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42-47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역사 속에 임재하시는 초자연적인 방언의 역사를 통해 베드로가 설교를 하게 된 배경을 다루었습니다. 그때에 오순절을 지키러 전 세계로부터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는데, 약 120명의 갈릴리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방언을 말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외치게 됩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11).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행 2:12)

그리고 그들 중에는 신앙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령님으로 인한 거룩한 방언의 현상에 대해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행 2:13).

이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설교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지금이 오전 9시인데 이들 120명의 갈릴리 사람들이 어떻게 술을 먹고 취하겠느냐며 이들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곧바로 이들 120명의 방언 현상은 다름 아닌 구약의 요엘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예언이 성취된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곧바로 성령 강림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나사렛 예수님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언급한 후, 나사렛 예수님의 부활은 다름 아닌 다윗의 왕권을 영원히 잇기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알려주면서 예수님의 부활 역시 다윗의 예언의 성취인 사실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확증한 바는 “너희가 죽인 나사렛 예수님은 사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제 부활하심으로 완성된 영원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와 주가 되셨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그러면서 베드로는 정확하게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 지적합니다. 그 죄는 23절에 있습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도다”(행 2:23).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귀하게 접대하지 못하고 멸시한 점, 나아가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악행을 한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절망에 빠집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이처럼 성령의 강림 사건으로 인하여 “이 어찌 된 일이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군중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은 “회개”였습니다.
“회개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회개는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었던 삶을 이제 하나님 나라 천국과 이 땅의 모든 세계의 주이신 예수님께 의탁하고 그분을 위해 살기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회개하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즉, 이제 우리의 왕은 나사렛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다윗의 고백처럼 ‘나의 주’이십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도 우리의 주이시지만, 나사렛 예수님 역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셨으니 우리의 영원한 주이십니다.

심지어 우리의 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를 실제로 다스리고 인도하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셨으니, 우리는 얼마든지 성령님을 따라 행함으로 예수님의 주 되심을 나의 개인의 삶에서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이 썩을 세상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아끼지 않으신 나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마음을 정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에 바울은 회개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바른 목표와 동기로 살지 못한 과거의 삶에 대해 죄로 여기고 애통하는 것이며, 이제 나의 생각을 성경에 따라 바꾸어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회개의 삶은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고, 또한 삶의 모든 가치관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썩어질 이 세상이 아니라 썩지 않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회개하라고 외친 후에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행 2:38)고 말합니다. 그리하면 죄 사함과 함께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원어를 보면 “이름으로”라고 할 때 헬라어 전치사 ‘엔’을 사용하지 않고 ‘에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일치하여’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직분을 아는 가운데 예수님과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는 세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이제 성령께서 임하셨으니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구속 사역을 의지하여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주 예수님과 하나 되기로 언약하고 성령을 통해 연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의 의미와 같아집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도다”(요 1:13). 

그리고 이러한 영접은 고백이며 언약이기에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세례 의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세상과 내 욕심과 마귀에 따라 살며 썩어질 세상을 구하던 삶에서 돌아서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겠다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게 공언하며 언약하는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13)

이처럼 베드로가 제시한 것처럼,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우리는 죄 사함과 함께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즉, 회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고 진실하게 믿고 따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또한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참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그의 회개와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세례 예식을 통해 진실하게 공포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죄 사함과 함께 성령으로 인하여 거듭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계속 말합니다.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행 2:38-40)

그렇게 해서 그 날 회개하고 구원 받은 자가 3천이나 되었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이는 그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구원 받기로 작정된 자가 3천이나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5장을 보면, 매우 비슷한 상황 속에서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그러나 멸망 받을 자들의 반응은 상이했습니다. 그 때에도 베드로와 사도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을 근거로 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하더라.](행 5:30-33)

베드로의 동일한 설교를 듣고도 이들은 회개는커녕 도리어 베드로와 사도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분은 또한 성령이라고 알려줍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행 5:32). 

즉,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와 동시에 성령께서도 복음을 전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는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철저하게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복음 전하는 자는 성령님과 함께 복음을 증언하는 자가 됩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마음을 흔드시는 택한 자들이 회개하고 구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나사렛 예수님께서는 주와 그리스도가 되셔서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공식적으로 이 땅에 임하신 이후로 지금까지 늘 그리스도의 백성과 함께 하시며 역사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실수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마치 예수님의 탄생처럼, 또한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 사건처럼, 역사 속에서 일회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강림 사건이 또 발생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 또 다시 탄생하기를, 또는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 또 다시 부활하시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순절 계통의 무지한 사람들 중에는 사도행전 2장 사건이 지금도 또 발생할 것처럼 생각하고 함께 모여 기도하는 사례들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지극한 어리석음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성령께서 임하신 상태로서 성령님의 은사가 때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풍성하게 주어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신 이후 시대에 사는 우리는 처음 성령께서 이 땅에 역사적으로 불의 혀 같이, 그리고 강한 바람 소리와 같이 임하신 후, 이제 어떤 일을 하시며,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님에 대해 어떤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 성경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세례를 받은 자에게는 죄사함과 함께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구원을 받은 자는 그 다음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

우리는 본문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또 다른 보혜사 곧 성령님에 관해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6-18)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진리의 영이시기에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몸으로는 우리와 떨어져 계시지만 영으로는 성령에 의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성령님을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말씀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 성령님이 지금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5-26). 

또한 성령님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말과 삶과 고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26-27)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즉,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함이 가장 무서운 죄요, 또한 의로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이 세상은 불의하며, 반면에 의로우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에 앉으셔서 영원한 주가 되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며, 이에 원수 마귀는 십자가에서 이미 예수님께 패배하여 심판 받았음을 세상에 알려주시며 책망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해서는 성령께서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15).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지에 대해서는 성경 전체에 걸쳐 방대한 양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성령의 사역을 다 다룰 수는 없고 부분적으로 몇 가지만 계속 정리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장과 2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7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역사하셔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을 알려줍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이 말씀을 문맥에서 볼 때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지혜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면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면 거룩한 능력이 복음을 통해 전파되고 또한 신자의 삶에 역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성령을 받은 상태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에 의해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고 나아가 성령의 능력에 의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장 2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세상이 자기의 지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가 전하는 미련해 보이는 복음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써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가 되시지만 그 진리대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되려면 성령의 조명하심과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만일 마음을 어린아이같이 겸손하게 하고 복음을 받는다면, 그 복음은 얼마든지 그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생명을 받게 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복음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습니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0-13)

이처럼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그 누구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들을 주십니다. 하늘의 거룩한 능력을 주시고, 복음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더욱 깊은 교제 가운데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며 순종하고자 부활의 능력을 얻고 거룩함을 이루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온전하여지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럴 경우 우리 하나님 역시 우리로 인하여 큰 만족과 기쁨을 누리실 것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주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4-16)

이처럼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은 신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설교와 함께 예루살렘에서는 마침내 나사렛 예수님의 첫 번째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마음에는 성령께서 임재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역사 속에서 태어나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은 자들의 모임, 곧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42절을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른 봉사, 참된 교제, 참된 선교와 전도는 바른 가르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복음을 모르는 채 그저 인간의 열심과 재주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섬길 수 있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경우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책망하고 나무라는 마르다가 되고야 말 것입니다. 또는 참된 지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거듭나기 이전의 바울처럼 오히려 복음을 대적하는 열심을 나타내기 십상입니다.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그러므로 봉사보다, 선교보다, 친교보다 가장 앞선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배워 우리의 모든 마음의 동기가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성령을 따라 순종하고 봉사하고 선교하고 친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 

바울 서신을 죽 읽어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한 한 가지를 발견하는데 항상 교리를 가르친 후에야 봉사와 교제와 친교와 선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바른 교훈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는 자기 생각에 따라 친교하고 제 멋대로 봉사하고 선교하면서 주의 거룩한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교회 공동체는 복음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 그 다음 무엇을 합니까? 둘째는, 서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제는 ‘코이노니아’입니다. 이 원어의 뜻은 같은 근원을 나누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코이노니아’는 친교, 교체, 사귐, 나눔, 참여, 하나됨 등… 수많은 번역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교제, 곧 코이노니아는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주의 백성들이 서로를 깊게 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 1:3-4). 

우리는 소드 및 여러 작은 모임 등을 통해 자신의 영적인 실패와 성공 등을 나누면서 복음의 능력으로 인한 풍성함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주를 높일 때, 그러면서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것을, 그것이 물질이든 재능이든 영적인 것이든 서로 한 군데 놓고 함께 나눌 때, 그것이 바로 42절이 말하는 “서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 예수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됨을 말하는 것이며, 성령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천국의 하나됨을 이 땅에서 미리 누리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는, 서로 떡을 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찬 및 애찬을 뜻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것임을 단 한시라도 잊지 않고 함께 모여 주 예수님을 기리고 찬양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찬양하며 기뻐하며 성찬을 떼고, 서로 음식을 나누는 것이 성령을 선물로 받은 교회가 가지는 시간들입니다.  

넷째는,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거룩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사정을 주께 아뢰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뜻을 이루는 도구 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는 것이 오로지 기도에 힘쓴다는 뜻입니다. 

복음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아픈 자를 위해 기도하고,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어둠 속에서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자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즉,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통을 놓치지 않는 것이요, 성령의 충만함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째는, 44절을 보면, 교회 공동체는 서로의 풍성함을 나누어 부족한 자가 없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교회에 헌물이 바쳐지면 봉헌을 통해 그 헌물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 예물이 됩니다. 주님의 거룩한 이 예물은 무엇보다 먼저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을 위해 주의 이름으로 귀하게 쓰여야 합니다. 이때 교회 공동체 내에서는 가난한 자는 물질 공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마음이 힘든 자는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지식이 부족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급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사랑을 위해,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주의 거룩한 예물이 쓰일 때 믿음으로 주께 헌상한 지체들의 예물이 영원한 값진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46절을 보니, 세상은 악하기 때문에 죄 사함 및 성령의 선물을 받은 우리는 더욱 자주 모여서 주의 종을 통해 성경을 배우고, 가정에서도 주께 찬양하며 영광 돌리면서 늘 기쁨과 정직함과 선한 양심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우리의 모든 삶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를 닮아가면 가족으로부터 시작하여 주변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찬미하게 됩니다. 

43절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 때문에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말과 행실에서 하나님의 향기가 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고, 저 깊은 마음 속에서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물론 어둠에 속한 자는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서로 힘을 모아 대적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첫 설교 때 그 설교를 들은 자들처럼 주께서 택한 자라면 우리의 삶의 변화와 분위기를 대하게 되면서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기회를 놓치지 말고 진실하게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성령 강림 사건과 함께 교회 역사 가운데 첫 설교를 하여 삼천 명을 회개하게 하는데 쓰임 받은 베드로의 권고를 우리는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5-16) 

요약하면, 우리는 성령을 선물로 받은 이후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이 되어 온 세상 주변에 거룩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 및 부패한 심령들은 도망치듯 멀어질 수 밖에 없고, 구원 받게 될 자들은 여러분에게 가까이 다가서게 되면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는 교회”입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을 선물로 받으신 구원 받은 백성들이니 쉬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죄를 이겨 나아가면서 그리스도를 닮는 놀라운 변화를 나타내기 바랍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의 성도 간에 서로 나누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따스한 관심과 기도, 그리고 바른 교훈으로 서로 격려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예배당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또한 교우들을 불러 함께 떡을 떼며 주 하나님과 예수님을 기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나 어디서나 항상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늘 찬양하면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주변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신기한 경외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에 대한 밝고 아름다운 소문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분명하게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친히 세우시는 교회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는 것”이지, 그냥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행전 2장 41절도,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하여 ‘신도’를 강조하였습니다. 

만일 사람은 늘지만 구원 받은 사람이 느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교회는 주 하나님께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도리어 동창회나 극장처럼 사람들이 몰려왔다 떠나는 그러한 종교 현상만 보일 뿐입니다. 이번 이재록 이단 사이비의 교회는 13만명이라고 하던데, 그 무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교회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구원 받은 사람”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 받은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 그 이후 쉬지 않고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 성령의 가르치심과 거룩한 능력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즉, 구원 받은 사람은 성령에 의해 거듭난 사람이며, 그리스도께 참으로 속한 자로서 이제 그의 삶은 복음을 듣고 배움으로써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 가운데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날 자들인데, 그러한 구원 받는 사람을 주께서 교회에 날마다 더하여 교회가 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는 이제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에 따라 생명을 얻은 자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배우게 되면서 성령의 능력에 의해 거룩한 능력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워 깨달아 더욱 영적으로 깊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는 교회입니다. 어떤 때는 한 두 사람, 어떤 때는 열 사람, 어떤 때는 한 사람, 어떤 때는 수십 명이 교회에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해마다 더하는 교회가 바로 주의 성령께서 복음과 함께 역사하시는 교회인 것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가능합니까? 주 하나님께서 친히 그 교회에 영생을 더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7). 

주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의 간절하고 충성스런 복음 사역을 통해 수많은 구원 받는 자들을 더해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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