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1-6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저는 오늘 제 설교가 이 시대와 거스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충성스러운 종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늘 진심이기에 성경 그대로 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번에 채플 라이브러리 출판 제목이 <아내의 존중>인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서 오늘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교를 통해 주 하나님의 위로와 확신이 여러분 모두와 가정에, 그리고 교회 생활과 사회까지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리로 인한 거룩한 성령의 역사가 이 시대에 나타나기를 기도 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한 달에 걸쳐 성령 강림 사건을 계기로 설교를 하게 된 베드로의 설교를 다루었습니다. 그의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성령 강림 사건은 나사렛 예수님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음을 증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지금 우리가 받은 성령은 만유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여년 전에 보내신 성령님은 지금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 공식적으로 임하신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주된 사역은 불신자들을 향해서는 책망을 통해 복음을 전하심으로 구원 얻게 하시고, 이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입술과 삶으로 고백하며 살게 하심으로 주 예수님의 통치가 나타나 거룩하고 의로운 삶의 영향을 세상에 나타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임하신 후 성도들이 예수님을 향해 고백하는 ‘주’라는 고백은, 십자가에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나사렛 예수님은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이으신 영원한 왕이 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또한 나의 삶과 모든 영역에서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에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성도들은 자신 안에 계시는 성령을 따라 행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충분하고 넉넉하게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을 따라 행하는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바울은 성령에 대해 말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고전 12:1-2). 

이 구절에 따르면 구원 받은 성도의 유일한 특징은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가지 않고 도리어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상이란 삶의 동기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채우려는 삶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주 되심을 거절하고 그 당시 풍요와 권력과 탐욕을 채워주는 것들을 따르던 삶을 우상에게로 이끌리는 삶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성도의 특징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주로 모시지 않는 자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로 말한다고 알려줍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생각을 이끄는 영은 예수님의 절대 원수인 세상 권세 잡은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린도교회에서 복음의 일차 원수는 마귀에게 이끌리던 유대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저주 받은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들은 나사렛 예수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또한 마지막 아담으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요, 심지어 모든 만유의 주가 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들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자는 절대적으로 나사렛 예수님을 자신의 영원한 구세주와 왕으로 모시고 오직 그분께 충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삶과 마음을 지닌 것을 “예수를 주시라 고백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참된 성도의 특징은 나사렛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삶에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도록 우리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을 따르는 자들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든 노인이든 빈부귀천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참 성도는 실로 예수님을 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주로 모신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놀랍게도 성경은 여인이 남편을 머리로 삼고 순종하는 것이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너무나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진리가 얼마나 자명한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절대 진리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비유할 정도입니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그리고 이 문제는 가정과 교회, 나아가 사회에까지 그리스도의 복이 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관건입니다. 또한 아내의 남편 복종 문제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죄악을 제거하고 물리치는데 있어서 대단히 핵심이 되는 부분임을 성경은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우리는 고린도전서 1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은 바울 당시의 교회의 관습에 대해 한 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자는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두건을 써야 하지만 남자는 써서는 안 된다는 관습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관습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부합하니 지키는 것이 좋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관습을 말하면서 대단히 중요한 영적인 원칙을 선포합니다. 비록 지금 이 시대의 교회는 그 관습을 지키지 않는 경우들이 많지만, 그러나 그 관습이 품고 있던 원칙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고린도전서 11장 3절을 보면,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서 참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영원한 직분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언약에 따라 주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입니다. 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통치 질서가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과 모든 만유의 사이에 계신 중보자 그리스도와의 언약적인 질서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남자의 머리입니다. 이 역시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와 남자의 연합에 의한 것입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리스도는 성령의 연합을 통해 남자의 머리입니다. 이는 남자는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해야 함을 뜻합니다. 물론 남자는 그리스도 위에 계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 영원토록 없으실 것이기에 남자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되는 것은 결혼 언약에 의하여 그렇게 됩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의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주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아담은 하와를 영접하는 과정을 지납니다. 즉, 주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하와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2-24)

이렇게 하여 남편과 아내 사이에 창조의 권위 질서 또는 연합의 질서가 정하여졌습니다. 이 질서와 연합은 사실 장래 영원히 있을 그리스도와 주의 교회와의 질서와 연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둘째는, 고린도전서 11장 7절을 보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고,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고 알려줍니다. 이 말씀은 남자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속성을 피조물을 향해 나타내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본분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뜻대로 행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즉, 여자는 남자의 뜻을 따르고 남자를 맞추어갈 때 남자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창조 및 통치 질서 속에서 여자가 남자를 순종해야 할 절대 이유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8절에서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
고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실 때 여자는 아담의 갈비뼈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속에서 여자의 기원은 남자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넷째는, 9절에서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라” 고 말합니다. 이 진리는 창세기 2장 18절과 20절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18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창 2:18, 20-23)

즉,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은 남자를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그녀의 머리인 남자를 위해 하나님이 여자에게 맡기신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역할은 다름 아닌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진리를 선포한 바울은 결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전 11:10). 

이는 여자가 긴 머리를 지닌 이유에 대해, 그리고 그 당시 교회의 성경적인 관습이었던 여자가 머리를 가리기 위해 두건을 쓴 이유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여자는 남편의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가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머리에 두었던 관습은 절대로 남편의 머리 됨을 망각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려던 의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여자가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두건을 쓴 것과 긴 머리를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원칙에 따라 남편을 섬기는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며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자명한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바울은 이 결론을 내린 후에 주 안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질서 외의 모든 면에서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고 말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를 노예처럼 여겨서는 안 되며, 정반대로 여자를 신으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여자는 온전한 사람으로서 남자와 동등하며 모든 면에서 남자와 비교할 때 더 낫지 열등한 면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하나님의 깊은 뜻에 따른 창조 질서에 따라 아내는 남편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리하면, 그리스도의 주 되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인데, 그분의 주 되심은 아내가 남편을 머리로 둘 때 이 땅에서 성취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음 번에 다루겠지만, 자녀들이 부모를 순종함 역시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과 맞물려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살펴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인간 관계 가운데 무엇보다 먼저 아내가 남편을 순종하게 되는 것을 언급합니다.   

에베소서 5장 이하는 성령의 충만은 성도의 모든 삶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주 되심을 세워가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첫째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 둘째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 셋째는 사회에서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이 나타나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여할 바가 없지만, 나사렛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예수님의 주 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참 신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이 세우신 통치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것이며, 성령님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5:16-24; 엡 6:1-3; 엡 6:5-7)

오늘 우리가 접하는 본문에서도 교회 탄생과 함께 첫 번째 설교를 하였던 베드로가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벧전 3:1-2)

1절에서 “이와 같이”는 베드로전서 전반에 걸쳐 선포되고 있는 복음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2장 18절부터 25절까지의 내용은 그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와 같이”는 “예수님 같이” 라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같이 권세에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벧전 2:22-23). 

그래서 2장 13절에는 “인간의 모든 제도를 (만유의 주와 그리스도이신)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라고 말합니다. 즉, 나사렛 예수 우리 주님 때문에,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본을 받아, 인간 사회 가운데 있는 제도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복의 예로 사환이 까다로운 상전에게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를 예로 듭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벧전 2:18). 

이는 곧 권위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편하고 좋은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권위 질서상 말없이 순종하라는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서 결론 내리기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 질서 가운데 아내가 남편에서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다운 것”이며 또한 남편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되려면 “이와 같이”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즉, 까다로운 남편에게도 순종하고, 순종하고 싶지 않은 남편에게도 주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삶의 모습이요, 이것이 우리 심령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신 증거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 드린 것처럼 이러한 복음적인 삶이 바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내가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할 때, 혹 주님을 믿지 않는 남편일지라도 아내가 자기에게 순종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줄 알게 되면서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날에 예수님을 믿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벧전 3:1).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9-10, 13-15)

디모데전저 2장 15절 역시, 남편이 어떠하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권위 질서를 인정하고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녀의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복음의 삶으로 인해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는 구원의 삶이 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대들고 불순종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양심으로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래 지어주신 양심에 따르면 아내가 남편에게 대들고 불순종하는 모습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의 양심은 죄로 부패하였기 때문에 화인을 맞아서 하나님의 뜻에 노골적으로 대적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게 바른 질서를 알려주시고 성령의 역사로 우리의 양심을 확증하여 주시면서 바른 생각을 하게 하고 나아가 바른 삶으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아내들은 참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그것이 복음의 삶이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는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확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진리를 붙든 그리스도인의 여성들로 인하여 이 시대가 변화될 것이며, 그 여인들은 가장 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될 것이고, 더불어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하나님의 딸들이 될 것입니다.  

심지어 자녀들과 남편이 불신자들이라 할지라도 오직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를 통해 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아내가 더욱 “예수님” 때문에 남편에게 순종할 때, 그리고 더 자상하게 대할 때, 까다롭고 못된 남편임에도 오래 참을 때, 이때 남편은 비록 자신이 불신자라 할지라도 아내로 인하여 신자로 돌아서게 될 것이며, 영적으로 천박하고 미성숙하던 남편 성도들은 자기 아내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믿음의 경주를 힘차게 함께 달리는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악하고 어리석은 남자라도 자기에게 선대하고 순종하는 아내를 보면서 어느 날 아내가 믿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 하고 관심을 가지며 주께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을 보면, 바울도 베드로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고전 7:13-14).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여인은 남편을 공경하는 여인입니다. 이는 남편이 못생기든, 힘이 없든, 돈을 못 벌어오던, 병이 들던, 죄가 많던, 그 남편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나의 남편으로 있는 그 분을 존경하고 순종하는 여인이 되는 것! 이러한 여인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이며, 복음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것이 정확하게 주 예수님은 주로 인정하는 여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모가 아름다워도 남편에게 맘먹고 대드는 아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사람이 결코 아니며,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여인도 아니고, 따라서 성령님을 따라 사는 복음의 여인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가정이 참으로 천국을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는 주의 종이며 설교자입니다. 귀한 아내 여러분! 그리스도의 주 되심 때문에 남편을 높이고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셔서 신령한 열매들뿐만 아니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풍성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이 무엇보다 먼저 아내들의 남편 순종을 통해 이 땅에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들을 무한하게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그 여인의 삶에 어찌 복을 내리지 않으며, 어찌 그 삶은 통해 역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한 순종의 삶이 바로 여인들이 가장 먼저 이루어야 할 복음의 삶이며,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첫째 단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인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범한 이후에 그들에게 죄성이 생겨난 것을 보여주는데, 남성의 가장 큰 죄성은 이기심이고 여성의 가장 큰 죄성은 이 한심한 남편에게 맘먹는 죄성으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여기서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하나님의 선포는 인류가 하나님을 대항하여 지은 죄악에 대해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의 내용인데, 특히 아담보다 먼저 마귀에게 넘어간 여성 하와에 대한 심판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남편을 원하고”의 “원하고"라는 히브리 단어는 “투슈콰”인데 타락에 대한 심판의 맥락에서 볼 때 그 의미는 여성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남편 위에 군림하려는 욕구를 뜻합니다. 동일한 “튜슈콰”라는 단어가 창세기 4장에서 사용됩니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튜슈콰)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6-7)

즉, 죄에 물든 가인에게 죄가 그의 마음을 주관하려고 원하는 것처럼, 남편을 장악하고 남편을 자신의 손아귀에 소유화하고 싶은 욕구가 여성의 죄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인이 살인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죄를 다스려야 하는 것처럼, 아내는 자신의 행복과 가정 및 사회 안녕을 위해 남편을 손아귀에 잡으려는 죄성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돕기 위해 하나님은 법으로 남편이 여인을 다스리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의 가장 큰 죄성은 남편을 업신여기며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죄성이 여성에게는 가장 보편적인 가장 큰 죄성입니다. 그리고 이 죄성을 가지고 있는 한,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값있는 딸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복음의 역사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선한 생명의 열매를 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주 되심을 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가 들어온 이후에는 더더욱 여성에게 남편에게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즉, 아내들은 자신의 죄의 성향을 대항하여 싸워 이겨서 남편에게 복종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권위질서 면에서 볼 때, 남편의 요구가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지 않는 한, 여성은 반드시 남편의 뜻을 따라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것이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아름답고 값진 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벧전 3:4-6).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문화와 문명과 유행이 성경보다 옳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군중이 같은 생각을 한다고 해도 성경과 위배되면 그 군중들의 생각이 틀린 것입니다. 지금 타락한 이 세대는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즉, 여성들이 남편에게 대들고 남편을 휘어잡는 것이 어떤 멋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남편에게 도전하고 대드는 여인들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깨어집니다. 물론 남편들에게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남편들의 죄성이 아내로 하여금 분노와 불순종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기심을 보면서 아내들은 조금도 순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무식과 폭력과 억지를 대할 때는 결혼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힘든 남편을 향해서 예수님 때문에 남편에게 순종한다면, 그것이 바로 복음에 따라 주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삶이라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내로 인하여 놀라운 변화의 복이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역사이며 성령께서 나타내시는 생명과 빛과 사랑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주 예수님 때문에 믿음으로 남편에게 순복했던 모든 여인들이 누린 놀라운 주의 자비와 긍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때 믿음의 아내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하여 찬양과 감사로 주 앞에서 눈물 흘리며 더욱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없이 영원히 주를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의 자매 여러분!
오늘 이 예배와 함께 남편의 요구가 하나님의 뜻과 자명하게 위배되지 않는 한, 지극히 존경하며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뜻에 위배되는 남편의 요구에 대해서는 버림 받을 각오를 하더라도 그 요구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이 원칙은 모든 권위 질서에 다 적용됩니다. 부모가 명령하더라도, 왕이 명령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자명하게 위배될 때는 순종할 책임이 없습니다. 즉, 남편이 죄를 짓자고 하면 결코 순종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 4:19). 
그러므로 남편의 부탁이나 요구가 하나님의 뜻과 자명하게 위배될 때는 순종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순종하면 아담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와를 택한 꼴이 되어 함께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반드시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처럼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남편에게 하는 순종은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잘 나가는 멋지고 좋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합니다. 그렇지 않은 남편, 특히 세상적으로 연약하여진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불신자 여인이라도 멋지고 훌륭한 여인들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성으로 가득 찬 원수 같이 행하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딸들만이 변함없이 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남편 때문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주의 위로와 역사를 기대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비로 이러한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인정하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값진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은 모든 우주를 창조하시고 권위 질서를 세우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성이 성경적으로 변할 때 가정이 변합니다. 자녀들이 변합니다. 교회가 변합니다. 사회가 변합니다. 역사가 변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보기 바랍니다. 그 여인 때문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 여인 때문에 한 민족이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 여인 때문에 구세주가 이 땅에 오실 수 있었습니다. 즉, 여성이 없이는 이 세상의 역사는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여인을 영원히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자매 여러분!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심겨주신 속 사람을 거룩함으로 단장하고 남편에게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딸이 되는 비결임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사람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성령으로 훈련된 여성은 남편을 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 앞에서 값진 여인입니다. ‘값지다’ (폴루텔레스)는 뜻은 존귀하다, 아름답다, 매우 비싸고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여인의 속 사람이 그리스도를 닮아갈수록 소중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 예수님을 닮아가는 여성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 가운데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입증합니다. 이는 여성에게 있어서는 까다로운 남편에게 그리스도 때문에 순종할 때 자신의 죄성과 자존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가운데 어느새 내면의 사람이 생명의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날마다 새롭게 그리스도를 닮아 깊어지고 아름다워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에 속한 모든 자매님들이 주 예수님의 주 되심을 삶으로 입증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딸들이 되기를, 그래서 무한한 감사와 감격으로 늘 주를 찬양하는 복 있는 하나님의 딸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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