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는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유일성을 부정,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강조

누가복음 20장에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형사취수혼(兄死娶嫂婚) 제도 하에서 일곱 형제와 혼인한 여자는 부활 때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질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형사취수혼이란 형이 결혼하여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대를 잇게 하는 제도입니다. 형사취수혼을 부활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납득이 안 되는 궁금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만약 사두개인들이 이 질문을 하지 않았고 부활에 대한 사두개인들의 그 오해에 대해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도 여전히 그들과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 설명해 주셨기 때문에 형사취수혼 제도 아래서 일곱 형제와 결혼한 여자가 부활 때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일곱 형제와 결혼한 여자가 부활 때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가 정말 궁금하여 질문한 것이 아니고 부활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꼬투리를 잡으려고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들이 나쁜 의도로 질문 했지만 부활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한 오해를 하지 않도록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의하면 천국에는 결혼, 가정, 성 등이 현재와 다른 상태와 수준으로 변화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에는 다시 죽는 일이 없고 천사와 같으며 모두가 부활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생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부활생명은 여전히 우리가 다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문제입니다.

부활생명이 아니라 생물학적 생명도 아직까지 인간이 다 설명하지 못하는 신비입니다. 과학은 생물체의 생명 현상을 설명할 뿐입니다. 과학적 분석에 의하면 모든 생물은 적절한 구조로 잘 짜여 있습니다. 예컨대 곤충이 알에서부터 애벌레로 변하고 애벌레에서 어른벌레가 되는 일련의 발전 과정이 매우 잘 조직 되어 있어서 시간에 따라 특징적인 변화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체의 활동현상에 대한 설명이지 생명 자체에 대한 설명은 아닙니다. 생물체의 물질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대사란 외부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한 여러 가지 생화학 반응을 통해서 에너지를 이용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생존에 필요한 조건이 형성됩니다. 생명체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은 열역학의 제2의 법칙인 엔트로피 현상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엔트로피의 최대치는 열에너지가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리학자들은 엔트로피 최대치에 도달하는 때를 우주가 종말을 맞는 때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이론의 토대에서 미래학자들이나 환경론자들은 우주의 종말을 예고합니다. 많은 생명체들이 엔트로피 현상에 의해 멸종한다는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생명체들 중에는 열역학의 제2의 법칙에 역행하여 살아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생명체들 중 인간은 가장 강력한 반 엔트로피를 만들어 생존을 계속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생명체들의 기능의 연장선에서 가이아 이론은 우주 자체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전제하기 때문에 우주 스스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억제한다고 주장합니다. 엔트로피 현상이나 가이아 이론은 둘 다 나름대로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두 이론이 설명하는 생명 현상이 상당부분 일리가 있지만 역시 생명 자체에 대한 설명은 아닙니다.

영적 생명은 생물학적 생명보다 더 신비롭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가르치실 때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논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명료하게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여러 번에 걸쳐 예를 들어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물리적으로나 또는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설명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겨자씨로 비유된 하나님 나라에서,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나 새들이 깃들일 만큼 자란 나무로 설명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아주 작은 씨로 설명하기도 하고, 싹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무성하게 자라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나라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현상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나라 현상으로만 설명하면 많은 오해를 일으키고 또한 하나님 나라를 왜곡하게 되기도 합니다. 가시적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것이라든지 물리적 규모나 업적 같은 것을 하나님 나라 능력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씨도 아니고 싹도 아니고 새들이 깃들일 만큼 무성하게 자란 나무도 아닙니다. 씨에서 싹이 나게 하는 능력, 잎이 나고 가지가 생기게 하는 능력, 무성하게 자라게 하는 능력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들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교회는 목회적 성과나 전도의 열매나 선교의 업적이나 선행의 규모 등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몇몇 보편 가치를 존중하는 듯한 주장이나 그런 것을 표방하는 집단이나 단체의 물리적 규모나 업적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WCC 라고 할 수 있습니다. WCC가 강조하는 선교는 전통 교회가 이야기 하는 선교와 그 개념이 아주 다릅니다. 전통 교회가 하는 선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믿게 하고 우상과 이방종교에 빠진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선교’는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활동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활동이 모든 생명체에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사가 하는 일이란 유일한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증언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 저들의 논리에 말려들게 됩니다.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셨고, 생명을 부여하셨을 뿐 아니라 그 생명들을 보존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에 난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 공중을 나는 새 한 마리의 생명을 어떤 자연법칙이나 원리에 맡겨두지 않으시고 일일이 돌보시고 보전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차별이 없이 그들의 생물학적 생명을 돌보시고 보존하십니다. 심지어 머리털 하나까지 카운트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의 토대에서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활동이 이미 모든 생명체들에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생명이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존하심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의 생명까지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활동을 보장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동일한 것으로 확대 설명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WCC에 참여하는 이들 중 대부분은 생명에 대한 그와 같은 이해에서 부활생명도 설명합니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활동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복음, 구원, 생명의 개념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설명에 의하면 모든 종교 뿐 아니라, 종교가 아니더라도 인간 삶의 여러 역역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WCC를 반대하는 교회들이 WCC를 종교다원주의라고 하면 자기들은 종교다원주의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WCC는 단순히 종교다원주의가 아닙니다. 종교다원주의보다 훨씬 더 성경에서 멀리를 나가버린 것이 WCC입니다. 그러면서 WCC를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전통교회를, 세속적 용어를 빌리면 시대에 뒤떨어진 무식한 보수꼴통이라는 듯 무시하면서 자기들은 성숙하고 고상한 것처럼 교만하게 처신합니다. 바울에 의하면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된 자들입니다.

덴마크의 기독교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그가 쓴 철학적 단편에서 ‘스승으로서의 소크라테스와 스승으로서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나 하나님은 둘 다 스승인데, 교육에 있어서 소크라테는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일깨우는 것을 교육이라고 하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없는 지식을 인간에게 넣어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서양 철학과 교육이 성경과 다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희랍철학이나 르네상스나 계몽주의나 자연과학은 다 같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 연장선상에 칼 막스의 공산주의가 있고 진보주의와 사회과학이 있습니다.

WCC의 주장과 논리는 그 형식에 있어서 진보주의자들처럼 사회과학에 의존해 있습니다. 작년 한국 부산에서 열렸던 WCC대회에 여러 보수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나 김삼환 목사님의 그 동안의 목회와 메시지는 도무지 WCC와 함께 할 수 없는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WCC를 지지하는 그분들의 주장을 주의 깊게 들어보았지만 그 주장은 전통 교리나 신학의 토대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경의 가르침은 더구나 아니었습니다. WCC의 실체를 모르고 그럴 수도 있고 알면서도 그럴 수 있지만 어떤 경우든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주님으로서의 유일성을 부정하면서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강조하여 분별력이 부족한 교회들을 속이고, 남북통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일반국민들에게까지 지지를 받았지만 그들의 주장과 논리는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심지어 북한의 주장과 같다는 사실을 많은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 나아가서는 국민 모두가 바른 성경의 가르침과 이념에 있어서 너무 나이브하게 부화뇌동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비롯하여 정부나 사회의 어떤 집단이 좋은 일을 한다고 무조건 지지하거나 협력하면 안 됩니다. 사탄의 전략은 천사처럼 처신하고 보편 가치와 좋은 일을 내세우지만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해치고 멸망시키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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