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복술, 도적질

계 9:20-21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재앙의 의미

20절에서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않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한다고 한다.

‘재앙’이라는 헬라어 ‘플레게’(πληγή)는 ‘때리다’(to strike, to smite)라는 뜻의 ‘플래소’(πλήσσω)에서 유래됐으며, 플래소는 ‘플라소’(πλάσσω)에서 나온 말이다. ‘플라소’는 ‘~을 빚다. 만들다. 형태를 만들다’(to mould, form)라는 뜻으로 히브리어로는 ‘야차르’(יָצַר)이다.

따라서 ‘재앙’이라는 단어는 두드리고 때려서 연장을 만들듯, 만드는 이가 원하는 어떠한 형태가 만들어지기까지 때리고 빚어서 그 형태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창세기 2장 7절과 19절에서 사람 뿐만아니라 짐승들과 새들을 만드실 때에도 사용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יָצַר, formed)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יָצַר)”(창 2:19)

그러므로 ‘재앙’이라는 것이 불신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두들겨 맞는 재앙이지만, 성도들에게는 조각목을 다듬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형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때리시고 빚으시는 동안은 재앙을 만난 것처럼 힘들고 아프지만, 고난 뒤에 영광이 있듯이 그 재앙이 오히려 은혜이며 복인 것은 재앙같은 고통 후에 잘 빚어진 성전에서 쓰일 그릇으로 그리고 새 성전으로 탄생되기 때문이다.
“우상”이라는 헬라어 "에이돌론"(εἴδωλον)은 “보다”, “주목하다”, “알다” 등의 뜻을 가진 “에이도”(εἴδω)에서 파생된 말로, 인간이 만든 모든 형상(image, idol)을 말한다. 여기에서 우상이라는 영어 “아이돌(idol)”이 나왔다.

또 “죽지 않고”의 “죽다”라는 헬라어 “아포크테이노”(ἀποκτείνω)는 ‘~로부터’, ‘~의’ 등의 뜻을 가진 “아포”(ἀπό)와 ‘죽이다’는 뜻의 “크테이노”(κτείνω)가 합성된 단어로 “타인의 생명을 폭력으로 죽이는 것” 즉 “살해하다”(murder, slay), “죽이다”(kill, have put to death), “처형하다”(execute)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마병대가 달려오는 것같은 황충의 떼들 즉 수많은 이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가짜 복음으로 하나님을 모르게 하여 종교생활을 하게 하도록 미혹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영생이 없는 종교생활의 고통을 받으면서 황충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 왠만하면 회개할 것도 같은데,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우상숭배에 더 힘을 쓴다고 한다.
21절을 보면, 그들이 우상숭배를 하며 회개하지 않는 것이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이다.

🔺살인

“살인하다”라는 헬라어 “페노”(φένω)는 “살인”(murder, slay)이외에 “(가축을)도살하다”(slaughter)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사야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더이상 동물을 가져와서 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인데,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즉 그들이 흠없고 가장 좋은 동물을 데리고 와서 그 동물에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전가시킨 뒤에 그것을 죽여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땅만 밟고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제사를 할 뿐,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가 없고 주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이다. 

주를 경외함이나 애통하는 마음이 없이 동물을 죽이는 것을 “살육”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죽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배는 내가 완전히 죽어서 재가 되는 희생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나 교인들은 절대로 죽지 않고 나를 즐겁게 해주고 나를 만족시켜줄 예수와 교회를 찾아다닌다. 나 자신이 절대로 희생하거나 죽을 수 없기에 다른 이들이 나를 위해 희생하고 재가 되어야 한다. 

소자에게 한 것이 주께 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죽지 않고 다른 이를 희생시키는 것이 바로 주님을 희생시키는 것이며, 주님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 가짜 교인들은 예배하거나 봉사할 때마다 예수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부인을 하지 않은채 예배하는 자들을 견딜 수 없이 싫다고 하신다. 자기 부인이 없는 예배는 살인을 계획하고 저지르는 것이 될 뿐이다. 가인처럼.

창세기 4:10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이사야 1:13-15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호세아 5장을 보면, 행음으로 더러워진 이스라엘의 살육 죄를 기록하고 있다.

호세아 5:1-4
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 
2 패역 자가 살륙죄 깊이 빠졌으매 내가 저희를 다 징책하노라 
3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이 이미 더러웠느니라 
4 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호세아서에서는 이스라엘이 형식적이며 반복적으로 하는 제사를 살륙죄라고 하며 그 살륙죄가 그들을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음란해서라고 한다.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서 즉 온전한 회개가 없이 형식적이며 반복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살륙죄라고 하며, 회개없이 예배하려는 마음을 음란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 결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예배한 것을 간음 또는 행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된 땅의 소산 즉 인간이 땀을 흘려서 열매를 맺은 소산 다시말해서 하나님을 모르고 율법의 행위로 제사를 드린 가인의 제사는 살륙죄를 범한 동시에 행음한 것이다. 그 결과가 동생 아벨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도(야다) 못하면서 매주일 예배당에 가서 예배하는 것을 살인하며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것을 멈추라고 하는 것이다. 예배란 영생을 소유한 자 즉 주님과 연합되어 한 몸이 된 사람이 하는 것이지 영생이 없는 자의 예배는 주님을 죽이는 살인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예배 후에 가인처럼 반드시 형제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영생이 없는 자가 영생을 소유한 자를 시기 질투하여 죽이는 것이 인간의 역사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으로 시작해서 늘 형제라고 부르는 교회 안에서 살인이 일어난다. 교회 안에는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행위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이들은 영생을 주시는 분을 잡아 죽여야만 한다. 자기가 선악지식나무를 먹고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의 의를 나타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성경도 읽고 기도생활에 힘쓰며 모든 예배에 참석하며 봉사도 남들보다 열심히 하고 전도와 선교에도 힘써야 한다. 그래서 힘들어도 죽을 힘을 다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런 행위로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거저 주시겠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기의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어 자기의 행위와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것을 ‘종교’ 또는 ‘우상숭배’라고 하며 영적으로는 남편되신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이혼’이라고 한다. 오늘날 기독교도 종교로 타락하여 자기들이 무언가를 해서 ‘의’를 이루겠다고 ‘영광’을 나타내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과거 카톨릭이 ‘고행’을 통해 스스로 자기의 죄를 없애고 자기의 의를 이룬 것들의 모순을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없앴다. 그러나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만 같은 선악지식나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죄인들은 교인들을 훈련시킨다는 이름하에 주께서 허락하신 고난이 아닌 스스로 만든 고난에 열심히 동참해서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도록” 미혹의 길로 이끌고 있다. 그 결과는 허무와 절망과 죽음이다. 거짓 선생들은 수많은 영혼을 푸른 초장이 아닌 사망의 골짜기로 인도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로마서 10:2-3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자기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이들이 저지르는 것이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지식나무를 먹는 것이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그분을 없애는 일이다. 오직 세상에서 존재하는 분은 하나님 한분 뿐이며, 나머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분의 생기가 들어간 자만이 그분과 한몸이 되어 존재가 되는 것이며, 성령을 받지 않은 자는 먼지 덩어리이거나 짐승이라고 하는 것이다. 흙먼지나 짐승이 고행을 한다고 결코 사람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되는 길은 오직 주님의 생기가 들어가야만 가능하다.

오늘날 성경을 성령 안에서 묵상하지 않는 수많은 목사와 교사들은 자신도 모르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하고 가르치느라 진땀을 뺀다. 영생이 없는 자가 영생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으로는 미천이 딸려서 정치와 시사 및 의식주 이야기 그리고 건강과 기타 사람들의 귀를 만족시켜 줄만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이런 것을 성경에서는 거짓말이라고 하며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 더 나아가 간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진짜 하나님이 아닌 자기들 머리에서 나온 우상 하나님을 전하기 때문이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 22:15)

과거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랬듯이 오늘날에는 수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공의는 선포하지 않고 회개하라고 외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긍휼하심만 이야기 하며 영혼을 죽이고 있다. 자신만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을 듣는 수많은 영혼을 사냥하고 전염시켜 함께 전염병에 걸리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사고 파는 살인자들이 모인 강도의 소굴이 된 것이다.

계시록 18:10-13 ...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오늘날 목사들 중에는 성경도 제대로 모르고 성령의 조명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일들과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그걸 설교라고 하고 있는 자들이 많다. 

듣는 이들도 자기의 귀를 만족시켜 주는 설교를 하는 곳을 찾아다니므로 영혼 사냥꾼들에게 잡혀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즉시 생매장 당하는 이들도 있고, 서서히 영혼이 파리해져가는 이들도 있고, 자기만 죽지 않고 전염병을 전염시켜서 주변사람들까지 함께 죽게 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이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형식적이며 반복적으로 주일만 되면 빠지지않고 열심히 예배당에 가서 살인죄를 저지르는 살인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를 성경은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씻은 뒤에 진흙탕에 도로 눕는다고 말씀한다. 
혹시 당신도 음란한 마음으로 즉 영생도 모르면서 주일마다 살인죄와 음행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가? 내 의지로 열심히 행하여 내 의를 드러내고 내 영광을 받으려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죽고 성령의 이끌림으로 나를 통해 주님의 의와 그분의 영광이 나타나는지 확실히 분별할 수 있는가?

딤후 4:2-5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복술
"복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르마케이온"(φαρμακειῶν)은 "마약", "마술”(sorcery 사 47:9), “술수”(witchcraft 갈 5:20)라는 뜻과 약과 독약 및 마약등 모든 약을 제조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약국(pharmacy)이라는 영어 단어가 나왔다. 이 단어가 출애굽기에서는 바로의 “술객”들로 쓰였다.

오늘날 찬양과 치유 및 영성집회라는 이름으로 교인들에게 수많은 약을 먹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예배하며 찬양을 하면 좋은 줄로만 안다. 그러나 옆 사람에게 말하려면 고함을 질러야 들을 수 있는 큰 악기 소리와 스피커의 볼륨으로 찬양이라는 복술은 사람들의 건강을 빼앗아가고, 점점 청각을 잃게 한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청각은 60세 이상된 노인의 청각이 된지 이미 오래됐다. 그래서 그들은 더 큰 소리를 선호하는 것이다.

과거 몰렉에게 자녀를 바쳤던 역사를 보면, 자녀들을 불 속에서 죽게 하는데 그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그래서 오늘날 밴드들이 사용하는 드럼과 심벌과 동일한 소리를 요란하게 울려서 아이들의 정신을 빼앗은 뒤에 불속에 태워 우상에게 바쳤던 것이다. 그때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부모에게 들리지 않도록 드럼을 더 크게 두드렸고, 드럼 소리와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섞여서 울려 퍼졌다.
몰렉에게 자녀를 바칠 때의 모습과 오늘날 귀가 아프도록 연주하는 큰 악기 소리와 청년들이 고함을 지르며 펄쩍 뛰며 찬양하는 모습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신명기 18:9-11
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오래전에 한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글을 보면, 120데시벨 정도의 크기(오늘날 찬양집회시에 느낄 수 있는 소리)에 15-20분 정도 노출될 경우, 24-36시간 몸에 반응이 생기는데, 사람에 따라 위장장애, 불면증, 식은땀, 고혈압, 어지러움, 발작, 심하면 간질병까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30-40분 정도 찬양을 했다면, 일주일 내내 몸 어딘가에 문제가 생겨서 짜증이 나고 힘들게 살게 된다. 그리고 괜찮아질만 하면, 또 교회에 가서 술객들이 조제한 환각제를 먹는 찬양 시간을 통해 계속해서 건강을 잃어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전기 기타의 굉음 소리는 육체의 엑스터시를 경험하게 하면서, 그러한 육체의 쾌감을 성령충만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성령충만해졌다며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지만, 교회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짜증이 나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싸우며 과거와 전혀 다를바 없는 옛생활을 한다. 

성령님께서는 그렇게 인간들이 만든 육체의 쾌감을 느끼는 분위기 속에 오시는 분이 아니다. 그리고 “더! 더!”라고 외친다고 성령께서 더 사람들에게 임하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며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찬양과 영성이라는 복술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노래 소리를 꺼놓고 롹 밴드 공연장과 교회에서 찬양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다. 음악으로 사람들을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여 그 순간 만큼은 자기를 부인하고 어딘가에 자신을 완전히 맡긴채 그들이 원하는 감정의 늪지대에 빠져들어가게 한다.

예레미야 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또한 기획을 기가막히게 잘 하고 하루 전에 리허설까지 마친 뒤에 감정을 터치할만한 배경음악을 깔아주면서 설교를 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만한 동영상을 만들어서 보여주면서 눈물을 짜게 만든다. 그런데 어리석은 교인들은 그것이 하나님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자기 마음이 움직였고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나오면 은혜받은 줄로 착각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의 마음과 육체를 만족시켜주므로 그들을 살리는 약이라고 생각하며 몰려가지만, 실상은 그들을 죽음이라는 미혹의 길로 이끄는 마약이며 독약이라는 것을 모른다. 바로의 술객들처럼 오늘날 교회의 사역자들 중에는 이러한 복술자들이 만연해 있으며 수많은 교회가 이러한 술객들의 술수로 수많은 영혼들을 사냥하고 있다.

예레미야 29:8-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도적질

말라기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도적질은 말라기 3장에서 잘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을 말씀하시며 온 나라가 도적질을 했다고 책망하신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이 제일 쉽게 범하면서도 회개치 않는 것이 바로 도적질이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훔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온 우주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그분이 주인이시며 피조물인 인간은 청지기일 뿐이다. 그런데 청지기인 인간들이 마치 자기가 열심히 수고해서 열매를 맺고 수확을 한 것으로 착각한다. 

월급이나 사례를 받았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댓가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내것 중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는 십일조나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를 도적질이라고 한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백성들과 함께 귀한 것들을 바친 후에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께 다시 드렸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이처럼 주께 바칠 때, 내것이나 우리의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신 주님의 것 중에서 다시 주께 드리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드린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을 때, 그 율법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데,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므로 정죄의 법으로 가르치며 정죄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강도라고 하는 것이며, 예루살렘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는 것이다.

로마서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지 않으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거짓된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나 꿈이나 환상으로 주의 말씀을 들었다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을 도적질했다고 하신다.
나 자신과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피조 세계의 그 어떤 것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도적질을 얼마나 했으며, 지금도 얼마나 도적질을 계획하고 있는가?

예레미야 23:30-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요한복음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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