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육/문화 시문학
【김종욱 시 산책】 푸른 갈기의 야수와 미녀

 

 

푸른 갈기의 야수와 미녀

 

                              김종욱

 

한 줄기 빛이

마지막 남은 장미 꽃잎 위를 흐르고 있어요

시커멓고 커다란 고딕 양식의 성에 새벽이 오고

닭이 세 번 울면

주조 유리로 지어진 연꽃 모양의 사원이

하늘에 드리운 구름처럼 나타날 거예요

 

기다릴 수 있나요

차갑거나 뜨겁거나

무서워하거나 사랑하거나

 

붉은 장미도

푸른 수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어요

호기심을 먹고 자라나죠

그래도 마지막 꽃봉오리는 열지 마세요

당신을 헤치진 않을 거니까

 

곧 방울 소리 울리는 비가 내릴 거예요

올리브기름이 든 병을 들고 있는 세라핌도

빛과 함께 내려오고 있어요

그 날개의 바람과 빛과 비는

면사포 같은 흰 물결 되어 흐르고 있어요

사실 정말로 그렇지는 않아요

아마도 그렇게는 안 되겠죠

 

그 밝음이 다하기 전의 부드러운 밤에

그림자에서 빛이 파도처럼 부서지고

감미로운 검은 포도송이가 반짝거릴 때

수많은 유성의 세례로 얼굴을 씻고

나의 진실을 보여줄게요

구름과 비슷한 표정으로 변화하는 하늘이

반짝이는 푸른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지금 사랑의 불길은 푸른 수정 안에서나

타오르며 빛나고 있을 뿐이에요

 

새벽녘의 꿈처럼 생생한 향초와 몰약

안색이 달라지는 빛살은 금빛 가면

썩어지는 말뚝에 매인 억압

나는 괴물이 아니에요

지옥의 문은 나를 통하지만

빛에 부딪히며 살아있어요

거짓, 거짓말이에요

나도 나의 실체를 외면하고 싶은 거예요

 

한껏 오므린 꽃봉오리여

내 얼굴을 밝은 눈으로 비추지 말아요

오직 몽롱한 눈빛으로

그대의 앞섶을 풀어헤치고 나를

운율과 문체의 음료로 흐르게 하여 주오

우리는 거짓인 동시에 진실이기 때문에

그 애매모호함 때문에

이 애매모호함을 위하여

 

김종욱  elim12@naver.com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종욱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