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21-27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21.Then said Martha unto Jesus, Lord, if thou hadst been here, my brother had not died. 22. But I know, that even now, whatsoever thou wilt ask of God, God will give it thee. 23. Jesus saith unto her, Thy brother shall rise again. 24. Martha saith unto him, I know that he sha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25. Jesus said un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that believeth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 26.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Believest thou this? 27. She saith unto him, Yea, Lord: I believe that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God, which should come into the world.(KJV)

베다니에 살면서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했던 마르다는 한번도 예수님께 칭찬을 들은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그녀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0장40절을 보면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분주하다'라는 헬라어 '페리스파오(περισπάω)'는 '페리(περι)'와 '스파오(σπάω)'가 결합된 단어이다. '페리'는 '주위에, 둘레에' 또는 '정신이 산만한' '미치게 하다, ~에 시달리다' 등의 뜻이 있고, '스파오'는 '칼을 빼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스파오'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성경에서 2군데에 쓰였다.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drew a sword)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막 14:4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drew out his sword) 자결하려 하거늘"(행 16:27).

마르다의 마음이 분주하다는 말을 직역하면 '주위에 칼을 빼서 휘두르다'라는 뜻이다. 이는, 마르다는 정신이 산만하여 온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면서 칼을 빼어 주위의 모든 것을 자기가 다 간섭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 항상 불평만 했고,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릴 수 없어서 예수님께 항상 꾸중만 들었다. 

그녀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있는 돌을 옮겨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며 또 예수님의 말씀을 가로막았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살 것이라고 하셨기에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명령을 하셨으나, 믿음이 없는 마르다는 그 말씀을 믿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앞세우며 예수님마저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마르다가 정말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면,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고 하셨을 때에 "정말이요? 감사합니다"라는 대답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압니다"라며 그러한 유대교의 지식 쯤은 자기도 알고있다는 듯이 교만하게 말했다. 

그녀는 나사로가 살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려버렸다.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것은 더이상 변론하고 싶지 않기에 말을 끝내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는 예수님의 명령 앞에서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한 그녀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칼자루를 휘둘러대는 마르다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책망하셨다. 이 말씀은 마르다의 믿음이 있어야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는 것이 아니다. 나사로가 소생되는 것은 이미 작정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믿음이 없으면 나사로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능력을 보더라도 장차 이루어질 부활을 영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육적인 눈으로 보는 것으로 끝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무리 기적을 보아도 기적으로 그칠 뿐, 영적인 복인 영생을 누리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 말씀대로 나사로가 살아나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하신 일을 고하였고, 그것을 들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물어보신다. 우리는 마르다처럼 알고있는 지식으로 믿는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정말 성령으로 거듭나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아직도 가족간에, 교인간에, 친구간에, 동료간에, 이웃간에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물고뜯고 있다면, 둘 중의 하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거나 둘 다 아닐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볼 때, 모든 사람이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하게 된다는 말씀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서로 낮은 자리에 내려가서 섬겨주는 사랑을 해야 한다. 마르다처럼 동생을 사랑할 줄 모르고,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동생을 망신을 주며 예수님까지 가르치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 되면 절대로 안된다. 

교회에는 마르다와 같이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있지만, 칼자루를 휘두르며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여자이고 예수님이 신랑이신 남자이시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여자로 태어나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한 몸이 되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한 연합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아직 연합이 되지 않았거나, 자기의 신랑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분과 아직 친밀한 관계가 없이 막연하게 신랑이라고 생각만 하고 있는 경우, 우리는 마르다처럼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수많은 이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자기가 컨트롤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자들이 많다. 그래서 아들 며느리 사이에 이간질을 시키며 주께서 짝지어주신 한 몸을 찢는데 열심인 여자들이 많이 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하는 짓이다. 마귀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를 이간질시켜 갈라놓으려고 오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지각이 없는 마귀의 아들들은 그러한 이간질에 너무나 잘 속는다. 그래서 자기의 몸이 찢어지는 것도 모르고 그들의 부모인 마귀의 그럴듯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간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성경에서 '여자'가 의미하는 것은 '교회'이다. 오늘날 이렇게 마귀의 종노릇하는 교회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계시록에서 교회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책망하고 계신 것이다. 

아내인 교회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신랑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몸소 죽으셨다. 그렇게해서 아내인 교회가 태어난 것이다. 아담이 죽어서 하와가 태어난 것처럼.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교회들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종교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교회의 간판을 걸기 위해서 "예수"라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종교 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은 마귀의 자녀가 되어 잘못된 복음을 전하면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 사이를 이간질하며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 지난 다음날 예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성전에 들어가서 채찍으로 동물들을 내쫓고 제사를 위하여 하던 모든 비즈니스맨들을 내쫓으신 일이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지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도 교회들마다 선교를 위한 명목으로 바자회를 하며 교회 안에서 돈이 오가고 있다. 열심히 교회 안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보면, 기도회에는 관심이 없다. 진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원하는 '복'에만 관심이 많다.

또한 교회는 성전이 아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돌로 지은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몸 성전을 건축하셨다. 그래서 성전이신 예수께서 거하시는 우리가 성전이 된 것이다. 따라서 성전인 우리는 쉬지말고 기도해야 한다. 즉 그분과 항상 함께해야 하며 세상의 근심 걱정과 더러운 것들은 모두 우리 안에서 추방해야 한다. 

우리도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실상은 칼을 휘두르며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있을 수도 있다. 영생의 말씀이며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리고 그분과 연합되지 않았다면 그럴 확률은 100%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일을 전무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예수님 발 밑에 앉아 열심히 주님의 말씀에 청종했던 마리아처럼 살아야 한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처럼 시체 썩는 냄새를 풍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마르다처럼 위아래도 없이 교만히 칼자루를 휘두르며 불만이 가득했던 우리들 그리고 나사로와 같이 죽어서 악취가 풍기는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변화시켜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지금도 중보하고 계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리자.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저희에게 영생의 복을 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저희를 위한 대속양으로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3) 지금까지 교회생활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으나, 그것이 마르다처럼 어느 곳에서든지 칼자루를 휘두르며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이 없는지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여 주옵소서

4) 제가 잘못 휘두른 칼에 다친 자들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비겁하게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지 말게 하시고 반드시 그들에게 전화를 하건 메세지를 보내건 찾아가 만나건 제가 휘두른 칼에 다친 자들의 상처가 잘 나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5) 성령충만하지 않아서 매사에 불평거리가 보이며, 열심히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마리아와 같은 자들을 매도하며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까지 그러한 악한 언행을 일삼으며 그것을 기도라고 생각하며 주님께 상달되지 못할 기도를 하므로 제 삶이 더욱 혼란 속에 빠졌던 것을 고백하오니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6) 마르다처럼 매순간 감사할 줄 모르며, 나사로처럼 죽은 냄새를 풍기는 저를 불쌍히 여기사 대신 죄값을 치루어주신 신랑되신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7) 마귀의 자녀였던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 삼아주셔서 어둠의 권세에서 빛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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