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저는 경기도 광주시 광주성결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완호 집사입니다. 목표를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삶의 굴곡이 심해서 평범한 분들과 비교해 보면 삶의 길이가 서너 배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저와 제 가족을 건져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표현이 부족하지만 서툴지만 끝까지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유교와 불교를 믿는 부모님께서는 6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 부부가 교회에 나간다고 할 때에 쉽게 허락을 해주셨고 열심히 믿으라고 응원까지 해 주셨다. 그 후로도 부모님께서는 우리부부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이해와 배려를 해 주셨다. 또 한 아내는 그 이전에도 시아버지가 자상하며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면서 진심으로 존경 했지만 신앙생활을 허락한 이후에는 더욱더 아버지와 수시로 대화하기를 즐겨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사업을 시작 하는 것은 반대를 했다. 사업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끈임없이 걱정을 했다. 결국은 사업이 부도가 나고 나는 건설 현장의 일용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도 아내는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일 등 특별한 날은세 아이를 깨끗하게 단장시켜서 부모님을 찾아갔다. 부도 후에 두 달도 안 된 어버이날에 아이들과 준비한 선물을 들고 찾아갔더니 아버지의 첫 말씀이 네가 지금 무슨 정신이 있고 형편이 된다고 부모를 찾아 왔느냐고 하면서 고맙다는 말씀을 수 없이 하시면서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그 때 아내와 아이들은 지하 셋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여름이면 하수도가 넘쳐서 방에까지 오물이 흘러 들어왔고 중고생 딸들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올 때면 가게 옆의 쪽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에 친구들이 쳐다보고 있는지 주위를 살펴보았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세 아이를 반듯하고 명랑하게 키우는 막내며느리에게 아버지는 감동을 했고 무한정 사랑을 주셨다. 그리고는 부모로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서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 때마다 아내는 말씀 드렸다. “아버님 돈이 없어도 되는 저의 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 소원을 들어 주시면 돈을 주시는 것보다 더 감사 합니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말씀 하셨다. 네 소원이라면 다 들어 주겠다. 그래서 아내는 아버지께 교회를 한번만 이라도 나가서 구원받고 천국에 가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80이 넘었고 걷는 것이 불편하니까 외출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자식들은 모여서 장지와 장례절차까지 의논을 했다.  우리의 기도제목 첫째가 부모님이 구원 받고 천국 가시는 것 이었는데 우리 부부는 마음이 급했다.  아내는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서 조심스럽게 아버지가 병상에서 세례 받는 것을 권했다.  그동안 아내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섬기었고 아버지도 막내며느리를 사랑 했기에 그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즉시 허락을 했다. 드디어 병상 세례가 이루어지는 날에 부목사님은 입원한 병상까지 찾아와서 아버지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나는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다만 세례식의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것은 지금도 후회가 된다. 

세례를 받은 그 다음해 봄에 아버지는 천국에 가셨고 장례식이 진행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버지의 장례식 절차를 의논 할 때부터 교회 신자로서 제사상 앞에 절을 하지 않고 기도만 하겠다고 미리 선언을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오면 예배를 드리겠다고 했다.  남자 형제들은 유교이고 누이와 여동생은 불교신자인데 우리 부부의 요구는 그 분들께는 불편한 요구 사항 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장례식에서 절을 하면 평생 제사 때마다 절을 해야 된다고 나에게 설명하면서 꼭 이루어지기를 소원했다. 나의 형제 남매들 중에는 불평의 소리도 있었지만 그래도 불편한 마음들을 속으로 감추면서 허락을 해 주었다.

교회에서 오면 예배를 드리고 제사 때가 되면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냈다. 혹시 예배와 제사가 겹치면 집안의 어른들이 교회의 예배를 먼저 드리도록 양보를 해 주었다.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 되었고 교회에서는 장지까지 동행해서 하관예배까지 드렸다.  교회예배와 유교식이 함께 진행 되어도 서로 어색하거나 불편함이 없이 화목하게 잘 진행되었다. 

우리 부부는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했다.  집안 어른들과 형제 남매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했고 교회의 예배를 직접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는데 식구 중에는 목사님의 말씀이 좋았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신앙의 가정이라는 것을 일 가 친척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었고 혹시 그 분 들게 실망이 안 되도록 신앙생활을 잘하자고 다짐을 했다.  

지금도 성찬식을 할 때면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형제 남매와 그의 자녀들 가정 모두가 구원받도록 기도 하고 있다.  

1952년생, 충남 서산 출생,서울공업고등학교 졸업, 유원건설 자재부 근무, 천호텍스피아 수출업무 담당, (현) 상업용 건물 시설관리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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