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저는 경기도 광주시 광주성결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완호 집사입니다. 목표를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삶의 굴곡이 심해서 평범한 분들과 비교해 보면 삶의 길이가 서너 배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저와 제 가족을 건져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표현이 부족하지만 서툴지만 끝까지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면허증의 갱신 기간이 되었다. 면허증을 갱신하려면 경찰서를 가야 하는데 전국에 지명 수배되어 있는 사람이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가기는 끔직스러웠다. 물론 수표는 어느 정도 회수 되어서 불구속이 되는 상태였고 나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집에 들어와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사 사건이 하나 남아 있어서 망설였지만 갱신을 안 하면 면허가 취소되니까 “나를 잡으려면 잡아보라” 는 배짱으로 면허시험장을 가서 갱신 신청을 했다. 

 그리고는 며칠 후에 면허증을 찾으러 오라고 해서 약속된 날자에 기분 좋게 찾으러 갔다. 담당자는 면허증을 보여주면서 잠간만 자기들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곧장 경찰서로 연행 되었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내가 그동안 회수한 수표의 은행 확인서 사본을 보여 주었더니 며칠 내에 수표를 두 세장만 더 회수하면 불구속 된다면서 보증인의 도장을 받고 그날 밤에 경찰서에서 풀려났다. 그 시간부터 지명수배는 완전히 풀렸다. 그러나 부도 수표 건은 그렇게 해결이 되었는데 또 다른 형사 사건이 미결로 남아있어서 조사가 시작 되었다. 경찰서에서 풀려나고 지명수배가 풀리면서 행동은 마음대로 자유스러웠지만 형사 사건은 계속해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경찰조사와 함께 당사자를 만나서 일부 지불하고 년 차 적으로 상환 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는데 담당 형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사건이 마무리 되어가니까 도장 가지고 경찰서를 한번만 더 방문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화 통화가 끝나기 전에 “당신은 교회에 나가니까 성탄절을 잘 보내고 그 후에 오라고 했다. 마무리가 된다는 말에 잘 처리 되는 줄 알고 성탄절 다음 날 도장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 날 내 앞에 내 놓은 서류는 사건의 해결 서류가 아니고 구속 영장이었다 자기도 구속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면서 영장이 발부 되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며칠만 고생 하다가 나오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영장은 집행 되었고 나는 경찰서 유치장에 구속 수감 되었다. 

다음날은 강동경찰서를 나와서 검찰지청의 수사를 받기 위해 성동지청의 지하실 감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 감방이라는 곳이 모두 바닥이 나무판으로 되었고 난방장치는 없다. 더욱 지청의 지하 감방은 위에 환기구가 있었는데 그 환기구가 밖에서 보면 지면과 같은 높이다. 그러니까 12월 27일 영하인 날씨의 바깥 기온이 그대로 감방안으로 내리쳤고 거기에 지하의 온도 까지 합쳐지니까 그 안에서는 엉덩이가 차가워서 도저히 바닥에 앉을 생각조차 못했다. 모두가 일어서서 서성대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한 곳에 점심이라고 식사가 배달되었는데 그 점심은 도시락이었고 아침에 경찰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투명 비닐 도시락에 보리밥과 단무지 몇 조각인데 누군가가 열어 보고서 얼음이 살짝 얼었다고 못 먹는다고 하였다. 그래도 먹고 싶었는지 다른 친구가 젓가락으로 밥을 떠보니까 완전히 한 덩어리로 따라 올라왔다. 결국은 그 친구는 뚜껑을 닫고 바닥에 놓고서 발로 툭 차버렸다.

수인번호 1525번, 수감방 2상 2호, 구치소에 수감 되면서 사복은 보관하고 죄수복을 입었다. 죄수복을 입으면서도 내가 죄인이 되어서 구치소에 있다는 실감을 못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입감 사진을 찍었다. 수인 번호를 흑판에 기록하고 그 흑판을 턱 밑에 대고 사진을 찍을 때는 내가 죄인이 되었고 수감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눈물이 핑 돌았고 지난 날 들의 후회가 다시 마음속에서 쏟아졌다.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고 밖의 세상이 그리웠다. 제일로 궁금한 것은 가족들이 잘 있는지 혹시 무슨 일 이라도 있는지 내가 직접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세상의 죄 속에서도 이토록 고통이 있는데 하나님을 모르고 죄 속에 갇혀 살다가 지옥에 가면 어떤 상황일까?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 안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회계의 기도 뿐 이었다.

내가 만난 수감자 중에는 밖에서 적응을 못하고 오히려 수감 생활이 적응이 되어서 죄짓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고 수감되는 것을 자기의 운명처럼 순순히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도 만나 보았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내가 만난 사람은 전과 18범에 살인범으로 하루 동안 함께 있으면서 대화를 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순박해 보였고 도저히 살인을 할 사람 같지 않았다. 여러 가지 대화중에 질문을 한번 했다. 그 살인 사건은 내가 들어오기 직전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 당신이 범행을 하기 전에 100% 완전범죄라고 생각하고 준비 했느냐? 아니면 만에 하나 잘못해서 발각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 했느냐? 했더니 “나중에 들킬 거라고 생각하면 못 허쥬” 하고는 “ 그 놈의 새끼가 우찌나 힘이 쎈지 내가 맞아 죽을 뻔 했슈!” 하면서 남의 이야기 하듯이 했다. 이미 죄인들 속에서 오래 생활 하니까 죄의 의식을 전혀 못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몇 만원짜리 지갑을 훔치다가 들어왔거나 살인으로 들어왔어도 이곳의 생활은 똑 같다 하는 그런 생각으로 생활 하는 사람들 같았다. 

그 방에서 가장 오래된 미결수는 대학생으로 5개월째 재판중인 시국사범 이라고만 알려주었고 다른 것은 일절 말이 없었으니 더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낮에도 책을 보거나 글을 쓰면서 우리들 하고는 전혀 대화가 없었다.

구속이 되면서 아내와 지인의 협조로 사건 당사자와 아무 조건 없이 합의가 되었다. 12월 26일에 영장이 집행되고 31일에 풀려나면서 5박 6일간의 구치소 생활을 경험했다.

1952년생, 충남 서산 출생,서울공업고등학교 졸업, 유원건설 자재부 근무, 천호텍스피아 수출업무 담당, (현) 상업용 건물 시설관리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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