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말라"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다. "기도는 로밍이 필요 없습니다"

나에게 교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내 전부이다. 교회를 빼고 내 인생을 정리하기는 곤란하다. 교회는 왕이신 주님으로부터 영적 충만을 공급받는 곳이며,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곳이며, 비전을 꿈꾸며 세워가는 복의 통로이다.

나는 교회를 관리하고 청소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특히 마음이 복잡하고 인생이 뒤죽박죽 엉켜있을 때, 교회를 청소한다. 교회를 정리하다보면 땀을 흘리고 집중하게 된다. 어느새 내 마음의 복잡한 것이 다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나의 교회 청소는 주님과 대화를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주님의 몸 된 성도들이 예배하는 교회당을 정리하는 것은 땀도 흘리면서 운동도하고, 주님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내 마음의 어수선함도 청소하는 아주 효과적인 영적 관리라고 본다.

 

■성전을 청결케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해서 성전에 올라가셔서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성전의 영적 기능이 아주 훼손된 모습을 접하게 된다. 장사하는 분들이 돈을 교환하고, 물건을 파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분노하셨다. 왜 주님이 분노하셨는가? 교회의 영적 분위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도서관의 분위가 있어야 학습 효과가 극대화된다. 시장은 시끌벅적 소리가 있어야 생동감이 있다. 모든 장소에는 장소에 따른 분위가 필요하다. 성전에는 성전의 영적 분위가 있어야 한다.

교회의 영적분위기를 망가뜨리는 모습 중에,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성도들을 상대로 돈 놀이를 한다든지, 사업을 목적으로 교회에 온다면 본질이 바꾼 모습이다. 교회가 사업의 수단이 된다면 교회의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모습이 될 것이다. 교회에 오는 목적은 나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의 성전청결 사건을 보면서 또 하나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은 성전을 깨끗이 사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성전을 지져 분하게 또는 무질서하게 사용해서는 안된다. 거룩한 곳은 거룩하게 정리 정된 해서 질서 있게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귀빈들이 모이는 장소는 항상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를 너무 지져 분하게 사용할 경우, 마음에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신앙이 바르게 성장하는데 방해가 된다. 귀한 곳은 귀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 장소에 걸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장에 가면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한다. 도서관에 가면 조용히 독서를 하는 것이 품위 있는 행동이다.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귀하게 여기고 잘 정돈하는 것부터 가르치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이 허술하면 정작 중요한 때에 삶이 무너진다. 성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예수님은 교회의 기능중에 가장 중요한 예배의 기능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다. 교회가 영적인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기능이 회복되어야하고 기도가 쌓여야 한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교회, 가정,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항상 기도가 있다. 그러나 활력이 없고, 인본주의적인 이성중심의 공동체에는 기도가 죽어있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담임, 본헤럴드 발행인,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등저서: 제자세우기 40일 영적순례 등.

이런 모습이 있다면 강도의 굴혈이다

주님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시면서, 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어떻게 만드는 것이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인가?

●예배시간에 시끄럽게 떠들고, 예배와 기도를 방해하는 행위, 예배시간에 잡담하거나, 왔다 갔다 하거나, 딴 생각을 하거나, 장난치는 행위나,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는 행위나, 교회에서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휴지, 음료를 먹고 그냥 버리고 가는 행동이나, 교회에서 싸우는 것과 같은 모습들이 바로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세상적인 말로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거나, 모욕을 주거나 상처를 주는 행위, 모여서 은혜로운 말을 나누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세상적인 이야기로 오히려 믿음을 떨어뜨리고, 교회 분위기를 망치는 행위가 바로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거룩하지 못한 신앙생활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치는 행위, 중직자로서 신앙이 모범이 되지 않고, 너무 이기적인 행동으로 교회 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행위가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이다.

●거짓 말, 음모, 비난, 모독, 시기, 질투, 무시, 논쟁을 일쌈는 행위도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헌금생활을 온전하게 하지 않는 것도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선지자 말라기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릴 때 좋은 것 살찐 것 건강한 것은 자기가 취하고, 병든 것, 나약한 것, 삐쩍 마른 것은 주님께 드렸다. 또한 헌물과 십일조를 도둑질했다. 이것이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재정을 비정상적으로 사용하여 교회 갈등과 분열의 도화선이 된다면 그것도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이다.

●교회의 목표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맞추어진 번영신학, 외형주의, 물질주의, 개교회주의, 성공주의에 빠져 있다면 그것도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이다.

●성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내 탐심, 내 욕심을 죽여야 한다. 십자가는 나를 죽이는 것이다. 기독교가 십자가를 놓치면 타락한다. 십자가를 놓치면 욕심, 이기심, 탐심이 성장한다. 타락의 본질은 탐심, 우상숭배와 같다. 교회가 십자가를 잃어버리면 교회는 강도의 소굴이 되기 싶다.

●교회 매매, 성직 매매, 금권선거도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이다. 목회자를 청빙하는데 돈을 요구하는 당회원과 중간 다리를 놓는 브로커 장로와 목사들이 있다. 또한 교회를 부동산처럼 이익의 수단으로 매매를 한다면 그것도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들과 중직자들은 교회의 권력집단이다.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힘을 잘 사용하면 공동체를 세우지만, 힘을 남용하면 공동체는 파괴된다. 삼손은 민족을 구할 나실인으로 구별되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엄청난 힘을 주셨다.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힘을 삼손이 정욕으로 잘못 사용하였다. 그 결과 영적인 타락과 윤리적 실패로 인해 가정과 삶이 파탄이 되었다.나중에는 육체적 능력도 상실되고, 눈도 뽑힘당했다. 힘을 잘못 사용하면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목회자와 중직자들은 자신에게 주신 힘을 남을 지배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섬기기 위해서 주신 직분이다. 힘을 잘못 사용하면 결국에는 영적으로 타락하고, 자신의 윤리적 기준도 타락하고, 가정도 무너지고, 결국에는 육체까지 무너진다.

●성직자가 돈과 여자(섹스)와 명예(권력)에 물들었다면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든것이다. 이 세가지는 남자를 망하게 하는 도구이다. 남자 뿐이겠는가? 여자 성직자도 마찬가지다. 사도요한은 청결한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순결한 영혼과 육체를 타락시키는 이 세상의 것들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이라고 했다. 요즈음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보다 교회 지도자들의 수준은 더 엄격해야 한다. 그 기준은 오직 성경이다. 성경은 보여진 행동 이전에 마음의 상태와 동기를 가지고 말한다. 마음에 음욕을 품었다면 이미 간음하였다고 정죄한다.

●교회는 혼합주의를 경계한다. 교회가 오직 성경, 오직 예수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면 그것은 혼합주의이다. 혼합주의는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외침의 핵심은 오직 하나였다. "오직 성경"에 목숨을 걸었다.

●교회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감한다면 그것도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이다. 교회의 사역은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성령으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 사명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래서 늘 타협이나 적당주의가 유혹을 한다. 타협과 적당주의를 거부하라.

●교회가 행함이 없는 믿음만 강조한다면 그것도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개인영성만을 강조하고 사회적 영성에 대해 둔감하다면 그것도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의 성향이 개인의 신앙생활과 교회 중심의 활동에는 적극적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 하고, 공교회라는 한 몸된 공동체에 관심이 없다면, 그 공동체의 믿음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교회가 사회적 영성에 둔감한 것은 모르기 때문에 아니라 손해를 보기 싫어서 하는 행동이다. 개인영성과 사회적 책임과 의무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신앙이 필요하다.

●말만 무성하고 행동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며, 이것은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교회에서 중직자들이 믿음과 봉사를 하지 않고, 선데이 크리스챤으로 지낸다면, 이것은 교회 공동체를 아주 힘들게 하는 것이고, 이 해악이 슬금슬금 퍼져 전체 공동체의 악영향을 준다. 이것이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일터에서 모범이 되지 않고, 세상 사람보다 더 낮은 윤리의식과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감이 없다면, 그것이 한국교회 전체를 욕먹이는 행위이며, 곧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행위이다.

●복음전도보다 윤리운동을 해야 할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의식 바닥이다. 도덕재무장운동을 해야할 상황이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신앙고백할 때, 여기서 윤리가 거룩한 삶이 나온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면, 인간과의 윤리적 관계도 바르게 된다. 윤리적 타락은 곧 신앙의 타락이다. 보이는 열매를 통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윤리적 타락은 곧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불한당,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가는 행위, 교회 헌금을 도둑질하는 행동, 교회 헌금은 공돈이라는 의식, 이런 행동을 한다면 그것도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다.

●교회의 방향은 선교와 전도이다. 사명을 잃어버린 교회는 이미 강도의 소굴이다. 교회가 맛을 잃고 빛을 잃었다는 증거이다. 교회의 규모의 화려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선교와 전도의 기능을 살아 있느냐? 아니면 죽었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생명력을 논하는 것이다.

강도들이 모이면 어떤 일을 하는가? 도적질하는 것을 생각하고, 상대방을 욕하고, 헐뜯고, 죽이고, 피해를 입힌다. 이것이 강도 집단의 모습이다.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강도의 모임에 들어가서 발을 담고 살아갈 수 도 있다. 그래서 깨어 있는 것이 답이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내 안에, 내 공동체 안에 슬며시 와서 뿌리 내리고 있는 강도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 그것들을 찾아내서 청소하는 것이 개혁이고 회개이고 거룩한 삶의 첫걸음이다. 이것을 주님이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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