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復活)은 resurrection이다. 그런데 영문으로 부활절은 Easter이다. 부활절에는 Easter Bunny가 있다. 부활절에 달걀을 단순하게 부활의 의미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Easter라는 부활절 명칭을 사용하는 서양 기독교에 대해서 의혹이 발생했다. 그런데 ‘토끼’가 등장해서 더 당황했다. 유럽 기독교는 부활절에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가? 그 교회의 모습은 한국 교회까지 들어왔다.

인류는 동서양 공통의식이 있다. 나무, 태양, 달, 여신(女神) 숭배 등이 대표적인 공통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의 공통점은 풍요(권세)와 관련한다. 인류는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생존과 권력의지(=노예의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 ‘토끼’도 인류 공통의식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계수나무에 옥토끼 상이 있고, 서양에도 토끼가 있었다.

우리나라 계수나무 토끼는 달과 관련한다. 달신 숭배는 풍요와 관련한다. 우리나라 토끼와 계수나무는 신비한 영약으로 건강을 기원하고, 아마도 서양의 토끼와 달걀도 건강을 의식할 확률이 있다. 부활절 달걀에서는 병아리 탄생을 기원하지는 않는다. 부활을 기념한다는 단순한 유익으로 계란을 먹고 있다. ‘날계란’을 하나씩 넣어 유희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토끼는 다산의 상징이다. 가장 번식력이 강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토끼는 다산의 신인 Oestre의 상징이라고도 한다.

부활절에 계란을 돌리는 것은 기독교의 한 모양을 갖고 있다. 부활절에 계란을 돌리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주변인들이 있을 정도이다. 부활절 계란이 전도의 유익한 접촉점이 될 수 있을지 아직은 판단이 쉽지 않다. 이런 주변인들의 바람 때문에 부활절 계란을 돌리고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서양에서 도입된 부활절 계란에 대한 정보를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

부활절은 Easter와 관계없는 것으로 세워야 한다. 부활절과 토끼(Easter Bunny)가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Easter를 사용한다면 ‘토끼’는 함께 있을 것이다. Easter는 바벨론의 신이었던 Ishtar(이쉬타르, 아세라의 변형),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봄의 여신 Eostre(에오스트레) 등의 발음과 연결된다. 다양한 설(說) 중 하나이지만 배제할 수 없는 견해이다. Easter는 여신과 관련된 것이다. 또한 성경에 없는 구레네 시몬이 계란 장사였다는 억측을 도입하지 말자.

필자는 “부활절 계란을 금지해야 한다”라는 강제금지규정을 선포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18세기 청교도주의자들은 성탄절을 금지하는 규정을 선포했다. 그러나 성탄절은 세속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어 버렸다. 금지규정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교만이고 사태를 쉽게 보는 것이다. 복음의 강력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 덮음으로 생명력이 소생되는 것이다. 악도 느끼지 못한 상태로 덮어버리는데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급감하는데도 혼인을 적극 장려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급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 성향이고, 신정체계인 이슬람 진영은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슬람의 포교정책은 다산을 통한 자연포교라고 인증될 정도이다. 성경적 다산(多産)과 일반적 다산(多産)은 방향이 전혀 다르다. 일반적 다산은 생의 안정과 번성에 있고, 성경적 다산은 하나님의 질서에 순복하며 가족이 함께 영광 돌리기 위한 것이다.

부활절 계란 금지, 동성애 금지 등을 외칠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혼인시켜 많은 자녀를 낳도록 격려하고 배려해야 한다. 부활절에 계란이 다산을 기원하는 것인데, 계란의 효능이 아닌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적 훈련은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상태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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