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계정 박사(보쿰대학교 기독교윤리학 박사, 평택나눔교회 담임목사)

2018년 부활주일에 미국에 있는 한 목사가 ‘양심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했고, 이것이 신문지면에 실렸다(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132). 보통 양심선언이란 그동안 여러 이유로 감추어졌던 어떤 사실을 폭로하는 성격이 강하다. 대체 부활절에 김용남 목사는 무엇을 폭로한 것인가?

핵심내용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이른바 ‘학사비리’에 관련된 것이기에 충격은 매우 컸다. 게다가 이 문제는 지금 총신대 사태라는 폭풍의 한 축이다. 물론 이 양심선언은 아직 ‘일방적 주장’에 가깝다. 사실관계는 더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사실로 인정된다면 그것이 미칠 윤리적, 신학적, 법적 파장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먼저 주장의 핵심요지를 따져보자.

1. 주장에 의하면, 2001년 10월 어느 날 총신대의 김 교수가 김 목사에게 “임시교수 자격으로 입학시험 감독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시험 장소인 남가주사랑의교회 당회장실에 가면 본인 앞으로 5시에 팩스로 시험지를 보낼 거다. 그러면 시험을 보게 한 후 그 답안지를 다음날인 월요일 우편으로 서울로 보내 달라.”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의 일이지만 상당히 구체적인 진술이 아닐 수 없다. 또 여러 정황을 종합했을 때, 2001년 10월 21일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오 목사는 입학시험을 치렀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어떻게 치렀느냐이다.

2. 김 목사의 양심선언에 의하면 예정된 입학시험은 약속된 현지시간 오후5시(한국 오전 9시)에 치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5시 30분쯤 되어서 오정현 목사가 들어왔고, 그 후에 박성규 목사(당시 남가주사랑의교회 수석부목사)가 문제지를 가지고 들어와서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두 가지 큰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모든 시험은 같은 시간에 치러져야 한다는 상식과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오전10시에 치러지는 입사시험에 지원자 모두가 정각에 문제지를 받고 성실히 푸는데, 특정인만 따로 11시에 시험을 본다면 이는 당연히 공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시험문제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험생들이 약속된 시간에 문제지를 받고 시험을 보는 상황에서 오 목사만 30분 후에 시험지를 받는 다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둘째, 시험지를 시험 감독관이 아닌 다른 사람이 관리했다는 것은 명백한 부정시험이다. 시험지 사전 유출에 해당한다. 게다가 오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의 부목사라면 이는 상하관계에 의한 ‘미필적 부정행위’에 해당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3. 김 목사는 주장한다. “3시간의 시험 중에서 매 교시가 끝날 때마다 답안지를 시험 감독관인 본인에게 주지 않고 박성규 목사가 들고 나갔습니다. 당시 박성규 목사는 시험 도중에도 서너 번 당회장실에 들어왔다 나갔습니다.” 시험지 유출이 아닌 답안지 유출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 대체 시험 감독관은 왜 세운 것인가?

당시의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김 목사는 이렇게 술회한다. “미국에서는 목사가 시험을 보는데 부정행위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당연히 믿었기 때문에 의심을 하거나 별 제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이렇게 믿고 싶다. 당시 시험에 어떤 부정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 다음 이야기는 우리의 이런 순진한 바람을 여지없이 짓밟는다.

4. 입학시험 후에 세 사람은 같이 식사를 했다. 그때 김 목사는 오 목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남가주사랑의교회 당회장실에서 총신대 신대원 편입시험 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이야기하지 말아 달아 달라”. 김 목사는 오 목사의 답안지 세 장이 담긴 노란 봉투를 받았고, 그것을 집에 가져가서 다음날 UPS를 통해서 총신대학교로 발송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첫째, 오 목사는 왜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에서 총신대 입학시험을 치룬 것에 대해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을 김 목사에게 했을까? 물론 이것은 한쪽의 일방적 주장으로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정황하고도 잘 맞는다.

둘째, 시험 답안지를 감독관이 아닌 교회 부 목사에게 받았다는 것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다른 장소에서 치러지는 시험이라면 더 엄격한 관리와 통제가 필요한 것이 상식이다. 김 목사가 받았다는 노란 봉투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었던 것일까? 역시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밖에 없다.

5. 이야기는 이제 2018년 3월 26로 향한다. 김 교수가 전화를 해서 “당시에 팩스로 답안지를 보내지 않았느냐”고 두세 번이나 물었고, 김 목사는 “분명하게 약속한대로 UPS로 보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남가주사랑의교회가 따로 답안지를 팩스로 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김 목사의 이 의구심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문제는 총신대의 김 교수가 17년이 지난 2018년에 왜 김 목사에게 전화를 해 당시에 팩스로 답안지를 보내지 않았냐고 한 번도 아니고 두 세 번이나 물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시 학교측은 오 목사의 답안지를 팩스로 받았다고, 지금 그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어떤 절박한 상황을 암시한다. 시험 감독관의 서명이 없는 답안지가 과연 정직한 답안지일까?

6. 김 목사의 양심선언을 통해 재구성한 사건은 ‘설마 목사인데 부정행위가 있었겠어’라는 우리의 주관적 바람을 넘어선다. 그렇게 치러진 시험이 과연 공정하고 정당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김 목사의 양심선언이 사실이라면 오 목사의 시험은 그 자체로 부정이다. 비록 본인이 아무런 양심에 거리끼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도, 목적과 과정에서 정당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17년 전 일어났던 이 사건은 물론 법의 판단은 넘어선다. 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공소시효를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아니 도덕적 차원이 법적 차원보다 더 근본적이라는 것이 개혁주의 윤리의 출발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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