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계정 목사(총신대 신학과 88학번, 독일 보쿰대학교 신학박사, 현 평택나눔교회 담임)

1. 필자는 1994년부터 총신대 학생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선배들과 동기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학교를 떠나다보니 어느새 맨 앞에 서 있게 된 것이다. ‘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의 위원장을 맡았고, 그때부터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데모의 ‘주동자’ 노릇을 맡게 되었다. 물론 그 대가는 ‘무기정학’과 ‘블랙리스트’였다. 

그러다보니 지금 모교에서 일어나는 소위 ‘총신대 사태’는 학교를 떠난 지 20년이 되는 필자에게 많은 감정과 성찰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현수막, 점거농성, 수업거부... 누군가에게는 매우 과격하게 보이겠지만 필자에게는 아주 익숙한 것들이다.

안계정 목사(총신대 신학과 88학번, 독일 보쿰대학교 신학박사, 현 평택나눔교회 담임)

2. 지금 총신대 종합관에서 농성중인 후배들은 아마 그 종합관이 어떻게 거기 세워졌는지 잘 모를 것이다. 20년 전 그곳에 종합관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등록거부ㆍ수업거부ㆍ점거농성을 벌였다. 당시만 해도 총신대는 시설 면에서 서울에 있는 웬만한 고등학교보다도 못했다. 대학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예장합동 교단은 ‘장자교단’이라고 자랑만 했지 학교에 대한 투자의지가 전혀 없었다. 운영이사회와 재단이사회 이중구조로 되어있는 ‘학교법인’ 역시 학교발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서로 자리다툼만 벌이고 있었다. 교수회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당시 우리들의 가장 큰 목표는 학교의 종합발전계획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시적 시작은 종합관이었다. 이를 위해 교단과 법인과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뜻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물론 ‘순진하게’ 호소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여러 과격한 투쟁을 전개했다.

3. 소위 ‘투쟁’을 하다보면 적개심이 끌어 오르기 마련이다. 또 적개심이 있어야 학생들이 모이고, 점거나 수업거부 같은 집단행동이 이루어진다. 필자가 대학 1학년 때 선배들이 예를들어 재단에 대해 욕을 하면 필자는 재단이사들이 다 마귀인줄 알았었다. 그런데 선배가 되고 학생회 임원이 되어 총회임원이나 이사들을 직접 만나고 나서 느낀 점은 그들이 ‘뿔 달린 마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필자는 ‘이중생활’을 했다. 후배들 앞에서는 교단과 재단과 교수들의 무책임을 성토하며 투쟁의 열기를 고조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타협점을 모색해야했다. 언제까지 점거만 할 수는 없으니까. 학우들이 점거농성을 하고 있으면 필자는 무슨 ‘특사’처럼 총회임원들ㆍ재단이사ㆍ보직교수들을 만나러 다녔다. 만일 당시 후배들이 필자의 이 글을 읽는다면 ‘저 선배가 우리를 속였구나’ 라고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그렇게 해서 합의점을 찾은 것이 바로 종합관이다. 총회와 재단과 교수와 학생들이 종합관을 짓는데 합심해서 노력하자는 합의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필자는 우리 학생들의 ‘강력한 투쟁’으로 교단과 재단이 항복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쉽게도 필자는 종합관이 건축된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무기정학이라는 징계를 받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잇 순간에 그때 일을 다시 생각해보면 약간 다른 생각이 든다. 당시 필자는 25세 정도였고, 만나러 다녔던 총회임원이나 재단이사들은 아마 거의 60대였던 것 같다. 그분들 입장에서 보면 아마 필자가 손자 같았을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분들이 필자의 요구를 끝까지 잘 들어준 것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이름들이 있다. 그분들은 지금 어디 계실까? 궁금하기도 하다.

5. 필자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거의 15년 후에 모교를 방문했을 때 많이 놀랐다. 옛날에 점심 먹고 친구들과 족구를 하던 곳은 사라졌고, 거기에 웅장한 종합관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많은 후배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거니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물론 속으로. “야, 니들이 쓰고 있는 이 종합관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아냐?”

감상적 낭만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양비론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가열찬 투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후배들에게 ‘데모의 선배’로서 간단한 조언을 하고 싶을 따름이다. 대화와 협상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후배들의 눈에는 총회나 재단이 마귀로 보이겠지만 적어도 운동을 지도하는 지도부라면 좀 달라야 한다. 물밑으로 계속 협상을 하기를 조언한다. 김정은과 트럼프도 대화를 하겠다는 시대가 아닌가?

6. 필자가 학생시절 ‘학원자주화투쟁’을 하던 총신과 지금 후배들이 또 다른 투쟁을 하고 있는 총신은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본질에서는 그렇게 많이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외형적으로는 많이 변했다. 학생수도 늘었고 학과도 늘었으며 건물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내부적 시스템은 그대로이다.

필자는 가급적 비판이나 욕은 삼가고 싶다. 교단과 재단이라는 미묘한 함수관계, 이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외부세력들, 이런 외풍에 휘청거리는 교수들과 학생들... 비판과 욕지거리는 정말 할 만큼 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과거 무기정학이라는 징계를 받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합동교단에서는 목사안수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것이 고통이라면 나 하나로 끝났으면 좋겠다.’

7. 지금 종합관에서 ‘가열찬 투쟁’을 벌이고 있는 후배들에게 ‘농성 선배’로서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그대들이 점거하고 있는 종합관은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대화는 가장 큰 용기이다. 정말 누군가를 꼭 몰아내야하는가? 그래도 대화를 해야 한다. 정말 누군가를 꼭 징계해야만 하는가? 그래도 대화를 해야 한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다보면 반드시 길은 보이게 되어 있다.

지금 ‘총신대 사태’의 유일한 해결점은 상처를 최소로 줄이는 것뿐이다. 상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대화 외에는 없는 것이다. 교육부나 국회의원 또는 외부의 어떤 단체가 상처를 해결해줄 수 없다. 당사자들만이 상처를 치유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임을 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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