나의 모든 것을 지극히 높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신 그리스도께서 나 대신 사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거룩입니다. 

로마서 6장 17절을 보니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려면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우리 자신을 주께 드릴 때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뜻을 우리의 자유 의지를 통해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께 우리 마음과 지체를 전부 드리는 것과 그분의 교훈을 힘써 따르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주께서 바울을 통해 교훈하십니다.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9-20)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이 할 마지막 일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또는 ‘우리 지체를’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드리지 않은 부분은 우리의 육체의 소욕을 통하여 죄의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들의 모든 기능과 재능을 우리의 새 주인이신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기를 기뻐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모든 시간과 경제를 사용하여 주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새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온 맘 다해 주께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내어 바치는 헌신의 삶이 되기를, 그래서 그분의 교훈을 철저하게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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