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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시 산책】 오수

오수

 

                        김종욱

 

검은 물속에 잠겨가는 달

 

귀를 열면 귀에서 검은 꽃이 피고

눈을 열면 눈에서 검은 꽃이 핀다

오로지 닫힌 촉각으로

검은 꽃잎의 그림자를 더듬고 있다

 

말을 걸어오는 요정과 악령과 천사들

스스로 변화되지 않으면

온전한 기억은 불가능하군요

어둠 속으로 음각된 반달

더 이상 빛나지 않는군요

반만 패인 죽음은 검은 밤의 숲에 버려진

이브가 먹다 버린 선악과

반쪽 얼굴로 빛나는 녹슨 사막

오래 부식돼서 형태가 일그러진 돌

납빛 물과 잿빛 길의 낭독

인도나 에디오피아처럼 타오르는

검은 사과가 열리는 나무의 향기

 

검은 눈동자의 별들이 느려지고

그 별들로 끝맺는 눈물이

안으로 안으로

시퍼런 얼음 노을로 번질 때

빛에 시달린 은유의 세계

이제 슬프지도 않다

아무 기대도 없으므로

 

기억은 항상 어딘가 잘못돼 있군요

 

 

김종욱  elim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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