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주님이 가시고 걸어간 그 길, 2천년전 예수님이 가신 마지막 7일간의 고난의 여정을 함께 걸어갑니다.

♥ 지난 주일은 ‘종려 주일(Palm Sunday)’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부르며 환영한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날은 부활주일 전 주일로서(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다음날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며 예수님의 고난의 시작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는 날이므로 정결하게 일주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하며, 고난주간은 부활절 전 한 주간, 종려 주일은 고난주간을 시작하는 주일, 세족 목요일은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신 목요일, 성금요일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금요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훈련의 시간이며, 무뎌졌던 영적 감각이 다시 깨어나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고난 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사건이 많이 등장합니다. 노아 홍수 때 밤낮 40일간 비가 내렸고(창 7: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거친 광야에서 생활했으며(민 14:33),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기도 하셨습니다 (마 4:1).

'40'이란 고난과 시련과 인내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깊은 명상과 경건의 생활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7일간의 행적이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면 십자가의 능력과 회복의 역사,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풍성하게 우리에게 임할 것 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십자가의 길, 지금 다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갑니다.

🐎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첫째 날

제1일 (일요일) :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요한복음 12:13~15, 마가복음 11:1~10, 마태복음 21:1~11 )

[요한복음 12:13~15]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수많은 유대인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고, 극진히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종려나무는 대추야자 나무로 곧고 수려하게 뻗은 아름다운 외형 때문에 영광, 기쁨과 승리 등을 상징하여 개선하는 전쟁 영웅들을 환영할때 많이 쓰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목격했기에 예수님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고 호산나를 크게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예수님이 오셨는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500년 전에 쓰여진 스가랴에서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입니다.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찮고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초라한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나귀는 사람이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새끼였습니다. 이것은 거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죄와는 상관없는 ‘거룩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거룩해야 함을,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땅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그 어떤 왕보다 크신 분이지만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고 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겸손의 왕’이요, ‘섬김의 왕’이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나귀새끼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구원해주실 구세주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주실 만유의 구세주가 아니라, 그들을 로마의 정부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실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야를 뛰어넘어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창과 칼을 휘두르며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기 위해 고난 받고 결국 죽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둘째 날 

제2일(월요일) : 성전을 청결케 하심.

[마가복음 11:15~18]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추방하시면서 그들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찬양과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성전을 자기의 이익을 채우는 목적과 수단으로 전락시켜 제사를 위한 희생제물을 팔고, 과도한 차익을 남기며 환전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욕심의 소굴로 전락한 현실을 간과하지 않으셨고 예수님의 이 행동의 결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원성을 사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아셨지만 두려움없이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중요하게 여기셨는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 말하고 또 교회가 성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나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내 안에 가득한 욕심과 교만, 이기적인 욕망을 보시고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채찍을 들지 않으실지.. 지금 예수님께서 나를 보신다면 어떻게 평가하실지 조용히 묵상해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성전의 모습을 회복하고 주님의 온전한 사랑을 날마다 경험하는 은혜로운 고난주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참조: 날마다 솟는 샘물, 2018년 고난주간 묵상집, 톰라이트와 함께 읽는 사순절 매일 묵상집, 김영봉의 가상칠언 묵상)

♣하나님 아버지, 이번 고난주간이 매년 돌아오는 의례적 형식적 고난주간이 아니라 진정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생각하고 저에게 있어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고난주간을 보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과 거룩을 본받게 하시고, 교만, 비판, 화, 미움, 질투, 거짓, 핑계, 이기심, 두려움, 성급함을 금식하게 하시고, 오직 겸손, 칭찬, 온유함, 사랑, 진리, 감사, 봉사, 믿음, 기쁨의 만찬을 누리게 하소서. 겸손과 섬김의 예수님의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을 따라가는 참제자가 되게 하시고, 날마다 저의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가게 하소서.

고난주간 동안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그 고난에 담긴 저를 향한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영적 승리를 위해 기도에 집중하게 하소서.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셋째 날

제3일(화요일) : 논쟁과 비유의 날 (변론의 날)

묵상 구절: 마태복음 21:23~24:51, 누가복음 20:1~21:36, 마가복음 11:27~13:37

[마가복음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 예수님은 인류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되기 전 화요일에 집중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화요일 오후 감람산 위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보며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가르치시고, 바리새인들에게는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45~46]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6~40]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 즉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형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잇도록 해야 하는데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차례로 아내로 취했다면, 부활 시에 이 여자가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사두개인들은 유대 사회에서 귀족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 직분을 독점했으며, 최고 종교의결기관인 산헤드린에도 많이 진출했습니다. 그들은 또 로마에 협조하면서 정치적으로도 혜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유대교는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삼고 있었기에 사두개인들은 큰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했으나, 천사들이나 사람들의 영혼은 부인했습니다.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고 믿었으므로 자연히 육신의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또 오직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했고, 나머지 예언서들은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어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29~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때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22:32~33]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예수님은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뜻을 올바로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은 하나의 종교적인 표현일 뿐이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면 육신의 부활을 못 믿을 이유가 없으며, 무에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육체가 죽어 흙으로 변했다고 해서 살려내지 못하실 리가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으로서는 지극히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성경을 그저 역사책으로 오해하고 믿음이 없기에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예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을 강조하시기 위해 출애굽기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은 곧 “산 자의 하나님”을 의미하며, 이미 4000년 전에 죽어 무덤에 장사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천국에 살아있음을 의미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지 않고 죽은 자의 하나님이라며 구태여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예배드릴 이유도 없고, 성경 말씀대로 사느라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확실히 살아 계시기에 우리의 믿음은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견고한 것이요, 어떠한 핍박과 박해와 난관도 무릅쓰고 신앙을 지켜 나갑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홀로 살아 계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성경의 모든 말씀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성경을 판단하려고 하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못합니다. 혹시 나도 사두개인처럼 성경은 읽지만 내 머리로 이해되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지는 않나요? 2000년전에 일어난 수많은 기적들은 성경책 이야기이고 지금 내 삶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에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을 사실로 믿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오늘도 변함없는 능력으로 우리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성령의 능력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영을 살리시며, 마귀의 종 된 자들을 해방시키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모든 환난과 시험으로부터 우리들을 지켜 주시고, 질병을 고쳐 주시며,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또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죄를 이기게 하시고, 세상 유혹을 물리치게 하시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가운데 자기 모든 것을 헌금한 과부를 칭찬하셨듯이 주님은 나의 능력이나 지위, 재산, 헌금의 액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부처럼 작지만 말없이 어둠을 밝힐 등불과도 같은 사람을 기뻐하시며, 내 마음의 중심, 나의 믿음을 보십니다.

지금 내 마음의 중심에 산 자의 하나님과 예수님이 자리잡고 있는지… 나의 교만과  세상적인 지식으로 채워져 있진 않은지 묵상하고, 주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로 향하시는 예수님이 강조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항상 제 삶 속에서 실천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영혼히 멸망하지 않는 영생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집중하게 하시어 악을 악으로 이기려하지 않고 말씀의 지혜로 세상을 이기게 하소서.

나의 영적인 무지함과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거룩하고정결한 삶을 살게 하시고, 내 안의 더러움과 교만을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주셔서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내 영혼에 은혜의 대청소가 있게 하시고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어 예수님의 고난의 비밀을 깨닫고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기적과 응답을 체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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